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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그리움을 부르는 은빛밥상, 갈치구이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그리움을 부르는 은빛밥상, 갈치구이

기사승인 2013. 09.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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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바람도 서늘하고, 그렇게 푸르렀던 나무도 은근히 물들어가고,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기까지 한 것이, 날씨도 가을이 되는 연습을 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오늘아침,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사람이 갈치 한 토막을 구워주더군요. 먹기전에,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렸을적, 아버지가 사오신 갈치를 어머니는 부엌 연탄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주셨지요. 갈치 구울 때 피어오르던 하얀 연기와, 그 고소한 냄새가 생각납니다. 아. 세월 참 빠릅니다.

갈치라. 갈치는 몸이 길고 납작한 띠 모양의 생선으로, 예로부터 도어(刀魚), 즉 칼을 닮은 물고기라 불리웠습니다. 갈치는 생긴 것뿐 아니라 사냥하는 자세도 '칼' 같답니다. 아주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칼처럼 머리를 세운 상태로 헤엄친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쉴때도 서서 쉰답니다. 서서 휴식이 될까 궁금하기는 합니다만. 어찌 보면 긴 칼이 바다속에 꽂혀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갈치는 닥치는 대로 뭐든지 먹어치우고, 성질도 사나워서 자기 동족까지 잡아먹는답니다. 심지어는 제꼬리도 잘라 먹는다지요. 오죽하면 갈치낚시할 때 갈치꼬리를 잘라 갈치 미끼로 쓰겠습니까. 넓은 바다를 날렵하게 누비면서 닥치는 대로 먹이를 사냥하는 성질 흉폭한, 번쩍이는 은빛 갈치를 상상합니다.

갈치는 고등어와 더불어 우리 한국인의 밥상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국민생선”이지요. 값싸고 맛이 있어서,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던 갈치가 요즈음은 어획량이 줄어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갈치는 연중 잡히지만, 10월에서 12월사이에 잡은 가을갈치의 맛이 가장 뛰어납니다. 수온이 내려가면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월동준비를 하기 때문에, 살이 도톰하고 기름이 많아지는거지요.

요즈음 제주 서귀포에 가면, 깜깜한 밤바다에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고기를 낚는 배들이 수평선에 한줄로 주욱 늘어서 있답니다. 야행성인 갈치를 잡기 위해서 밤새 집어등을 밝히고, 은빛 비늘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일이 낚시로 잡는겁니다.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가을 밤바다의 풍광과 더불어 줄지어 서있는 아련한 고깃배의 환한 불빛이 가슴을 적십니다.

헌데, 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생선가시를 발라낼 줄 모릅니다. 어설픈 젓가락질로 가운데 살집부분이나 몇 번 헤집어서 한 입 떼어먹으면 그만이지요. 성질이 급해서 찬찬히 살을 발라먹을 줄 모르는 겁니다. 생선 살 발라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탓일테니, 사실 모두 우리 어른들 탓이지요.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니, 밥상머리에 찬찬히 앉아서 생선살을 발라줄 시간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밥상머리에서 깨작깨작 젓가락질하는 아이들을 보면 속이 터집니다. 어르신들 생선구이 드시는 모양 보셨지요? 

가히 예술입니다. 살을 발라낸 뼈는 가지런히 놓여져, 정갈한 느낌마저 듭니다. 발라낸 살은 조금도 부스러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지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젓가락질이 가능해야 하는 일입니다. 서구사람들은 생선살을 발라 먹을 줄 모르지요. 하긴, 나이프와 포크로 갈치구이를 먹는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마는.

갈치는 길이보다 폭이 넓은 녀석이 맛있습니다. 신선한 갈치를 고르기 위해서는 몸을 덮고 있는 은분이 밝으며 상하지 않았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연탄불이나 숯불위에서 갈치를 구우면, 서서히 고소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갈치에 굵은 소금을 살살 뿌리고 구우면 점차 노르스름하게 구워지는데, 이때 표면을 젓가락으로 가만히 누르면 기름이 자글자글해집니다. 갈치는 구우면 살이 단단해지면서 살 색깔이 하얗게 되는데, 갈치는 구워 먹을 때 그 맛이 가장 잘 사는 것 같습니다.

살을 살짝 떼서 입에 넣으면, 따뜻하고 담백한 갈치살이 입에서 녹아내립니다. 달콤한 솜사탕 같은 맛인데, 씹다보면 스르르 풀어지며 녹아내립니다. 약간 서운한 끝맛입니다만, 고소한 여운을 남겨 또 먹고 싶게 됩니다. 밥과 함께 먹으면, 짭짤하고 고소한 갈치맛이 밥과 기막힌 궁합이 됩니다, 구이란, 자고로 이런 맛이어야지요. 어렸을 적, 어머님은 밥상 머리에 앉아, 갈치살을 찬찬히 발라 제 숟가락에 얹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맛난반찬은 다 저를 주셨지요. 갈치구이가 올라오는 날, 어머님이 갈치 드시던 기억이 없는걸 보면, 자식들 주시느라 정작 당신은 못 드신게 틀림없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중에서      - 박 영진

부모님과 함께하는 아침식탁/밥을 입에 넣으며 식탁을 내려 본 순간/어느새 바뀌어 있는 반찬 그릇들!/(중략)/아버지는 아버지가 맛있어 하시는 반찬을/어머니는 어머니가 맛있어 하시는 반찬을/자식의 밥그릇 앞으로 사알짝 옮겨 두신다/뇌졸증으로 떨리는 손/골다공증으로 떨리는 손...

이제는 갈치굽는 냄새를 점점 맡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렷을 적, 아버지께서 갈치를 사가지고 오신 날, 제가 먹은건 갈치가 아니라 어머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식구들 다 모여 갈치구이 먹던 은빛밥상이 그립습니다, 조만간, 고향에 내려가 통통하게 물오른 은갈치 한 마리 사다 노릇노릇 구워서, 어머님 숟가락에 갈치살 발라 얹어 드려야겠습니다. 흠. 우선, 갈치살 살갑게 발라내는 연습부터 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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