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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무더운 여름 시원한 오이지냉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무더운 여름 시원한 오이지냉국

기사승인 2014. 07. 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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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관악산을 올랐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땀을 엄청나게 흘리며 산행을 했답니다. 땀을 흘리고 난 후의 기분은 더없이 상쾌합니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는 이런 기분 때문에 산행을 하는 거겠지요.


주말 관악산에는 산행하는 분들이 정말 많더군요. 등산로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일행들중에, 배낭에서 오이를 꺼내 드시는 분들이 참 많더군요. 오이는 원래 성질이 차고 수분이 많아서, 열을 내리고 갈증을 풀어주는 효능이 가장 큰 음식이어서, 요즘도 사람들은 등산 갈 때 오이를 많이 챙겨 드시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놀러 간 할아버지 댁 텃밭에는 반찬용으로 각종 채소가 자랐습니다. 한 쪽 구석에, 오이가 자라고 있었지요. 오이덩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 마디마디에 오이가 잔뜩 달렸지요. 한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과 수분을 많이 흡수해서, 오이는 하루가 다르게 정신없이 자란답니다. '장마철에 오이 자라듯 한다'는 옛말이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는 걸 이르는 말입니다. 널찍한 잎사귀와 노란 오이꽃들 사이로 숨겨진 오이가 숨바꼭질을 하니, 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제때 따지 않으면, 오이가 속절없이 늙어버려 먹을 수 없거든요. 한 여름 내내, 오이 열매는 계속해서 달린 답니다. 싸고 맛있고 재배하기가 쉬워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참으로 친숙한 채소이지요. 오이를 따다가 우물가에 가니, 우물물 시원하게 퍼 올려 등물을 하시던 삼촌 생각도 납니다. 얼마나 시원하셨을까요.


어머님은 오이를 잔뜩 다다 오이지를 담으셨지요. 오이지는 수분이 많은 오이를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이에 소금물을 끓여 부워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발효 숙성시킨 음식입니다. 입맛 없는 여름내내, 짭쪼롬한 오이지는 입맛을 돋구워주는 최고의 반찬이었답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고춧가루와 참기름에만 무쳐 내는 오이지 한 접시면 밥 한 공기 정도는 거뜬히 비울 수 있었지요.


여름철이 되면, 도시락 반찬에 빠지지 않던 게 이 오이지무침이었지요. 아. 그 아삭거리는 오이지의 짜고 달고 매운 그 맛. 도시락에 덮어 주신 달걀 프라이에, 오이지무침 얹어 먹으면 부러운 게 없었답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어머니가 무쳐주시는 오이지같은 반찬은 다시 없겠지요.


      물 외 냉 국                  - 안 도현

외가에서는 오이를/물외라 불렀다/
금방 펌프질한 물을/양동이 속에 퍼부어주면 물외는/
좋아서 저희끼리 물 위에 올라앉아/새끼오리처럼 동동거렸다

그때 물외 팔뚝에/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것을/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외는 펌프 주둥이로 빠져나오는/통통한 물줄기를 잘라서
양동이에 띄워놓은 것 같았다

물줄기의 둥근 도막을/반으로 뚝 꺾어 젊은 외삼촌이/
우적우적 씹어먹는 동안/도닥도닥 외할머니는/
저무는 부엌에서 물외채를 쳤다 (후략)


초등학교 여름 방학 시절, 폭염속에서 집에서 키우는 누렁이도 지쳐 혀를 빼물고 힘을 못 쓰고 헉헉거리는 무더운 여름 한 낮,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놀다 지쳐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오이지를 송송 썰어 물을 타서 고추 조금 썰어넣고 얼음을 동동 띄워주셨습니다.


오이지 냉국입니다. 냉국에 떠 있는, 숙성되어 노란 빛을 띄는 오이지 한 조각을 한 입 깨물어봅니다. 이 친숙한 짭쪼름한 맛. 아삭 아삭거리는 오이지의 식감이 행복합니다. 얼음 냉국의 국물과 함께 수저로 한 술 떠먹어봅니다. 아. 시원한 첫 맛, 짭짤하고 감칠맛나는 상쾌한 끝 맛. 그릇을 들고 국물을 주욱 들이키면, 더위로 뜨거워진 몸이 식으면서 뱃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식초를 조금 타서, 약간 신 맛이 나는 것이, 몸과 기분을 더 기분좋게 합니다. 역시, 시원하게 먹는 채소는 오이만한 게 없습니다. 땀 흘리며 노느라 지친 꼬마에게 염분을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지요.


오이지냉국에는 오이지의 소금이 녹아있어서, 몸이 필요로 하는 염분 성분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 제격인 음식이 바로 오이지냉국인 셈이지요. 그래서 이맘때 오이지냉국을 ‘천연이온음료’라고 부르는 분도 계시답니다. 수분 섭취가 필수인 열사병, 더위 먹는 병에도 오이지냉국은 훌륭한 예방식품인 거지요. 옛 분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음식이랍니다. 요리연구가 한 복선씨는 “찬물에 밥 말아 오이지와 함께 먹으면 한 여름 짭짤한 땀 맛, 근사하고 고소한 맛”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요사이는 생 오이를 그냥 채썰어 만든 오이냉국을 많이 드십니다만, 저는 왠지 옛날에 먹던 오이지 송송 잘라 넣은 냉국이 더 정이 가고 더 생각납니다. 초록빛 반짝반짝 나는 건강한 오이로 소금물에 오래 숙성시킨 오이지 말이지요. 후덥지근하고 무더운 여름 오후, 그 날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시원하고 짭쪼롬한 오이지 냉국생각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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