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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청량한 봄 시금치 김치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청량한 봄 시금치 김치

기사승인 2014. 04.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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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창입니다. 온 산, 들, 아파트 할 것 없이 어디나 꽃이 피고, 도시에도 시골에도 봄이 그득합니다. 전번 주말에, 참 오랫만에 부모님과 고향인 충남 홍성에 다녀왔습니다. 고향산천에 그득한 봄의 기운이 참 행복하더군요. 고향을 지키시는 작은 어머님께서 밥한끼 먹고 가라 잡으시는 바람에, 집 뒤 텃밭 산책도 하고, 옛날 초등학교때 뛰놀던 곳도 둘러보았지요.


텃밭 건너에서 어느 노인이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고 계십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입니다. 최근에 쟁기질하는 소리 들어보신적 있으십니까?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는 시집 <질마재 신화>에서, 쟁기의 보습이 흙을 갈아 넘길 때 나는 소리를 “사운… 사운… 사운…”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운… 사운… 사운…
배 잘 먹는 계집애 배 먹듯 쟁기는 가고
구레나룻은 마치 싸리덤불 흔들리는 것 같았다.“
쟁기질할 때 삽모양의 연장을 보습이라 하는데, 이 보습이 지나갈 때, 흙 갈아엎어지는 소리. “사운..사운..” 아. 봄입니다. 봄의 소리입니다.


텃밭에 빼곡하게 난 푸른 빛을 들여다봅니다. 노지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반찬용 시금치입니다. 섬지방 시금치는 섬초라 하여 겨울에 출시되지만, 충청지방의 노지 시금치는 지금이 제철입니다. 시금치는 가꾸기도 쉽고, 생육기간도 짧아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거둬 먹기 좋은 작물입니다. 어렸을 때 즐겨보던 만화영화 뽀빠이가 기억납니다.


“영국에 시금치를 보내자.”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미국이 일선 장병과 후방 국민들에게 방영했던 뽀빠이 만화영화의 제목입니다. 아시다시피 뽀빠이는 시금치 통조림만 먹으면 천하무적의 장사로 변신해서, 마구 덤벼드는 나치의 잠수함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영국 런던으로 시금치 통조림을 배달한다는 내용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동안 연합국에 제한 없이 보급된 식품이 햄 통조림 스팸과 시금치 통조림이었답니다. 옛날 중국에서도, 시금치는 신선이 되려는 사람이 먹는 채소대접을 받았고 페르시아 채소, 즉 파사채(波斯菜)라 불리웠답니다. 시금치는 동서양에서 사람들에게 건강에 좋다는 환상을 품게한 특이한 채소인거지요.


작은 어머님이 뚝딱 차려주신 상에는 시금치 김치가 올라 있습니다. 시금치로 만든 물김치형태입니다. 김칫거리가 귀한 봄철에 충청도,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담가 먹는데, 아주 익은 것보다 덜 익었을 때가 맛있어서 바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빨간 물김치 국물에 담겨 있는 시금치 이파리의 초록빛이 너무 싱싱하고 푸릅니다. 비쥬얼만 척 봐도 몸에 좋을 것 같고, 한 모금 마시면 속이 시원해 질 것 같습니다. 시금치 잎이 주는 청량한 느낌은 시금치 김치의 미덕입니다.


한 숟가락 밥 위에 시금치를 척척 올려서, 입 한가득 우물우물 씹어봅니다. 아사삭 감칠맛 나는 연한 시금치의 질감이 입안에서 느껴 집니다. 시금치의 잎이 부드러워 먹기에 아주 편리합니다. 달콤하고 향긋합니다. 풋것 특유의  냄새가, 김치국물과 어우러져 비리지않고 청아한 느낌을 줍니다. 옛분들도 겨우내 김장김치만 물리도록 먹다가, 봄이 오면 시금치 척척 솎아내 김치담가서, 이 청량함을 즐기셨겠지요. 참으로 깔끔한 맛입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제철 모르고 자란 시금치가 아니라, 노지에서 비맞고 바람 견디고 햇빛 골고루 받으며 자란 제철 시금치는, 봄을 가득 품고 있어서 그 맛이 아주 달디 달답니다.


김치국물을 한모금 마셔봅니다. 이 낯익은 맛. 술마신 다음 날, 한모금 마셔주면 숙취가 다 달아날 것 같습니다. 칼칼하고, 시원합니다. 어릴 때 먹던 시금치김치의 맛이 그대로입니다. 혀를 타고, 어릴적 기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추억의 반은 음식입니다.


물김치 사발                 -  정화진

저녁상에 찰랑이며 놓인/ 물김치 사발
(중략)
물김치 사발 속,
돌나물 이파리 사이로 깊어 보이는/ 감나무 윗가지에 산새 두 마리가
물소리를 내며 날아와 앉고/뭉클뭉클 산 능선이 감나무 위쪽으로/
부풀어 오른다


저는 충청도 사람이라서, 봄 날 시금치 물김치를 많이 먹었습니다만, 경상도 지방에서는 돌나물 넣은 물김치를 많이 드셨다고 합니다. 미나리 김치를 드셨다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군요. 여러분이 어릴적 자주 드시던 김치는 어떤 김치이었나요?. 산에 들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온 천지에 꽃향기 진동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 옹기종기 모여앉아 먹던 밥상에는 어떤 김치를 드셨지요? 오래되어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 하시겠지만, 이번 주말에는 한 번 그때 김치를 구해서 드셔보세요. 한 입 드시는 순간, 어릴 적 당신이 뛰어놀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날 겁니다.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 맛나게 식사를 하던 그리운 분들도, 거기 계실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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