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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동해바다가 풍덩 시원한 물회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동해바다가 풍덩 시원한 물회

기사승인 2013. 08. 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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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때 였습니다. 딱 요즈음. 낮에는 엄청나게 뜨거워도 새벽에는 조금씩 시원해지는, 늦여름이었지요. 할 일도 별로 없어 빈둥거리던 날. 바다보러 가자는 선배를 따라 강원도 묵호라는 곳에 갔습니다.

지금은 동해시가 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묵호’라는 이름을 더 기억합니다. 묵호에 도착한 건 밤 아홉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선배는 소주를 몇병 사고, 시장에 들러 물회 한 접시를 샀습니다. 둘이서, 묵호항 선창가 방파제에서 바다를 보면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어둠속에 바다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람에 따라오는 짭짤한 소금기와, 부서지는 파도소리. 멀리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의 환한 불빛과, 선창의 불빛,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 말없이 술을 마시던 선배가 이야기했습니다. “바닷가에서는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 않아”. 바다를 벗삼아 잡어물회를 안주로 소주를 부었습니다. 아. 물론. 그날 당연히 취했지요.

물회라는 것은 원래 뱃사람들이 뱃전에서 일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을 대충 썰어 오이, 무 같은 채소를 채 썰어 넣고 고추장(또는 된장)을 풀어 물에 말아서 훌훌 넘겨먹는 일상식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선원들의 끼니로 먹은 거지요.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너무 다양해서, 신선하기만 하면 비린내가 심하고 살이 무른 꽁치·갈치·고등어 등의 생선 외 거의 모든 생선을 물회로 조리해 먹을 수 있습니다.

물회의 양념으로는 동해안 지역에서는 고추장이 강세이고 제주도와 남해 일부 지역에서는 된장을 주로 쓴다고 합니다. 여기에 고춧가루, 식초와 설탕 등을 더해 맵고 달고 시큼하고 상큼한 맛의 물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 조리법입니다.

미식의 관점에서 얼핏 생각하면 물회는 조금 무지막지한 음식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맵고 달고 신 양념에 풋고추며 마늘등이 많이 들어가서, 오로지 한 가지씩 단품으로 먹는 일식의 생선회에 비해 품격이 낮은 생선회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원래 출발이 바닷가 뱃전에서 뚝딱 해먹는 음식이어서 그 음식모양새가 투박한 것도 한 이유이겠고요. 그러나 물회는 일본음식이 아니라, 옛날부터 우리 어촌에서 끼니로 먹어오던, 여러 맛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비빔밥을 생각해 낸 한국인의 입맛이 탄생시킨 한국 고유의 멋진 음식이랍니다.

자. 시원한 물회를 한 그릇 먹어보지요. 우선, 생선회와 고추장을 젓가락으로 살살 잘 비벼야합니다. 한국식 생선회는 생선살을 채치듯 썬다는 특징이 있는데, 살아 있는 작은 생선을 이렇게 썰면 씹는 맛이 좋아진답니다. 우리 한국사람은 “씹는 맛”을 중시하거든요. 얼음도 약간 넣고요. 차가운 물이나 육수를 너무 많이 부으면 안됩니다.

각종채소와 고추장, 생선회를 잘 섞은 다음, 채소와 생선회를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습니다. 한 입 깨물면 상큼한 바다가 입안에서 시원하게 밀려옵니다. 마치 비빔밥처럼, 생선회와 채소, 그리고 고추장 국물이 어우러져서 각자의 맛이 충돌합니다. 어느 분의 말처럼, 입안에서 온갖 맛의 요소들이 요동치게 해서 그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독특한 미각입니다. 이렇게 씹으면서, 국물을 함께 들이켜 줍니다. 참, 깔끔하면서, 칼칼하고, 시원한 맛입니다. 남은 국물에 국수나 찬 밥을 넣어 말아먹어보십시오. 뱃전에서, 바다를 보면서 먹는 느낌!!

묵호. 선배와의 그 날 이후, 마치 무슨 통과의례처럼 동해바다를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제 존재를 확인하는 거창한 의미는 나중이고, 친구들과 서울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 “바다보러가자”라는 말에, 취기를 핑계로 강원도로 병사처럼 돌진을 하고는 했지요. 마치 탈출처럼요. 그러면 또 몇 달 동해 바다보러 가자는 병이 도지지 않고 살 수 있었거든요. 그때, 묵호항에서, 여러 가지 생선들을 썩썩 비벼 물 말아 먹던 물회의 그 강렬한 맛. 독한 소주한잔 넘겨 쓰라린 목젓을 묵직하게 위로해주던,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생선들의 생명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팔팔한 느낌도 그립습니다.

묵호를 아는가
                       마르시아스 심

바다,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였다...(중략)
파르스름한 바다, 그 바다가 있는 곳  묵호
그렇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독한 술로 몸을 적시고
방파제 끝에 웅크리고 앉아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토악질을 하고...(후략)

여름의 끝입니다. 여름내 붐비던 해수욕장도 이제 한산하겠지요. 바다를 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요 며칠간 동해바다가 왠지 그립습니다. 동해바다에 가면 묵호항이 있고 그 묵호항에 물회가 있습니다. 그 선창가 방파제 끝에서, 소주와 같은 바다를 보며, 물회 한 그릇 놓고 친구와 기분 좋게 한잔 하고 싶습니다. 물회에는 파르스름한 동해바다가 풍덩 빠져있습니다. 어쩌면 거기, 젊은 시절의 제가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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