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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새해의 시작 설날과 떡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새해의 시작 설날과 떡국

기사승인 2014. 01.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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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가 설날입니다. 해마다 설날이면 저도 고향에 갑니다. 도로가 아무리 막혀도, “고향에 간다”는 느낌은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장남이신 아버님을 비롯해 4남 4녀 8남매를 두신 저의 할아버지 댁은, 설날아침에 다 모일라치면 장바닥처럼 시끌벅적 했답니다. 열댓명도 훨씬 넘는 사촌들, 삼촌, 고모들과 다 합치면 삼십명도 더 모여서 차례를 지냈답니다.

그 낯익은 시끄러움, 웅성거림. 어른들로부터 세뱃돈 받을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사촌들과 까르르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요. 부엌 아궁이에서 장작불을 지피시던 할머니의 손길.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들기름 두르고 부쳐내던 계란부침의 하얗고 노란, 그 고소한 냄새. 차례를 지낸 후, 커다란 밥상위에 죽 늘어선 그릇에 담겨 모락모락 김을 내던 햐얀 떡국의 강렬한 이미지. 슬레이트 지붕 끝에 앉은 고드름에 반사되는 겨울햇빛. 마당 한구석에서는 강아지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부엌옆 감나무가지에서는 까치가 큰소리로 울고 있었답니다.

한 해의 시작. 설날에는 ‘떡국 차례’라 하여 밥 대신 떡국을 올리는데, 차례를 올리지 않는 집에서도 설날 아침에는 모두 떡국을 먹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지요. 우리민족은 설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 설을 지냈느냐”가 변화되어 “몇 살이냐”가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떡국을 몇 그릇 먹었느냐가 몇 살이냐가 된 것이지요.

설날 떡국을 먹는 풍습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상고시대의 신년축제시에 먹던 음복적(飮福的) 성격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설날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게 되었다고 본 것이지요. 떡국은 국물이 맛있어야 하는데, 소가 귀했던 옛날에는 꿩고기 또는 닭고기로 떡국의 국물을 만들었으나, 오늘날에는 주로 쇠고기를 씁니다. 소의 사골이나 양지머리, 사태 등을 오래 고아서 국물을 만듭니다.

설날 아침에               -김종길-

(전략)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조금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스한 한 잔 술과/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늘/
그것만으로도 푸지고/고마운 일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 한 곳./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후략)

뜨거운 떡국을 대합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정겹습니다. 하얀 떡국이 노르스름하고 따뜻한 소고기 국물에 담겨 있습니다. 한 숟가락 국물부터 떠서 천천히 먹어봅니다. 이 낯익고 따스한 느낌. 오래 천천히 끓인 양지머리가 내는 이 달달하고 순한 맛. 부드럽게 목 젖을 넘어가는 이 국물의 착한 느낌. 떡을 먹어봅니다. 많이 씹지 않아도 차분히 목을 넘어갑니다. 차례를 지내느라 조금 불어서 쫄깃한 맛은 적습니다만, 씹을수록 부드럽게 풀어지는 느낌입니다.

한국인들은 압니다. 오랜시간 평화를 누려온 농경민족의 새해 첫 음식이 떡국인 이유를 말이지요. 정성스레 떡국을 끓여 먼저 조상께 바치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으로 새해 떡국을 온 식구가 나누어 먹습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왠지 푸근하고 기분 좋은, 고향의 품같은 음식입니다.

설날이라고 모두 다 고향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뉴욕에서 몇 년 생활할 때, 타지에서 설날을 맞아본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고향이 아닌곳에서 설날에 갖게 되는 묘한 심정이 있습니다. 딱히 안타까움도 아니고, 섭섭함도 아니고, 서러움도 아닌데,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합쳐진 복잡한 감정. 일제시대 북만주를 유랑하던 시절 어느 때, 유명한 시인 백석(白石)은 타향에서 쓸쓸히 새해를 맞이하며 시를 씁니다.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 일가 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 시 '두보(杜甫)나 이백(李白) 같이'-

그 쓸쓸함을 홀로 견디기 어려웠던 백석은 고향의 흔적을 찾아나섭니다.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을 찾아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한국인에게 떡국은 이런 것입니다. 묵은 한 해를 잊고, 새 출발 하는 하얀 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담아 여럿이 함께 먹는 것이지요. 한 솥 밥을 같이 먹어야 한 식구라지요. 이번 설날, 고향가서 늙으신 부모님과 옛날이야기하며, 온 식구 다 모여앉아 떡국을 먹게 되겠지요. 흠. 까치 한 두 마리가, 비록 아파트단지이지만, 놀이터 한 쪽 공터에서라도 기분좋게 울어주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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