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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진격의 가을바다 꽃게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진격의 가을바다 꽃게

기사승인 2013. 09. 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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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가을이 오나봅니다. 하늘이 자꾸 높아져가고, 시원한 바람도 불고, 곡식은 익어갑니다. 드라마를 하다 보니 여러나라에 가보았지만,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는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합니다. 가을이 되면, 남자들은 왠지 조금 심난해지거든요. 봄은 여자의 계절이구요. 누구는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의 DNA에 존재하는 유전자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가을에는 남자의 수렵본능이, 봄에는 여자의 채취본능이 발동을 해서, 가을에는 남자가 자꾸 밖으로 나가고, 봄에는 여자가 밖으로 나가려고 한답니다. 하하하.
 
꽃게가 딱 그렇습니다. 꽃게잡이는 봄과 가을에 절정을 이룹니다. 꽃게의 제철이 봄, 가을 두 차례이거든요. 봄에는 암꽃게가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올라오느라 많이 잡히는데, 이때가 알이 꽉 차있어 맛있고, 가을에는 수꽃게가 수정을 위해 왕성하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잘 잡히고 살이 쪄서 맛도 있습니다. 꽃게를 뒤집으면 하얗고 단단한 꼭지가 복부를 덮고 있는데, 암컷은 그것이 둥글고, 수컷은 모가 나 있습니다. 꽃게는 신선도가 생명이라서, 잡은뒤 얼마나 빨리 먹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즉, 제철에, 산지에 가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는 거지요.

지난 주말. 천안사시는 지인분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7,8월 어족보호를 위한 꽃게 금어기가 막 풀려서, 가을꽃게를 잡을 수 있노라고. 앞뒤 볼 것 없이 주위 몇 분과 불문곡직 충남 천북항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철이 갓 지난 서해바다. 조그만 항구는 조용하고 고즈넉합니다. 작은 어선에 올라 미리쳐 둔 꽃게 그물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물을 따라 올라오는 수 많은 꽃게들!! 잠깐 걷었는데도, 수십마리가 올라옵니다. 꽃게 풍년이랍니다. 몸집도 아주 큽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저 바다밑을 오로지 수정을 해서 종족을 보전하겠다는 일념하나로 떼를 지어 진격하고 있는 수 많은 꽃게들의 무리를 생각합니다. 저 넓은 바다 아래, 지금 이순간도 말이지요.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다, 앞발 집게에 물려 조금 다쳤더니 피가 철철 흐릅니다. 힘도 장사입니다. 오늘을 위해 일년내내 먹고 살이 꽉 찬 숫게는 지금이 인생의 전성기이지요.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입니다.

바다에 설치해놓은 바지선에 올라와, 잡은 꽃게를 바로 삶습니다. 싱싱한 꽃게는 비린내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된장만 넣고 끓여내는 탕으로 해먹는 것이 사실 가장 맛있고, 더 강한 꽃게 향을 즐기려면 찜이 좋습니다. 게등짝을 아래로 놓고 삶아야 맛있는 국물이 게딱지에 고이게 되어 맛있게 쪄집니다. 약간 물을 넣어야, 게살이 짜지질 않는다고 선장님이 이야기하십니다. 15분정도 삶으면, 색이 빨갛게 변합니다. 너무 오래 삶으면 맛이 없으니, 3분쯤 더 뜸을 들이면 됩니다. 삶은 후에 뚜껑을 열 때 피어오르는 김에는 꽃게의 모든 향이 다 녹아 있습니다.

자. 우선 등딱지를 뗍니다. 게딱지안에 있는 노란 장을 먼저 숟가락으로 잘 파서 입에 넣습니다. 고소하고 달달하고 복잡한 이 맛은, 한국사람이라면 남녀노소 다 좋아합니다. 여기에 밥을 넣어 척척 비벼먹으면, 입안에 행복이 밀려옵니다. 게를 정확히 두 부분으로 손으로 척 갈라서는, 게살이 통통한 부분을 한 입 꽉 물어, 이로 살을 훑듯이 먹습니다. 하얀 살이 입안으로 밀려들어옵니다. 이 감미로우면서, 고소하고, 달콤한 게살 맛!  닭살처럼 살의 결이 살아 있고 탱탱하지만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맛의 홍수입니다.

단단한 게껍질안에 있는 이 부드러운 게살의 촉촉한 식감은, 감동스럽습니다. 집게발을 뚝 잘라 안에 있는 살을 발라냅니다.  두손을 다 동원해야 하지요. 너희가 게맛을 아느냐. 소주 한 잔이 빠질 수 없지요.  목젓을 뜨겁게 타고 넘는 소주에, 바닷바람 맞으며 게 다리를 들고, 안주삼아 게살을 발라 먹습니다.

月下獨酌四首詩 (월하독작사수시)
                                 李 白 (이 백)

(...전략)
 蟹蠣卽金液 (해오즉금액)   게의 집게발은 신선의 약이고,
 糟丘是蓬萊 (조구시봉래)   술 지게미 언덕은 곧 봉래산이라.
 且須飮美酒 (저수음미주)   좋은 술 실컷 퍼 마시고서,
 乘月醉高臺 (승월취고대)   달밤에 누대에서 취해 볼거나

당나라 시선(詩仙) 이 백이 지은  ‘달빛 아래 홀로 술 마시며(月下獨酌)’라는 시입니다. “술 잔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니 나와 달, 그림자 셋이 친구가 되었다”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데, “게는 신선이 먹는다는 불사약과 같으니 게를 안주 삼아 맛있는 술 한 잔 마시고 달빛 누각에 올라 취해보자”는 구절로 마지막 문장을 맺습니다. 이 좋은 가을. 서해안의 바다는 가을도 참 좋습니다. 지금, 속이 꽉 찬 수많은 수케들이 떼를지어 바다밑을 진군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사랑하는 분들과 가까운 서해 바다에 가셔서, 제철 숫게를 드셔보는 건 어떨까요. 이백이 그랬던 것처럼, 술도 한 잔 하시구요. 어쩌면, 신선이 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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