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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잊혀진 명절 유두절과 유두면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잊혀진 명절 유두절과 유두면

기사승인 2013. 07. 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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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참 덥습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릅니다.  외부 기온이 상승하여 몸이 심한 더위를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식욕이 떨어지며 기력이 쇠약해져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피서(避暑- 더위 피하기)가 그래서 필요한 거지요. 지금 강원도의 바다와 계곡은 이른바 `바캉스'를 즐기려는 피서객들로 넘쳐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한여름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옛날 농사를 주업으로 삼던 우리 조상들께서도 이 무더위에 피서를 하였을까요? 당연합니다. 우리 조상들도 한 여름 바캉스를 즐기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력 6월 보름(음력 6월 15일, 올해는 양력으로 7월 22일입니다), 무더위를 피해서 산과 계곡을 찾아 하루를 즐기고 더위를 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아십니까? 유두(流頭)날입니다. 조선 순조시대의 학자 정동유(鄭東愈)는<주영편(晝永編)>에서 “우리나라 명절 중에 오직 유두절만이 고유의 풍속이고, 그 밖의 것은 다 중국에서 절일이라고 일컫는 날이다”라고 했을 만큼, 우리민족 고유의 풍습이랍니다.

유두(흐를 流 머리 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을 줄인 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는 뜻인데, 이렇게 하면 상서롭지 못한 것을 쫓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양기(陽氣)를 지니고 있어서 이 물에 머리를 감으면 한여름 더위를 피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거든요. 유두날은 이웃들이나 일가 친지들과 함께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물맞이를 하면서 몸을 씻으며 놉니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가지고 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서늘하게 하루를 지냅니다.

이 유두풍습은 아주 옛날 신라 때부터 있어 온 풍습입니다. 고려 명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에는 “옛 동도 (東都 : 경주) 풍속에, 6월 보름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을 씻어 버린다. 그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잔치를 하는데, 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풍습이니, 무려 천오백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진 유두절인 것이지요.

이날 먹는 음식 중 중요한 것이 유두면이라 불리는 국수입니다. ‘유두면’은 햇밀로 만든 밀국수인데 이날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고 장수한다고 합니다. 원래는 밀가루 반죽을 구슬과 같이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 오색으로 물들여 세 개를 색실로 꿰어서 몸에 차거나 문설주에 걸어서 잡귀를 예방하였다고 합니다만, 야외에서 먹는 형태는 밀가루를 밀어서 칼국수형태로 먹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밀가루가 외국에서 수입되어 매우 흔하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흔하지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혼기가 찬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언제 할 것인가를 묻는 대신 국수 언제 먹여 주느냐고 묻는데, 이는 예로부터 혼례와 같이 경사스러운 잔치에는 손님들에게 반드시 국수를 대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풍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경사스런 날 국수를 대접하거나, 갈비탕을 대접하게 되면 탕에 국수나 당면을 말아서 대접하는 연유입니다. 국수 생김이 길게 이어진 모양이므로 경사스러운 일 또는 추모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세계적으로, 국수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믿음을 가진 나라가 매우 많습니다.

어쨋거나, 유두절에 먹는 유두면에 쓰는 밀은 반드시 그해에 갓 수확한 햇밀로 만들어 먹어야 합니다. 잡귀도 물리치고, 한 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잔치국수의 원조이지요.

이웃들과 친지들이 함께하는 집단회식의 형태를 띈 피서이니,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했겠지요.  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한여름 지천인 애호박도 썰어 넣고, 강가나 계곡에서 잡은 민물고기들도 넣어 어탕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겠지요. 이런 유두절의 전통이, 지방에 따라 물맞이로 변하기도 하고, 민물생선을 잡아 매운탕을 끓여먹는 천렵놀이로 변하기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봄에 진달래꽃 필 때 화전놀이를 즐기던 우리 선조들은, 한 여름에는 강가나 계곡을 찾아 국수를 나누어먹으며 피서를 즐겼던 겁니다.  푹푹 찌는 날 농사로 고된 일손을 놓고, 일가친척 이웃 할 것 없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과 계곡을 찾아가, 동네잔치를 벌인 거지요. 참 낭만적인 민족입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은 떠나고, 유두절의 전통이 사라지게 된 것이 왠지 짠합니다. 그래서 과감히, 이번 주말에 한번 강원도로 떠나려고 합니다. 아, 물론, 올해 갓 수확한 햇밀을 어떻게 구하는지 몰라 조금 해매기도 하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어디인지 찾는답시고 지도를 가지고 오래 씨름도 했지요.

평소 좋아하는 벗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곧 유두절이니 동쪽으로 머리감으러 가자했더니 무슨 말을 하느냐며 통 못 알아 듣습니다. 수 천년 내려 온 전통대로, 동해로 흐르는 조용한 계곡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머리도 감고, 멱도 감고, 천렵도 해서 햇밀국수도 맛나게 말아 먹어보겠습니다. 흠.  참 좋은,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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