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고대화의 멋잇는 음식 이야기]향긋한 봄의 전령 쭈꾸미

[칼럼][고대화의 멋잇는 음식 이야기]향긋한 봄의 전령 쭈꾸미

기사승인 2013. 03. 21. 09:5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춘분이 지났습니다. 이번주에는 이제 완연한 봄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주말에 드라마 구상차, 좋은 분들과 전북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봄을 맞은 남도, 섬진강은 아름답더군요. 그 유명한 내장산에도 들렀습니다. 백제여인이 천년동안 전쟁터에 간 남편을 기다린다는 백제가사 정읍사 공원에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빨간 동백꽃이 활짝 피었더군요. 그 거세고 강한 겨울을 이기고 오는 수줍은 봄의 모습은,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여하튼, 봄에는 자꾸 졸리고 한없이 나른해지고, 입맛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날에는 봄 음식을 먹어야지요. 요사이 가장 맛있는 제철음식중 하나가 주꾸미입니다. 주꾸미는 문어과 연체동물입니다. 그 외 문어과 동물로는 문어와 낙지가 있는데, 다 맛있는 음식 재료입니다. 아시다시피 문어는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낙지는 미식가들도 최상의 해산물로 여깁니다.

여기에 비하면 사실, 주꾸미는 천덕꾸러기이지요.  몸집이 작은 탓에 살이 무르고 깊은 맛이 적기 때문에, 말려먹거나 젓갈로 담그지도 않고, 다양한 요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솔직히 모양새는 문어 같고 색깔은 낙지 같습니다. 서식하는 지역도 문어와 낙지의 중간 지대쯤 됩니다.

이 천덕꾸러기가 딱 한 철 대접을 받는데, 바로 동백꽃 필 무렵, 지금입니다. 이때의 주꾸미는 달기로는 낙지보다 달고 쫄깃한 식감은 문어보다도 우수합니다. 4월 지나 산란한 후에는 맛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알이 꽉 찬것보다 절반 정도 든 것이 가장 맛있는데, 그게 바로 요즘 잡히는 주꾸미입니다.

그래, 오늘같이 햇빛 좋은 봄날, 마음먹고 회사 근처 횟집에 가서 주꾸미 샤브샤브를 주문합니다. 샤브샤브는 제 철 주꾸미를 먹기에 가장 어울리는 조리방법인 것 같습니다. 멸치육수에 담겨 나오는 제철 봄 미나리를 먼저 건져 먹구요, 무와 대파를 넣어 시원하게 끓인 국물에 알이 꽉 찬 주꾸미를 살짝 데칩니다. 끓이는 육수가 너무 진하면 주꾸미의 본디 맛을 버릴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다리는 데치는 시간을 조금만 넘겨도 식감이 나빠지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빨리익는 다리를 먼저먹습니다. 다리살의 식감은 쫄깃하기 보다는 야들야들합니다. 다리의 맛은 문어만큼 진하지 않지만, 역시 봄 주꾸미야 라고 할 정도로 달디 달아서, 어설픈 낙지보다 훨씬 낫습니다.

몸통은 다리보다 오랜시간 푹 삶아야 합니다. 다리가 여덟 개 달렸고, 그 바로 위에 눈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머리라고 하는 부위는 사실 몸통입니다. 이 몸통을 가르면, 그 속엔 영락없는 쌀밥 한덩이가 소복이 들어있습니다. 알이 꼭 쌀알처럼 생겼거든요.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그것을 한입에 넣고 천천히 오물거리면 그야말로 천하일미, 달아난 밥맛이 삽시간에 돌아옵니다.

쌀이 귀하던 시절, 죽기 전 흰쌀밥 한 그릇 먹어보길 소원한 아비에게 밥 대신 지어 올려 효도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주꾸미 뱃속의 알은 쌀밥을 닮았습니다. 쫀득하며 뜨거운 것이 입안 가득차고, 살살 씹으면 특유의 바다향과 어우러진 따스한 식감이 몰려옵니다.

주꾸미의 먹물과 같이 씹으면, 정말 맛있고 풍부한 향의, 쫄깃거리는 쌀밥의 풍미가 한가득입니다. . 사실, 주꾸미의 진미는 머리처럼 생긴 몸통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오독오독한 식감의 알과 쫄깃한 몸통의 살, 그리고 짙은 바다 향의 먹물과 내장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먹물이 풀어진 국물을 들이키면, 향긋하고 고소한 봄바다가 그대로 전해지고, 담백한 맛이 속을 풀어줍니다.

작년에 주꾸미가 하도 궁금해서 충남 보령 오천항으로 작심하고 잡으러 간 일이 있습니다. 주꾸미는 겨울에는 찬 바닷물을 피해 깊은 바다에서 살다가, 봄꽃이 필 무렵에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연안에 몰려옵니다. 이때 새우같은 먹이 활동을 왕성히 하면서 알을 품지요.

주꾸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잡기도 하는데, 긴 줄에 주욱 소라껍데기를 꿰어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으면, 밤에 활동하던 주꾸미가 이 속에 들어갑니다. 주꾸미는 자기몸이 쏙 들어갈 만한 틈에 숨는 버릇이 있는데 소라 껍데기가 딱 그 크기라는 겁니다. 그 안에 주꾸미가 머리부터 들어가서, 작은 돌이나 나무조각을 발로 감아 소라 입구를 틀어 막습니다. 소라를 걷었을 때, 대문이 닫혀 있으면 안에 주꾸미가 들어 있는 거지요. 수백마리를 잡아도 예외가 없습니다. 주꾸미 머릿속에 집 대문을 닫아야 한다는 지식이 있는 거지요!!.

그러면 끝이 휘어진 철사같은 기구로 주꾸미를 잡아 빼주면 됩니다. 두어시간 백마리도 넘게 잡아서 배터지게 실컷 먹었답니다. 주꾸미에는 철분 성분이 많아 빈혈에 좋고,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답니다. 쭈꾸미 먹물 성분은 타우린이라는데, 이는 항암효과와 피로회복, 남성들 정력향상에도 매우 좋답니다.

봄에는 봄에 나는 식재료를 먹어야 합니다. 우리 몸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남도에는 빨간 동백꽃이 한창이고, 바다에서는 뱃속에 봄바다를 가득 품고 있는, 제철맞은 주꾸미잡이가 한창입니다. 주꾸미를 잡아올리는 어부의 환한 얼굴이 생각납니다.

제철 식재료가 나는 곳에 가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제철입니다. 멋지고 생기가 넘치지요. 흠. 우리들의 제철은 언제일까요. 비닐하우스다 수입식품이다 제철도 알수없는 식재료에 헷갈리는 몸을 위해, 향긋한 봄바다 가득 품은 주꾸미 샤브샤브 한 번 드셔보시지요.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