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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쑥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쑥국

기사승인 2014. 03. 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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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눈이 많이 와서, 멀리 관악산에 쌓인 눈이 보이기는 합니다만, 날씨는 이제 완연히 봄입니다. 전번 주 드라마 <닥터 이방인> 촬영차 부다페스트를 다녀왔는데, 그 곳에도 봄이 오고 있더군요. 한국과 비슷한 날씨였는데, 공원에 냉이도 나고 쑥 비슷한 것도 공원에 파랗게 올라오더군요. 나물캐는 아가씨는 못 보았습니다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에 아내가 쑥국을 끓여주네요. 어제 저녁 지하도를 내려가다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지하도입구에서 쑥을 팔고 계셨는데, 아 사야지하다가 검은 봉지에 담긴 쑥을 들고 걸어 다닐 생각을 하니 조금 갑갑해져서 그냥 지나쳤었었지요. 오늘 아침 말간 얼굴을 하고 모락모락 김을 내는 쑥국을 마주하고 나니, 참 반갑습니다.


쑥국. 어릴적 이때 쯤이면, 어머님은 집 앞 밭 두렁에 나가 쑥을 캐 오셨지요. 밭두렁에는 쑥이 지천이었습니다. 사실 쑥은 지금도 가장 흔한 봄나물입니다. 흙이 있으면 아파트든 공터든 야산이든, 어디서든지 쑥이 자랍니다. 오죽하면 “쑥 쑥 큰다”는 말이 있을까요. 어머님이 부엌에서 멸치국물에 된장을 넣어 쑥국을 끓이시는데, 우선 쑥의 향이 먼저 코로 스며듭니다. 약간 알싸한 특유의 쑥향이 미각을 온통 자극합니다. 방안가득 쑥냄새가 그득합니다. 뜨거운 국물을 호오 입으로 불며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눈을 감아봅니다. 세상에. 향긋한 봄냄새가 입안에 가득찹니다. 워낙 여린 잎이라 씹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정겹고 그리운 맛입니다.


그렇습니다. 꽃이 피어야만 봄인가요. 쑥국 한 숟가락에 봄이 피어납니다. 쑥의 조금은 날카로운 맛이 구수한 된장과 스르륵 어울리면서, 훨씬 부드럽고 향기로운 국물이 되었습니다. 약간 알싸하면서, 씁쓰름하면서, 구수한 맛. 맞습니다. 봄의 맛은 조금 씁쓸합니다. 이 쓴 맛을 좋아하게 된 게 언제부터일까요. 쑥도, 씀바귀도, 드릅도, 곰취도 그렇지요. 이 쌉싸름한 풋것의 맛이 봄의 맛인걸 조금씩 나이들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쑥국의 뜨거운 기억.


쑥국/ 최영철                        - 아내에게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다음 생애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쑥. 단군신화에도 쑥이 등장하니, 우리민족이 쑥을 수천년간 먹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쑥은 마늘, 당근과 더불어 성인병을 예방하는 3대 식품중 하나이며, 위장과 신장에도 좋고, 더러운 피를 정화시키는 효능도 있다고 합니다. 어릴적 냇가로 고기잡으러 갔다가 사금파리에 발을 베어 피가 철철 흐르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쑥을 짓이겨서 상처에 붙이니 곧 피가 멎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혈이 효능이 있는 거지요. 쑥을 태워서 모기를 쫒는 방향제, 여성들 목욕제로도 쓰이지요. 쑥은 써서 몸에 좋은게 아닐까요.


봄에는 온 들판에 먹을 게 가득합니다. 이 봄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 제 철도 모르는 재료에, 온갖 양념을 뒤섞은 도시 요리 드시는 것 보다 들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봄나물에 입맛 다시는 야성(野性)을 가져 보는건 어떨까요. 삼겹살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상추 말고, 곰취든 방풍나물이든 머위잎이든 산에 들에 지천으로 올라온 봄나물로 싸서 먹어 보는겁니다. 겨우내 꽝꽝 얼어붙은 지구의 두꺼운 얼음표층을 뚫고 봄이 오면 싱그럽게 솟아오르는 이런 쑥의 새싹들의 모습을 보면, 거대하지만 낡고 오래된 것들을 타파하고 전혀 새로운 것을 외치는 “일종의 혁명”을 부르짖는 열정, 그 날 것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마디로 경탄스럽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모든 것이 드라마틱하게 변합니다. 만물이 약동하고, 들에는 새싹이 돋고, 곧 여기저기 온통 꽃이 피겠지요. 봄엔 아가씨들도 바람이 나서 싱숭생숭해진답니다. 아득한 옛날,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인의 DNA가 남아있어서 그렇다고, 어떤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남쪽지방에서는 동백이 피고,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답니다. 겨우내 얼었던 몸과 마음을 녹이고, 춤바람이든 꽃바람이든, 가슴 속에 더운 기운을 담고 심호흡을 하며 세상과 한껏 바람이 나야 마땅한 봄이, 그 봄이 지척에 있습니다. 오늘 저녁은 된장 넣어 팔팔 끓인 향긋한 쑥국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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