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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한국인의 겨울준비 김장김치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한국인의 겨울준비 김장김치

기사승인 2013. 11.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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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제가 하는 모임에서, 여의도에서 단체로 불우이웃돕기 김장을 담갔습니다. 일기예보에 하루종일 매우 춥고 오후 세시부터 비가온다 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막상 날씨가 엄청나게 춥지는 않고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독거노인 한 분이 김장김치 서너포기면 겨울을 나신답니다. 방송업계에 종사하는 동료들도 추운날 김장을 함께 담그면서, 마음은 참 따뜻했답니다. 여럿이 모여 함께하고, 또 나눈다는 점에서, 매우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래전부터, 해마다 겨울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느 집이나 겨우살이 준비를 서둘렀답니다. 연탄을 광에 가득 들여놓고, 쌀도 팔아 쌀독에 꽉차게 넣어두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김장을 하지요. 이렇게 겨우살이 준비를 마치면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걱정이 없었다는 거지요.

이제는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지요. 요사이는 대부분 이런 겨우살이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땔감이 연탄에서 보일러로, 단독주택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난방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고, 쌀은 언제라도 마트에서 작은 포장으로 구입할 수 있으니 쌓아놀 일도 아니고, 걱정거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김장은 지금도 우리 가정의 중요한 행사입니다. 겨울내내 김치 없이 밥을 먹을수가 있나요.

김장은 예로부터 한 가정에서 봄철에 젓갈을 담그는데부터, 초가을에 고추·마늘등 온갖 양념재료의 장만, 김장용 배추, 무의 재배등 준비하는 데에 반년 이상이 걸리는 한 가정의 큰 행사이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날을 잡아 미리 소금에 절인 배추를 물기를 뺀 후에 무채, 고춧가루, 마늘등 갖은 양념을 한 김장 속에 섞어 버무려 담그는 형식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요. 온 집안 식구들이 동원되는 큰 일인지라 일제시대에는 서울의 이화, 평양의 숭의 등 학교 기숙사에서는 11월 중에 김장 방학이라는 1주일간의 임시 방학이 있을 정도로 김장은 남녀 학생 모두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집안 행사였다고 합니다.

이 때 김장을 담그는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두어근 사다가 삶아놓고 배추의 노란 속잎과 양념을 준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먹도록 하였는데, 이것을 속대쌈이라 하며 지금도 미풍으로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저도 어제 찬 바람 부는 여의도에서 갖 담은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 보쌈을 먹어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잘 맞는 궁합이 있을까요! 우선 한 입 물면, 배추의 아삭하는 소리가 맛있습니다. 소금에 절여져 단 맛이 더 해진 달달한 배추맛, 여기에 따뜻하게 삶은 돼지고기가 입안에서 섞이면, 그 달콤하고 풍부한 맛이 입안에서 홍수가 납니다. 갖은 양념을 한 배추속은 무의 시원한 맛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한국인의 기본 맛을 이루어냅니다. 맵고 짠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칼칼한 감칠맛으로 변주를 이끌어 냅니다.

역시 김치는 한국인의 영혼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른 반찬 하나 없어도, 밥 한 그릇이 뚝딱입니다. 해외에 사시는 분들은 이 맛을 못잊어 우시는 분도 있다더군요. 참으로 한국적인 이 맛. 간을 하지않은 밥을 맛있게 먹는데는 김치이상의 궁합이 없습니다. 이런 기막힌 궁합을 조상님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신 걸까요. 어떤 분은 그러시더군요. “한국인에게 목숨이란, 소금 뿌려지고 고추 흩뿌려져서 거꾸로 생기가 되살아나는 김장 배추와 무 같은 거”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김치를 담그면 독에 넣고 땅에 묻어서 겨우내 어는 것을 막았습니다. 늘 저는 김치가 와인과 같이, 자연이 맛을 주는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내 땅 속 김치독속에서 김치가 숨을 쉬면서, 알싸한 무맛도 맛있게 숙성되어 가고, 거친 맛도 깎여서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지요. 배추나 무나 어느하나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서로를 희생해 맛을 내는 음식.  참, 근사한 음식입니다. 아. 물론, 요사이는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니 김장독의 맛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지요.

김치를 담그다가                 권 정남

세상 살아가면서 그 누구를 위하여/ 온 몸 소금에 절여진 적이 있는가
(중략) 세상을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다가
눈동자가 붉어지도록 울어본적이 있는가
영하의 온도에서 겹겹이 나를 누이며/ 내 온 영혼을 삭이고 삭이며
그 누구를 위하여/ 진정 나를 발효시켜본적이 있는가 (후략)

김장을 담그는 집에서는 시어머니의 권위가 살아있고, 김치를 사먹는 집은 며느리의 입김이 더 세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맙게도 여기저기서 김장김치를 보내주셔서, 저희집은 김장을 담지 않았는데도 김치풍년입니다.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라는데, 저희는 식구도 적고해서 계속 염치없이 얻어먹고 있습니다. 저 김치들도 곧 맛이 들겠지요. 저 김치로, 겨우내내 김치찌개도 끓여먹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겨울 밤, 김치가닥을 죽죽 찢어서 밥숟가락에 척척 걸쳐 맛있게 먹을겁니다. 정말 그렇네요. 김장김치를 쌓아놓았더니, 겨울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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