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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한 여름 음식의 제왕 냉면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한 여름 음식의 제왕 냉면

기사승인 2014. 08. 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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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절정입니다.  지난 주말 집사람과 집 근처에 있는 유명한 냉면집에 가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왔습니다. 찌는 듯이 무덥고, 숨이 턱턱 막힐 때, 입맛도 없어 뭐 먹을까 고민스러울 때, 살얼음 동동 뜬 냉면 한 그릇은 기분까지 좋게 해 주는 고마운 음식입니다.


냉면은 정말 흥미로운 한국 고유의 음식입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국수를 차갑게 해서 먹는 음식입니다. 강렬한 비쥬얼과 맵고 짠 양념이 기본인 한국음식에서 냉면은 매우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음식입니다. 이 흥미로운 음식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에서 그 원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냉면을 하는 음식점 중에는 거의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집들도 많고, 한국음식 중에서 소위 음식 장인의 전통이 가장 살아있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메밀면을 장인답게 동글게 말아 올리고, 고명을 정성스레 잘 얹고 황금 빛깔의 육수에 담겨있는 잘 생긴 냉면을 만나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사실 한국 음식 중에 가장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합니다. 대충 만들기는 쉬워도, 맛있는 냉면은 절대 집에서는 못 만듭니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한겨울에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사리를 대한문 밖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말아 드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메밀은 자체에 끈기가 없으므로 메밀을 빻아서 국수를 치대고 압착해서 국수로 내리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왕실에서도 냉면사리만 테이크 아웃 한겁니다. 달구경하면서 드시던 냉면. 참으로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국수 내리는 것부터 육수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공정은, 사실 제대로 하려면 엄청나게 힘들고 지난한 과정입니다.


냉면은 조선시대에도 기록이 많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 시문선>에서, “서산에 눈이 한 자씩 내리면, 흰 배추김치와 더불어 냉면을 먹는다”고 노래했습니다. 이처럼 원래 냉면은 추운겨울에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먹던 평양냉면이 원류입니다.


창문 덜컹이며 바람부는 한겨울, 조용히 사락사락 눈내리는 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동치미 국물에 말아놓은 구수한 메밀국수 한 그릇을 사랑하던 분들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절절 끓는 아랫목에서 새참이나 야식으로 먹었던 음식이, 오랜 시간을 거치며 여름음식으로 바뀐 거지요.


냉면은 한국 음식 중에서 재료 맛에 가장 집중하는 음식입니다. 예전에는 냉면 육수에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대로 동치미 국물을 넣는 식당이 많았는데, 요즘은 고기육수를 내는 집이 많습니다. 여름에 육수로 동치미를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대장균세균이 번식하여 신문을 떠들석하게 장식하는 위생 사건을 자주 일으키다 보니, 결국 시원한 동치미국물이 사라진 것입니다. 세월따라 음식도, 맛도, 레시피도 바뀌어갑니다.


국          수                         -  백   석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故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냉면육수를 한 수저 떠 먹어봅니다. 그야말로 은근한 맛의 미지근한 육수가 목젓을 타고 흐릅니다. 냉면은 아버지의 맛이라 합니다. 무심한 듯 하지만, 은근하고, 속정이 깊은 맛입니다. 냉면의 맛에 대해서는 “희스무레하다, 밍밍하다, 도대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처음에는 대강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요. “한번 맛을 보면 빠진다, 어떤 음식보다 강렬한 중독성이 있다.” 서로 극단적인 의견들이 난무하는 이 음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마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독보적이고 매력적인 음식입니다. 면을 먹어봅니다. 찰기가 적은 메밀면은 퍼지는 속도가 대단히 빨라서, 심지어 주방 바로 옆에서 먹어야 한다는 분도 계십니다. 후루룩 면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맹렬하게 먹어야 면의 촉감을 유지하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입천장에 들러붙는 메밀의 거친 향기. 아. 참 멋진 음식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주신 냉면은 동치미 국물의 냉면이었습니다. 그때는 도대체 이 밍밍한 냉면을 왜 먹나 생각했었지요. 사실 냉면의 어른의 맛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밍밍하던 냉면의 맛은 황금빛 감칠맛이 되었습니다.


한국사람 이어야 이 맛을 아는 것 같습니다. 국산메밀도 많이 나지 않는다하고, 인스턴트 육수가 판을 치고, 근본도 알 수 없는 각종 음식들이 난무하는 요즈음, 제대로 된 냉면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밤 새 애쓰며 꿋꿋이 맛을 지켜내는 식당에서 맛있는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기분은, 마치 좋은 공연 하나를 본 것 같은 포만감을 줍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음식은 육신의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까지 달래줍니다. 흠. 오늘, 시원한 냉면 한 그릇 어떠신가요. 


<고대화 아우라미디어 대표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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