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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따뜻한 어머니의 품 청국장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따뜻한 어머니의 품 청국장

기사승인 2013.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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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매우 춥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옷 속을 파고드는 겨울바람이 찹니다. 서재의 창문을 지나가는 찬바람이 덜컹덜컹 흔듭니다. 이렇게 추운날에는, 마음도 추워지는지,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더운 음식이란 뜻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음식 말이지요. 배고픈건 음식이 해결해주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건 어머니의 음식만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릴적,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여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나눠먹던 청국장은, 오늘같이 찬바람이 살갗을 꺼칠하게 만드는 겨울날이면 모락모락 오르는 김처럼 더욱 생각납니다.

청국장은 콩을 발효시켜 만듭니다. 콩은 북한 위쪽 만주가 원산지입니다. 먼 옛날, 만주일대를 모두 장악하고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던 고구려시대 우리 선조들은, 전쟁할 때 전투식량으로 말안장 밑에 삶은 콩을 넣고 다니며 꺼내 먹었다고 합니다. 이때 말의 체온에 의해 삶은 콩이 자연스럽게 발효되는데 이를 “싸우는 나라의 장류”라는 뜻에서 전국장(戰國醬)이라 불렀다하고, 이것이 오늘 날 우리나라 청국장의 시초라고 합니다.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청국장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한자로는 시(豉)라고 하는데 삼국시대 때부터 귀족층의 단골 폐백 품목이었을만큼, 아주 오래된 우리 음식입니다. 조선시대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콩을 잘 씻어 삶은 후 볏짚에 싸서 따뜻한 방에 사흘간 두면 진득한 실이 난다'고 만드는 법을 상세히 기술해 놓았습니다. 사람이 하는일은 볏짚에 싸서 두는 일까지이고, 그 다음은 자연이 맛을 주는것이지요. 이 실같은 것이 콩을 발효시키는 바실러스균으로, 청국장속에는 다양한 유산균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단백질 흡수율을 높일 뿐 아니라, 유익한 유산균의 성장을 촉진하고 해로운 균은 억제시키는, 웰빙음식의 작용을 한답니다.

청국장이 뚝배기에 담겨 나옵니다. 청국장에 두부넣고 땡초 썰어넣고 바글바글 끓여서, 콤콤한 냄새가 코끝 가득한 것이, 일단 냄새로 좌중을 압도합니다. 청국장은 제일 먼저 코로 맛을 보는 음식입니다. 조금 뻑뻑한듯한 청국장을 살짝 저은후에, 한 숟가락을 천천히 입속으로 넣고 향과 맛을 동시에 느낍니다. 짭짜름하고 달달한 첫 맛, 그 다음은 삶은콩의 구수한 감칠맛이 입맛을 당깁니다. 입안에 가득한 청국장의 식감이 따뜻하면서도, 목넘김의 뒤끝이 시원합니다.

청국장맛이 제대로 밴 두부는 따뜻하고 달달합니다. 간이 맞는다 싶으면 ‘대접밥’에 청국장 넉넉히 넣고 쓱쓱 비빕니다. 거기에 각종 나물이나, 묵은지를 넣어 비벼 먹으면 더욱 좋습니다. 청국장과 밥알이 서로 뒤섞여 입 안에서 빙빙 맴돕니다. 척척 감치는 맛이 제대로입니다. 토속된장에 풋고추 한 입 찍어먹으니 입 안에 도는 풋풋한 맛이 기분 좋습니다.

청국장은 충청도에서는 담북장이라고도 부릅니다. 충남이 고향인 저에게는 '담북장'이란 말이 훨씬 더 정답고 구수하게 들립니다. 맛도 '담북', 영양도 '담북'해서 '담북장'이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도 음식도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고,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청국장을 만들때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그윽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을까요? 음식이 시간에 구애 받으면 졸속이 됩니다. 어느 청국장 명인의 말입니다. "청국장을 띄울 때는 조급한 마음에 자꾸 들추면 안돼요. 진득하게 기다려야 잘 발효된 청국장을 띄울 수가 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진득함이 있어야지요.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 같아요."  기다림을 통해 진득하게 스스로를 깊게 발효시켜서,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로운 음식.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음식, 청국장입니다.

 청국장                    권 오범

(전략).. 소꿉장난같이 꿈을 키우던 부엌
19공탄 깔고 앉아 자지러지던 뚝배기
겸상 가운데 돗자리 꽃방석 앉혀놓고
총각김치 경쾌하게 깨물던 단칸방

그것이 행복이었던 것을
난기류에 밀려 변방 애돌다
빌딩 숲에 정박한 빛바랜 부평초
자글자글 진동하던 그 냄새가 마냥 그립다.

초등학교 시절, 창 밖에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 밤, 어머니가 부엌에서 들고 오신 앉은뱅이 밥상에는 뚝배기에 청국장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지요. 형제들 여럿이 서로 질세라 숟가락질을 하던, 청국장 넉넉히 넣어 비빈 밥을 깔깔거리며 함께 먹던 기억, 그것이 행복이었던걸 깨닫습니다. 눈내리는 밤 안방 절절 끓는 아랫목에는, 늘 늦으시는 아버지의 고봉밥이 이불로 덥혀 있었답니다. 지금의 보온밥통보다 훨씬 더 따뜻한 밥이었지요.

추위가 기세를 떨칠수록 생각나는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과 느긋한 기다림의 음식, 청국장.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요즈음, 청국장이 먼 미래에도 변하지 않고 세월의 지혜를 담은 우리민족의 근사한 음식으로 건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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