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사랑이 담긴 콩나물 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사랑이 담긴 콩나물 국

기사승인 2014. 04. 25. 07: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꽃들 여기저기 피고, 화창한 봄날입니다. 어제 밤 오랜만에 친구와 마신 술의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쓰린 아침입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내가 살랑살랑 웃으며 콩나물국을 끓여 줍니다. 멸치 푹 우려낸 국물에 콩나물 듬뿍,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고 고춧가루 풀어 끓인 국. 이 콩나물국은 북엇국과 더불어 집에서 요리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해장국중 하나이면서, 한국 사람에게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국 중 하나입니다. 선짓국, 복국 등은 주로 음식점에서 사먹는 해장국이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팔팔 끓여낸 콩나물국.


흠. 콩나물이라.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따뜻한 방 아랫목에 시루 같은 것이 이불로 덮여있었습니다. 그게 콩나물 시루이었던 거지요. 기억나십니까? 콩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시루에 볏짚을 깔고 그 위에 콩을 담아서 고온다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발아시키는 것이, 이 콩나물입니다. 일종의 콩채소 재배인 것이지요. 특별히 거름을 주지 않아도 되고, 물만 주면 잘 자란답니다. 햇빛을 안 쏘여서, 엽록소가 적어 콩나물이 하얗게 자라는 겁니다. 일주일정도 지나면 콩머리 아래로 마치 마술같이, 하얀 콩나물들이 밑으로 자라나지요. 매일같이  할머니는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셨답니다. 할머니는 이 콩나물들을 하나씩 다듬으셔서, 푹 삶아 고춧가루 뿌리고, 갖은 양념해서 따뜻한 콩나물 무침을 척척 해주시고는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콩나물 무침은 너무 푹 삶아서 사각거리는 느낌은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만, 마음 따뜻해지는 그 맛은 기억속에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콩나물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 하시며, 밥 먹는 손자를 밥상머리에서 내내 지켜보시다 숟가락에 콩나물을 더 얹어 주시고는 했지요. 그때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콩나물을 더 먹었어야 키가 더 크는건데 말이지요. 어느 아동문학가는 콩나물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다”(정채봉). 하하. 참 재미있습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말이 있듯이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영양 식품이지만 비타민 C는 없는데, 콩나물로 자라면 이게 새로 생겨나서 콩나물 두 줌 정도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C가 충족된다고 합니다. 건강에도 매우 좋은 식품이지요.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입안이 매우 까칠합니다만, 국물 한 수저 떠 입에 가져갑니다. 호호 불며 입안 가득 뜨거운 국물을  삼킵니다. 청양고추 썰어넣어 칼칼하고 얼큰한 맛. 이 뜨거운 국물은 거침없이 식도를 지나 위장으로 진격하는 것 같습니다. 속이 짜르르르 합니다. 위장에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이 묵직한 자극은 알코올로 밤 새 시달린 위장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습니다. 깨질 듯 아프던 머리도 조금은 맑아 지는 것 같습니다. 이 뻐근하고 강렬한 자극은 너무나 낯익은 느낌입니다. 이게 바로 한국인만 아는 한국식 해장입니다. 콩나물을 한 수저 입안에 넣어 씹어봅니다. 아삭 아삭 씹히면서, 감칠맛도 더 나고,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씹다보면 조금씩 입맛이 돌아옵니다. 좀 전까지 속쓰려서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더니 국물이 속을 편하게 해줍니다. 콧등에 땀이 방울방울 맺힙니다. 술꾼들은 이럴 때 꼭 한마디 하지요. 카. 시원하다. 밥을 조금 말아서, 국물과 함께 넘깁니다. 하아아. 마법처럼 속이 풀어집니다.


콩의 원산지는 고구려 조상이 살던 만주 지방입니다. 두만강(豆滿江)은 예로부터 콩(豆)이 엄청나게 많아서(滿), 지어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고, 콩나물을 길러 먹고, 두부를 만들어 먹지요. 콩없으면 못사는 민족입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녹두로 기른 숙주나물을 많이 먹지만, 콩나물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서양에서는 콩에서 콩나물이 되는 것을 보고 털이 있고 다리가 하나 달린 유령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서,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콩나물을 먹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이 맛있는 콩나물 맛을 모르다니요.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 이 정록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 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 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옛날에는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무침도 해 먹고 국도 끓여 먹었지요. 할머님은 손자들 먹일 생각에 매일 매일 정성으로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셨지요. 오늘도 수많은 아내들이 새벽에 속쓰린 가장들을 위해 콩나물을 다듬고, 멸치 육수에 콩나물국을 끓여냅니다. 오늘 아침, 마주한 마알간 콩나물국을 보며 생각합니다. 콩나물국에는 할머니의, 아내의 사랑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