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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 5월의 소풍과 김밥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 5월의 소풍과 김밥

기사승인 2014. 05. 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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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입니다. 신록이 참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피천득은 5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라고 했지요. 하늘은 맑고 푸르고, 불어오는 바람은 참으로 시원합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좋아, 절로 그런 말이 나옵니다. 하물며, 계절의 여왕인데요.


어릴 적 이맘때 쯤 소풍을 갔습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식구들과 대전에 있는 유원지에 갔습니다. 다음날 비가 올까봐, 자꾸만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느라 잠을 설친 기억이 납니다. 그 날 비가 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유원지 잔디밭에서 어머님이 싸 주신 김밥을 나누어 먹던 기억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사이는 김밥을 파는 가게가 지천입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말던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지요. 뭐. 워낙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니 어쩔 수 없겠고, 그래서 김밥체인이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약간은 허전합니다. 이런 시 아십니까?


김밥천국에서   -  권혁웅(1967~)

(전략) 마음이 가난해도 천오백원은 있어야/천국이 저희 것이다
천국에 대한 약속은/단무지처럼 아무 데서나 달고
썰기 전의 김밥처럼 크고 두툼하고 음란하지
나는 태평천국의 난이/김밥에 질린 세월에 대한 반란이라 생각한다(후략)


어릴 적에는 김밥은 매일 먹는 음식이 아니었답니다. 소풍가는 날 정도는 되어야 먹는 것이었지요. 시금치, 단무지, 계란부침정도가 기본메뉴이고, 집이 좀 잘 살면 고기 다진 것을 넣고는 했답니다. 아. 쏘시지도 있었지요. 김밥은 별도의 반찬 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소풍갈 때 많이 먹은 것인데, 그래서 간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김밥은 물만 있어도 먹을 수 있습니다. 잘 만든 밥과 김과 반찬이 입안에서 잘 섞여서, 밥의 고소함을 유지하면서 마치 비빔밥을 먹는것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치가 약간 들어간 김밥을 좋아합니다. 요사이는 참치김밥 치즈김밥등등 별별 김밥이 다 많아진 것 같습니다만. 밥이나 반찬이 쉬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재료를 전날 미리 사다두었다가 새벽에 김밥을 말아야 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맛도 있답니다. 밤 새 잠을 설치다가 새벽에 부엌에서 어머니가 도마에 김밥재료 써는 소리를 들을때의 편안한 기분이란!


김을 잘 펴서 발 위에 놓고 한 움쿰 밥을 집어 손가락으로 살살 펼칩니다. 길게 자른 단무지와 시금치를 올리고, 계란, 우엉 등등을 넣어 돌돌 말지요. 그리고 꾹꾹 누릅니다. 오늘 우리 아들 재밌게 놀다 맛있게 먹으라고,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주시던 그 손끝이 생각납니다. 그 기분좋은 설레임이 김밥에는 녹아 있습니다. 김밥위에 조금씩 뿌려 주시던 깨소금맛처럼, 아주 고소하고 달달한 추억입니다.


- 김밥의 시니피앙 / 정일근

표준어로 유순하게 [김:밥]이라 말하는 것보다/
경상도 된소리로 [김빱]이라 말할 때/
그 말이 내게 진짜 김밥이 된다
심심할 때 먹는 배부른 김밥이 아니라/
소풍갈 때 일 년에 한두 번 먹었던/
늘 배고팠던 우리 어린 시절의 그 김빱
김밥천국 김밥나라에서 마음대로 골라먹는/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김치김밥 다이어트김밥 아니라/
소풍날 새벽 일찍 어머니가 싸주시던 김밥/
내게 귀한 밥이어서 김밥이 아니라 김빱인/
김빱이라 말할 때 저절로 맛이 되는/
나의 가난한 시니피앙


소풍이라. 거닐소(逍)에 바람풍(風)이라, 참 멋진 말입니다. 바람에 일상의 짐을 훌훌 날려버리고 바람속을 한가로이 거닐라는 이 말은 휴식의 참의미를 일깨워줍니다. 이제 학창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소풍가는 것은 아주 오래된 추억이 되었습니다만, 어머님이 싸주신 김밥에 사이다 하나 달랑 싸가지고 가던 소풍은 그리도 재미있었답니다.


어릴적 잠 설치던 기분까지는 나지 않더라도, 산으로 들로 소풍을 좀 가야겠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이런 날씨가 또 언제 올까요. 이러다가 순식간에 금방 더워지고 금방 장마철 오겠지요. 다음에, 바쁜 것 끝나면, 이번 드라마만 끝나면 등등 이런 저런 핑계로 계속 미루기만 하고 있거든요. 아내에게 김 밥 두어 줄 싸달라해서, 가까운 곳으로 소풍 한 번 가야 겠습니다. 가서, 푸른 하늘, 푸른 잎 아래 느긋하게 앉아, 김밥 떡하니 꺼내서 먹어야겠습니다. 


“이놈아, 소풍길에 구경이나 잘해! 공연히 제 시계만 들여다보다가는 구경도 못하고 소풍 끝나." 천상병 시인의 말이 귓전을 때립니다. 김밥 싸가지고 소풍가기에, 딱 좋은 요즘입니다. 잊지 마세요, 좋은 날은 바람처럼 지나가 버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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