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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쌉싸름한 가을 숲의 맛 도토리 묵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쌉싸름한 가을 숲의 맛 도토리 묵

기사승인 2013. 11. 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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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갑니다. 이제 단풍도 한창때를 지난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가을이 지나가는게 아쉽습니다. 전 번 주말, 가을을 천천히 보낼 요량으로, 삼십년지기와 가을 관악산엘 올랐습니다. 가을 관악산, 일부러 등산객 많지 않은 호젓한 산길서 배낭 내려놓고 쉬는데, 도토리 하나 툭 떨어집니다.

도토리는 우리나라 산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떡갈나무를 비롯한 졸참나무·물참나무·갈참나무·돌참나무 등 참나무과 열매의 총칭입니다. 참나무 열매를 다 도토리라 부르는 거지요. “다람쥐의 건망증이 큰 숲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아십니까?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가 가을에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은답니다. 도토리를 도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다람쥐는 여러군데 도토리를 파 묻어 놓습니다만, 그 장소를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우내 다람쥐에 먹히지 않은 도토리들은 이듬해 싹이 나서 아름드리 참나무로 크는 것이고, 이것이 모여 커다란 숲을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참나무가 많은 우리나라 숲은 수많은 다람쥐의 부지런함과 그들의 건망증이 만든 작품입니다.  하하.

도토리는 주로 묵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옛날에는 흉년이 들면 끼니를 대신하는 구황식물이었답니다. 나이드신 분들은 끼니대신 드신 기억을 가진분도 많더군요. 도토리는 주로 묵으로 만들어 먹습니다. 잘 만든 도토리묵은 다갈색 색깔이 선명합니다. 탱글탱글한 질감을 가진 도토리묵을 입에 쏙 넣으면, 가을산의 고요한 정취가 밀려들어 옵니다. 입에서 탱글탱글 탄력있게 돌아다니는 질감. 차지않은 성질이어서,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의 익숙한 맛입니다. 약간 달달하면서 쌉싸름한 끝 맛. 왠지 가을같은 맛. 고요한 가을숲의 맛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다람쥐가 놓쳐 사람이 주운 도토리겠지요. 
  
     단단한 고요                  김 선우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 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람고 찰 진 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하는 소리 아궁이 불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위에 다갈빛 도토리 묵 한 모

가을 산에서 툭 떨어진 도토리로 도토리 묵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나 훌륭하게 써 내려가다니! 새삼 시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도토리묵은 곱게 간 도토리 가루를 물에 담가 떫은맛을 내는 탄닌을 우려낸 후 물을 따라 버리고 가라앉은 앙금만 모아서 풀 쑤듯이 끓이고 식힌 후 굳혀서 만듭니다. 도토리묵은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슬로푸드입니다. 도토리는 자연에서 얻는 천연 재료인데다 에이콘산 성분이 몸속의 독소 배출을 돕고 소화 기능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영양 과잉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열량이 낮고 포만감을 주는 도토리가 특히 비만인 사람에게 좋은 다이어트 웰빙식품이면서, 산행을 할 때 야외에서 즐겨드시는 별식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도토리는 석기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다고 합니다. 도토리는 재배되지 않고 야생에서 직접 채취하기 때문에, 저는 왠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채소나 과수원에서 생산된 과일로 만든 음식보다 더 정이 갑니다. 조선중기 무렵, 경상북도에 살던 박달(朴達)이라는 청년이 과거보러 한양가는 길에 충북 제천의 한 마을에 도착합니다. 박달은 그 마을에 살고 있던 금봉이라는 낭자를 만납니다. 둘은 한 눈에 반해 사랑을 했고, 박달은 과거에 급제하여 다시오마고 약속하고 길을 떠났지만, 낙방하고 실망하여 세상을 떠도느라 돌아오지 않는 박달도령을 고갯마루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금봉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답니다. 오랜시간 후 돌아온 박달도령은 금봉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슬퍼하며 낭떠러지에 몸을 던졌다는 애절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의 2절입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도령과 금봉낭자가 헤어진때가 단풍드는 가을이었던 게지요. 기약없이 먼 길 떠나가는 님을 위해서, 금봉낭자는 가을산을 해매며 도토리를 주워다 묵을 쑤었습니다. 사랑과 정성과 기원을 담았겠지요. 눈물을 흘리면서 허리춤에 한양가는 길에 박달도령 드시라고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아줍니다. 산속에서 부엉이 웁니다. 그 날 박달재의 가을단풍은 얼마나 장했을까요. 흐음. 이번 토요일에는 가을을 정말 보내주러, 도토리묵 싸들고 산에 가서, 떠나간 박달도령 기다리는 금봉낭자 생각하며 막걸리 한 잔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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