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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병든 소도 일어나는 가을낙지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병든 소도 일어나는 가을낙지

기사승인 2013. 10. 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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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은 토요일 오후. 모처럼 대본도 보고 산책도 하고, 기분좋게 쉬고 있습니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간단히 한 잔 하자는 아주 오랜 벗의 전화. 벗이 찾아왔으니 천리를 마다하랴. 집근처 횟집에 마주 앉았습니다. 무얼 먹을까. 산낙지 한접시 앞에 놓고 소주 한 잔 합니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잖아”. 하얀 접시위에서, 참기름에 몸을 꿈틀거리는 낙지. 흠. 가을입니다.

낙지는 저칼로리 스테미나 식품입니다.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며 단백질, 비타민 B2, 인, 철 등의 무기질 성분이 많아 빈혈예방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금방 힘을 얻는다”고 소개할 정도로, 예로부터 자양강장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이것은 낙지속의 타우린 성분 때문인데, 타우린은 강장제이자 흥분제에 속하는 것으로 일제가 2차대전 말기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에게 흥분제 대신 먹였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옵니다. 낙지에는 타우린이 34%나 들어있답니다.

6, 70년대에 서울 무교동에는 낙지볶음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 즐비했더랍니다. 속칭, <무교동 낙지 골목>입니다. 산업화에 하루종일 일에 시달린 많은 직장인들이, “매운낙지볶음과 소주한 잔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던 낭만의 거리”로 추억하는 어른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1970년까지만해도 낙지골목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재개발로 흩어지고 80년이후 많은 유흥업소들이 들어서서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변했답니다. 그런데, 그 낙지집 만은 매운맛을 지켜 옛날의 영화는 “무교동 매운 낙지집”에 남아있는 거지요.

매운 낙지볶음. 낙지볶음의 맛은 싱싱한 낙지에서 우러나는 담백함과 청양고추의 강한 매운 맛, 그리고 무엇보다 고소한 참기름을 포함해 마늘과 각종 양념이 알맞게 어우러진 다데기에 있습니다.  빨갛게 볶아낸 낙지는, 첫 비쥬얼부터 강렬하게 우리를 압도하지요. 한젓가락 입에 넣으면, 일단 혀에 불이 날 정도로 맵습니다. 자칫 속이 쓰릴 정도로 매운 맛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게 됩니다. 숨을 코로 쉴 수 없어서, 연신 후후 숨을 내쉬면서, 매운 맛을 식혀가며 먹습니다.

보통 콩나물국이 나오는 데, 사실 저에게는 약간 밍밍한 맛이라서, 매운 맛을 중화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맵고 강렬한 맛과 입안에서 착착 감기며 씹히는 낙지의 쫄깃한 질감은, 정말 독특합니다. 입안이 얼얼해지지요. 한번 맛을 본 후 별스러운 낙지 맛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 매워서, 옛날보다 매운 맛이 덜한 집도 생겼지요. 여기에 소주 한 잔. 카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먹고 난 양념에 밥 한공기 시켜서 콩나물무침에 볶아먹는 맛도 별미입니다. 따뜻한 밥과 매운 낙지는 궁합이 잘 맞아서, 마지막까지 기가 막힌 맛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옛날부터 그리 사랑받아온 무교동 매운 낙지의 진수이지요.

낙지의 또하나의 미덕은 산낙지입니다. 산낙지를 먹는 모습을 보면 외국인들은 질겁을 합니다. 혹시 영화 <올드보이>보셨습니까? 영화에서 최 민식이 큰 산낙지를 생으로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꿈틀거리는 낙지를 무표정하게 질겅질겅 씹는 장면이지요. 사실, 산낙지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외에는 거의 먹지 않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꼽은,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세계의 괴상한 20가지 음식에 산낙지가 선정되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산낙지가 좋습니다.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걸까요. 산낙지의 담백한 살 맛, 그 미끌거리는 고소한 식감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좋거든요. 젓가락으로, 참기름으로 한 껏 미끌거리는 낙지를 집어 올릴 수 있는 외국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소금 약간 넣은 고소한 참기름에 찍어서 입안에 넣어 씹으면, 탄력있는 낙지살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입안을 미끌거리는 통통한 낙지살의 식감, 목젓에 달라붙는 낙지의 빨판의 느낌까지도, 산낙지의 맛에 포함되는 거지요.

낙지선생 분투기                 윤 성학

자꾸만 걸음이 엉켰다 풀어지기를 되풀이할 때/
K형, 산낙지 먹으러 가자/
손끝에서 자주 미끄러지는 미래 때문에/
또 한번 낙담하거나/
겨우 입안에 넣은 희망이/
삼켜지지 않고 들러붙더라도/
또다시 고개 떨구지는 말자’(‘부분)

굳이 무교동이 아니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한국인의 술안주로 사랑받는 산낙지입니다. 바쁘고 고단한 일상을 보낸 우리를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음식인거지요. 흠. 오늘은 아주 오래 묵은 십년지기 친구 불러내면 어떨까요. 아니면, 늘 바삐 애쓰는 착한 아내 부르시는건.  모처럼 오붓하게 자리를 마련하는 거지요. 산낙지 한 접시, 그리고 낙지볶음 한 접시 시켜놓고, 소주한잔 하시자구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먹고 힘내자. 소도 일어난다는데.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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