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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할아버지의 두부김치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할아버지의 두부김치

기사승인 2014. 06. 2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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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한 여름처럼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참 좋은 날씨입니다. 전 번 주말, 아내가 전통시장에 가자해서 따라 나섰습니다. 기분 좋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데, 아내가 두부가게에서 두부 한 모를 사더군요.


흠. 두부라. 아주 어릴적, 할머니는 텃밭에서 재배한 콩을 불려 맷돌에 갈아, 콩물을 커다란 가마솥에서 삶고, 굳혀서 두부를 만드셨습니다. 두부는 만드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손도 많이 가는 음식이지요. 갓 만든 두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아무 양념없이 간장만 찍어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할머니가 두부 만드시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저에게 동네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라 심부름을 시키셨지요. 커다란 양은주전자에 막걸리를 한 가득 담아 뜨거운 신작로를 낑낑대며 들고 오다가, 주전자 주둥이에 입대고 한 두 모금 몰래 마신 막걸리의 놀라운 달콤함이란! 그 날 마당 평상위에서 할아버지가, 막걸리와 함께 드시던 두부김치 한 점을 입안에 넣어 주셨지요. 그때 먹은 두부김치와, 막걸리 한 모금의 맛은 제 인생 최고의 맛중의 하나입니다.


두부는 전형적인 ‘웰빙’식품입니다. “밭에는 나는 쇠고기”인 두부는, 한국인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단골메뉴입니다.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아기에게도 두부는 먹일만큼, 남녀노소 누가 먹어도 좋습니다. 먹으면 포만감은 주지만 칼로리는 낮고, 굳이 고기를 먹지 않아도 단백질을 공급해주니 더 좋은 겁니다. 게다가 우리 몸에 유익하지 않은 포화지방산 대신에 식물성 지방이 들어 있어, 예부터 채식을 하는 승려나 채식주의자들이 영양적으로 가장 의존하는 식품이 두부이었던 것이어서, 지금도 사찰음식에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두부는 오직 콩으로만 만드는데,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부를 살 때 오직 유효기간만을 따지는 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이지요. 언제 만들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상실의 시대’의 작가인 유명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굉장한 두부 애호가입니다. 그는 “파리의 가정주부들은 어제의 빵을 먹지 않고 매번 새로 산다”고 하면서, “가장 맛있는 두부는 ‘오늘 만든 두부’”라고 합니다. “두부는 여행을 시키면 안된다”라고 외치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두부는 만든 직후가 가장 맛이 있고, 운송이나 여러 이유로 시간이 갈수록 신선도도, 맛도 급격히 떨어집니다.


사실 가장 맛있는 두부는, 직접 농사를 지은 콩으로 오늘 만든 두부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동네마다 새벽에 종을 울리며 두부를 팔던 두부장수가 있었지요. 유감스럽게도, 요사이는 두부를 만드는 공정의 수고로움을 덜고, 소량의 두부를 살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대형 식품회사의 두부를 슈퍼에서 사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만. 오늘처럼 전통시장에서 국산콩을 고집해 직접 두부를 만들어 파는 동네 두부가게를 꼭 이용하는 제 아내도, 그런 가게를 응원하는 마음이랍니다.
 
두부김치는 따뜻하게 데친 두부에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볶아 곁들인 음식입니다. 두부는 그 자체로는 따뜻한 질감과 착하고 담백한 맛일뿐, 어떤 맛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두부는 희고 무르지요. 두부는 부드럽거나 하얀 속살이라거나 얌전하다는 느낌이고, 연하고 순한 맛입니다. 한 입 베어물면, 두부의 재료인 콩이 가진 순수의 맛을 그대로 알게 됩니다. 고소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재료가 가진 순수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맛입니다.


따뜻한 두부에(두부가 식으면 맛이 줄어듭니다) 볶은 김치(돼지고기를 넣고 볶으면 더 맛있지요)를 척 올려 한 입 먹어봅니다. 두부의 따스하고 온화한 맛과 연한 조직감이 부드럽게 먼저 느껴집니다. 달달하고 상큼하고 진한 김치의 맛이 두부의 담백함과 조화를 이루어서, 입안에서 맛의 홍수를 느끼게 합니다. 입안에서 두부가 부드럽게 씹히면서, 볶은 김치의 기름기를 줄여주고 김치를 감싸 부드럽게 맛을 만들어냅니다. 순하고 연한 두부의 맛이 짜고 매운 김치 맛의 강렬함을 줄이고 온화하게 만들어,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담백하고, 고소한 끝맛을 남게 합니다. 두부는, 참으로 착한 맛입니다.


  두 부                             유 병록 

아무래도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듯한 살갗 안쪽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잇을 것 같은데 (후략)


그 날 말이지요. 할아버지와 4남 3녀, 그 많은 대 식구들을 먹이시려고 혼자서 콩 맷돌에 가는 것부터, 가마솥에 불때서 콩물 끓이는 일까지 할머니가 온종일 씨름해 만드신 두부의 맛을, 세상 어디에서 다시 맛 볼수 있을까요? 가지런히 잘라져 있는 김 모락모락 나는 갓 나온 하얀 두부의 비쥬얼이 생생합니다.


음식은 정성이고, 추억이지요. 오늘 저녁은 아내가 두부김치를 해 준다는군요. 그 뜨겁던 여름날, 손자가 받아온 막걸리 한 잔 드시면서 껄껄 웃으시던 할아버지, 두부를 유난히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김 모락모락 나는 두부김치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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