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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봄에서 여름사이 통 큰 밴댕이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봄에서 여름사이 통 큰 밴댕이

기사승인 2013. 05. 3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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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월말입니다. 곧, 무더위가 오겠지요. 뭐, 벌써 덥습니다만. 요즈음 들판에는 보리가 익어갑니다. 곧 보리를 벨 때가 된거지요. 이럴때 제일 맛있는게 뭔지 아십니까. 속좁은 생선. 그렇습니다. “밴댕이 소갈딱지”의 밴댕이가 바야흐로 제철입니다. 속칭 “보리벨 때 밴댕이”. 그렇습니다.

흔히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 편협하고 쉽게 토라지는 사람을 일컬어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합니다. 손바닥 크기 정도의 밴댕이는, 다른 바닷물고기와 달리 속이 매우 좁아 내장이 팥알만큼 작아서, 그런 속담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밴댕이가 또 성질 급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생선입니다. '성질 급한 밴댕이는 화나면 속이 녹아 죽는다'는 말대로, 밴댕이는 그물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몸을 비틀며 파르르 떨다가 바로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밴댕이 활어회를 구경할 수가 없는 거지요. 이처럼 속도 없고 성격도 안좋으니 그 맛이 오죽할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밴댕이입니다.

속담에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변변치 못하지만 때를 잘 만났다는 것을 빗댄 말로, 5~6월의 밴댕이가 맛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뉴월 들판의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갈 무렵의 밴댕이 맛은 농어나 도미회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근사한 맛입니다. 7월 중순부터 산란에 들어가면 금어기로 정하여 밴댕이 잡이를 멈추기 때문에, 생물은 먹을 수가 없게되고 맛도 없습니다.

밴댕이는 강화가 유명합니다. 강화밴댕이는 한강, 임진강에서 흘러내려온 황토의 퇴적물을 먹고 자란 까닭에 그 맛이 탁월하여 임금님 수라상에까지 오르던 강화 특산물입니다. 밴댕이를 켜켜이 쌓고 소금에 발효시킨, 잘 삭혀진 밴댕이젓을 파, 마늘, 깨소금같은 양념을 넣고 버무리면 좋은 밑반찬이 됩니다.

임진왜란때 수많은 전투로 바다를 누비던 이순신장군도 밴댕이를 즐겨 드셨다고 합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본가에 큰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전투중이라 달려갈 수 없었던 장군은, 밴댕이젓을 집으로 보내면서 어머님을 걱정합니다.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전복과 어란(魚卵)몇 점, 밴댕이젖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큰 일을 겪은 노모에게 입맛을 돌게하고 건강을 되찾게 해드리기 위해, 장군이 노모를 위해 선택한 먹거리가 밴댕이젓이었던것이지요. 그만큼 밴댕이젓(蘇魚醢)은 진미의 하나로 취급되었던 고급 생선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밴댕이의 왕궁진공(進貢)을 관장하던 소어소(蘇魚所)라는 관청을 따로 둘 정도로, 중요한 생선으로 취급되었답니다.

올해도 밴댕이를 잊지못해 강화에 다녀왔습니다. 강화도는 지금, 밴댕이 천지입니다. 내장이 워낙 작다보니 머리와 내장을 도려낸 후 통째로 먹는데, 밴댕이 회를 처음 한 입 베어물면, 혀에 닿자마자 부드러운 살이 녹아버리는 연한 식감입니다. 살이 입안에서 고급스럽게 허물어지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옵니다.

가을 전어처럼 아주 기름져서 고소함이 너무 강한 것도 아니며, 꽁치나 웅어처럼 힘없이 입안에서 허물어져 식감을 방해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생선회에 비해 씹는 맛은 덜할지 모르지만 고소하고 보드라운 맛은 아주 일품입니다. 한 입 베어무니 혀 안에서 기름기 자르르한 밴댕이가 요동을 칩니다. 밴댕이구이는 회를 다 먹고 주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밴댕이살의 고소한 맛이 워낙 강해서 밴댕이구이를 먹고 난 다음에는 어떤 음식도 제맛을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회로 먹을 것은 1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것이 식감이 부드러워 좋고, 구워 먹을것은 큼직할수록 살이 찰지게 되어 맛이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밴댕이를 포식했으면 외박하지 말라’ ‘80대 노인이 밴댕이를 자주 먹으면 주책을 부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로 스태미나에 좋다고 합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역사도 깊은 밴댕이. 그렇지만, 사람들은 겉만보고 밴댕이를 속좁네 어쩌네하는것이니, 밴댕이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먹거리의 계절감이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같은 세상에, 봄과 여름사이 오로지 한 때에만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밴댕이가 있다는 것은, 사람은 제철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된다는 믿음을 가진 저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뭘 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겉만보고 밴댕이를 모두 속좁다 놀립니다만, 고소한 초여름 바다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통 큰 밴댕이는 다 이해해줄겁니다. 맛난 밴댕이를 실컷 먹었으니, 아. 이제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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