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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범 납세자 탈세와 생선가게의 고양이

[칼럼]모범 납세자 탈세와 생선가게의 고양이

기사승인 2016. 03. 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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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에 저녁이 오면 동네 사람들이 낚싯대를 들고 나온다. 동네 낚시꾼들이다. 이들을 따라 고양이도 나타난다.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고양이는 낚시꾼이 잡아 놓은 물고기를 훔쳐 먹기 위해서다. 고양이는 숨어서 망을 보다 낚시꾼이 잡아 놓은 물고기를 먹어치우거나 물고 달아난다. 낚시꾼은 어이가 없어 웃고 만다.
 

고양이가 주인 몰래 생선을 먹어치우는 것을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다'는 말이 생겼다. 믿고 맡긴 것을 슬쩍 해먹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양이가 생선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면 결과는 뻔하다. 생선을 어떻게든 먹어 치울 것이고 먹지 못하면 땅에 묻어 놓기라도 할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꼴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툭하면 생기고 있다. 무언가를 맡겼더니 몰래 해먹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믿었던 모범납세자가 탈세하는 것이다.  


모범 납세자가 탈세 한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지만 실제로 있는 일이다. 탈세자도 많고 탈세 액수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국세청의 모범납세자 세무조사 내역에 따르면 2009∼2013년 선정된 모범납세자는 총 2760명. 국세청은 이들을 대상으로 105건의 세무조사를 벌여 모두 3631억 원의 가산세 등을 부과했다.  


2010년에는 모범납세자가 54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무려 28명이 조사를 받고 1069억 원의 세금을 토해냈다. 모범 납세자는 이름만 들어도 존경심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세금을 덜 내거나 내지 않으려고 머리 굴리는 것을 볼 때 모범 납세자는 존경을 받을 만하다. 돈을 쌓아놓고도 세금을 내지 않다 적발되는 일도 허다하지 않은가? 이런 이유로 모범 납세자는 여러 가지 우대를 받는다.  


우선 3년간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받는다. 세무서 눈치 보지 않고 오직 기업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외국을 오갈 때 출입국 전용심사대를 이용하고 금융권 대출금리 우대혜택도 있다. 공영주차장 무료 이용 혜택도 주어진다. 모두 명예를 높여주는 혜택들이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귀한 혜택이다. 


모범 납세자는 혜택이 큰 만큼 국세청으로부터 연 1차례 이상 사후검증을 받는다. 만약 탈세 혐의가 있으면 즉각 세무조사 대상이 된다. 아무리 모범 납세자로 선정됐다고 하더라도 탈세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면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엉터리 모범 납세자들이 된서리를 맞는 일이 많아 문제다.  


실제로 국세청은 2009년 22건, 2010년 28건, 2011년 19건, 2012년 27건, 2013년 9건 등 모두 105건을 조사했다.


이들이 토해낸 금액이 자그마치 3631억 원이나 된다. 2015년에는 544명이 모범 납세자로 선정됐는데 아직 조사를 받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 안으로 국세청이 맡긴 생선을 먹어치우는 고양이가 얼마나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국립종자원 공무원들이 농민에게 보급해야 할 종자 90t을 빼돌려 1억2000만원에 팔아먹은 일이다.  


우량종자를 개발·보급해서 농민의 소득을 올려줘야 할 공무원들이 종자를 팔아먹은 것은 모범 납세자가 탈세한 것과 죄질이 비슷하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예를 몇 개만 보자. 부산의 한 점포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몰래 200여 차례 물건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서울에서는 휴대전화 매장 부점장이 휴대전화 100여개를 빼돌렸다.  


또 조업하는 배에서 갈치를 빼돌리는 어부도 있었다. 모두가 가게를 지키던 고양이가 먹어 치운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중심경영(CCM) 기업으로 137개를 인증했는데 36.5%인 50개 기업이 공정위로부터 공정거래법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는 일도 있었다. 성금을 착복한 사회단체 직원, 어려운 사람에게 줄 돈을 챙긴 공무원, 수면내시경을 하며 여성을 성추행한 의사들도 고양이와 다르지 않다. 


모범 납세자는 말할 것도 없고 누구든지 업무와 관련해서 생선가게 고양이 행세를 하는 것은 제도의 혜택을 악용하는 비도덕적, 비양심적 행위다.  


이런 행위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겁다. 우리 사회가 밝아지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생선가게의 고양이 노릇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너무 많아 문제이다. 고양이는 원래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선 가게에 고양이 혼자 두지 않는 게 최고의 예방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양이처럼 몰래, 혹은 혼자 있을 때 해먹을 소지가 있으면 미리 예방해야 한다. 떼어 놓든지 관련 업무와 차단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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