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뜨거운 여름날의 정취 수박화채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뜨거운 여름날의 정취 수박화채

기사승인 2014. 07. 25. 07: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날씨가 푹푹 찝니다. 해수욕장엔 사람이 넘쳐납니다. 어제는 열대야라더니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덥습니다. 한 낮, 시원한 바람 한 점이라도 간절해지는 이맘때에는, 가게마다 어른 머리통만한 초록과 검정 줄무늬의 수박들이 넘쳐나게 진열됩니다. 수박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여름이 없으면 수박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진열된 짙푸르고 윤기나는 큰 수박 한 녀석을 손으로 두드려봅니다. 통통. 이 탄력 있는 소리. 이 수박을 칼로 시원하게 쫙 쪼개서, 두 손으로 잡고 새빨간 수박 속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아, 얼마나 달콤할까요.


어렸을 적 골목 밖에서 형들이랑 축구하며 뛰어 노느라 얼굴이 수박 속처럼 빨갛게 되어 땀 뻘뻘 흘리며 집으로 뛰어 들어옵니다. 어머님은 펌프로 길어올린 시원한 물로 가득채운, 소위 ‘다라이’에 동동 띄워놓았던 수박을 가져오라 하셨지요.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어 큰 그릇에 담고, 설탕을 듬뿍 뿌린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셨지요.


그때는 요즈음처럼 수박이 크지도 않고 또 수박 맛이 달지도 않아 설탕을 뿌려 화채를 만들었는데, 심지어는 가루로 된 쥬스를 뿌려먹은 기억도 있습니다. 사이다나 환타를 붓기도 했지요. 그때에는 지금처럼 하우스 재배가 일반화되지 않았으니, 어느 농가의 밭에서 뜨거운 햇빛아래 뒹굴며 익어가던 수박이었겠지요.


수돗가에서 웃통벗고 시원하게 등물을 하고 난 뒤, 삼형제 옹기종기 모여앉아 숟가락으로 떠먹는 화채. 숟가락으로 떠 올린 빠알간 수박속은 한 입 깨물면 참으로 달고 시원합니다. 방금까지 뙤약볕아래서 놀다 지친 몸이 확 깨어납니다. 목젓을 넘어가는 수박의 차가운 단 맛은, 활기있고 그렇게 순할 수가 없습니다.


<톰 소오여의 모험>을 쓴 유명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수박을 일컬어 “이세상 사치품의 제일.. 한 번 맛을 보면 천사들이 무엇을 먹는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천사들이 먹고 사는 음식이라 불리울 만큼 달고 감미롭고 시원합니다. 까만 수박씨가 동동 떠 있는 달달한 국물을 마시면 더위가 다 도망가지요. 어머님은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허겁지겁 수박화채를 떠 먹는 삼형제를 그윽한 눈길로 웃으며 바라보셨지요.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면서 먹는 어떤 고급 아이스크림도,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그 무더운 날의 수박 화채맛을 절대로 당해낼 수는 없을 겁니다.


수박은 고대 이집트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 4천 년 전부터 재배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수박은 호박과 같은 박과에 속하는 일년생풀로, 보통 과일로 알려져 있지만 채소입니다. 


`수박 한통 값이 쌀 다섯 말`이라고 하면 엄청 비싼데, 이건 요즘 시세가 아니라 조선 세종23년(1441년)때의 가격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엄청나게 비쌌던 거지요. 세종시대 기록에는 수박을 훔쳐먹다 곤장을 맞은 내시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수박이 시원한 것은 단지 온도가 차가운 것만이 아니라, 몸을 차갑게 하고 이뇨를 촉진시키는 작용이 있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박은 신장병이나 고혈압 같은 병으로 인해 생기는 부기를 가시는 데 효과가 탁월하고, 또한 수박씨도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수박은 뜨거운 날 먹을수록 맛있습니다.


수   박                      윤 뮨자
 
나는 성질이/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줄무늬 비단 옷만 골라 입는다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겉모양하고는 다르게/관능적이다 (후략)


수박이 겉모습과는 다르게, 마음이 뜨겁고 속살은 달콤하고 관능적이라고 노래한 시입니다. 가게에 진열된 저 싱싱한 수박을 사 먹고 싶은데, 저는 아내와 달랑 두 식구라 좀 망설여집니다. 둘이 먹기에는 요즈음 수박의 크기는 너무 큰 거지요. “보름달 같은 수박 한 통/ 혼자서는 먹을 수 없지/ 다 함께 먹어야지/ 나눠서 먹어야지`”  안도현 시인의 `수박 한 통`이라는 시처럼, 수박은 여럿이 나누어 먹어야 맛있습니다, 옛날에는 조그마한 수박 한 통으로 온가족이 달려들어 먹던 수박이었는데, 요즘 수박은 너무 커서 식구 적은 집은 한 개를 다 살수가 없습니다.


수박은 여럿이 모여서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  지금 수박을 사지 말고, 이번 주말에. 아내랑 친구들 몇몇 함께 계곡이라도 놀러 갈 때 사야겠습니다.  계곡에 발 담그고 오순도순 수박화채 해서 먹어보려고요. 행복이 항상 뜬구름 잡듯이 먼 나라에 있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수박화채 한 그릇 그리고 쉴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나무 그늘아래서, 시원하게 낮 잠 자면서 어릴 적 수박화채 깔깔대며 먹던 그날 생각해 보려고요.


[고대화 아우라미디어 대표 프로듀서]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