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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바다에 핀 꽃 멍게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바다에 핀 꽃 멍게

기사승인 2013. 05. 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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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월입니다. 흐드러지게 피던 벚꽃은 이미 졌지만, 여기저기 철쭉이 만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해도, 요사이는 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철쭉이 필 때, 바다에도 꽃이 핍니다. 바다 꽃, 그게 뭔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멍게입니다. 자연산 멍게야 일년내내 있지만, 남해에 벚꽃이 흐드러질 때 양식 멍게도 점점 맛이 들어갑니다. 양식장 멍게는 5미터쯤 되는 긴 줄에 알알이 박혀 있는데, 겨우내내 푸른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동백이 뚝뚝 떨어질 때에 그 붉고 화사한 몸을 물 밖으로 내미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5월 멍게는 새 며느리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봄 멍게를 귀하게 칩니다. 뭍의 봄꽃이 달콤한 향을 품고 있듯 이 봄 바다의 꽃도 달콤한 바다의 맛을 제 몸에 가득 담고 있습니다. 소위 “제철멍게”인거지요.

멍게는 딱 보면 일단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우둘두툴 빨갛고 투박하게 생긴 별로 마음에 안드는 생김새입니다. 빨간 껍질은 매우 단단해서 먹을 수도 없습니다. 80년대 말 세운상가앞, 대낮같이 환하게 카바이트 불을 밝혀놓은 포장마차에서, 직장 동기들과 노오란 멍게의 속살을 옷핀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가며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왜 하필 옷핀이었을까요. 빨간돌기가 이상하게 오돌도돌 나와있는 단단한 껍질안에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운 속살이 들어있을까요. 그 노오란 탄력있는 속살의 식감과, 그 독특하고 비릿한 바다향, 그리고 왠지 약간은 휘발성이 있는 알싸한 맛이 생각납니다. 약간 비린 맛이 있어서 혀를 휙 감고 도는데, 쓴맛도 있고 단맛은 깊습니다. 약간 배릿하면서도 쌉싸름하고, 상큼하고 은근한 단맛이 오래 입안에 감돌지요. 이 독특한 맛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굴을 좋아한다면 이 짭짤하고 요오드의 짜릿한 풍미가 느껴지는 멍게도 좋아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물컹하고 흐물거리는 촉감 때문에 이 맛을 싫어하는 분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 많은 소주를 마셔가며, 동기들과 저는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었을까요. 그때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어느 바다를 가든, 어느 해수욕장을 가든, 소주 한두병 사들고 바닷가 방파제나 파시에 가면, 해녀나 아주머니들이 싱싱한 멍게를 둔탁한 칼로 서걱서걱 잘라 접시에 담아줍니다.

물론, 이 장면에서 기러기 몇 마리가 주위를 날아서, 바닷가에 온 분위기를 띄워 주지요. 멋진바다를 보며, 소주에 멍게안주로 한잔씩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이야, 바닷바람이 얼마나 상쾌하고 좋은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면서 바다에, 술에 취한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때 먹는 알싸하고 비릿한 멍게의 맛은, 바로 바다의 맛입니다.

멍게/유화

(전략) 성급한 젊은 혈기는/까칠하던 바위섬위에서/
끝내 단 한번의 손길로/살폿한 너의 속살을 헤집고/
뜨거운 노을의 입술과/성난 파도의 입으로 삼켰지 (후략)

멍게를 못 생겼다 하지만 어찌 보면 매우 예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멍게를 먹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는 Violet(비올레)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영어권 국가에서는 거의 취급을 하지 않지만, 프랑스어로 ‘figue de mer(바다 무화과)’ 또는 이탈리아어로 ‘uovo di mare(바다 달걀)’라고 부릅니다. 칠레, 한국, 일본에서도 멍게를 날로 즐겨 먹습니다. 멍게는 우렁쉥이의 경상도 사투리였지만 표준어인 우렁쉥이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되자 표준어로 받아들여진 말입니다.

멍게가 도시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는 그리 오래지 않고, 그 독특한 향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향은 또 중독성이 아주 깊습니다. 마치 산초같은 향신료처럼 호 불호가 분명히 갈리지요. 특유의 향은 불포화알코올 신티올(cynthiol)이라는 알콜성분 때문인데, 너무 진한 그 향 때문에 더러는 먹기 거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년 봄, 남해에서 좋은 분들과 바람 엄청부는 날, 방파제에서 멀리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돌멍게를 반으로 잘라 소줏잔 삼아 술을 마신적이 있습니다. 껍질이 딱딱한 돌멍게를 반으로 잘라놓으면 딱 소줏잔 크기가 되거든요. 멍게의 빨간 돌기들이 참 예쁜 술잔이지요. 여기에 술을 부으면, 술맛이 심심해지면서, 멍게의 진한 맛과 향이 단번에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껍질 내부에 있는 멍게 표피가 술독을 제거하기 때문이랍니다. 소주와 섞인, 돌멍게의 맛, 그 가득한 바다의 풍미가 생각납니다. 오늘저녁은 친구들과 돌 멍게잔에 멍게안주로 소주 한 잔 해야겟습니다.

맛을 떠나서, 작년 봄 남해의 그 노을, 그 밤바다, 귓전을 때리던 서늘한 바닷바람의 풍류를 당해낼수 있을까 싶습니다만, 오늘 친구들과 모처럼 만나는 마음은 그 못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남해 봄바다는 고요하고 물빛은 맑겠지요. 바닷가 동백도 붉고요. 봄을 맞은 남해 바다, 그 속에서 빨갛게 피어 흔들리는 멍게 꽃을 상상합니다. 봄 바다의 고요와 맑음이 멍게의 맛을 깊게 할 겁니다. 참 귀한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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