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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카타르에 부는 한류 열풍

[칼럼] 카타르에 부는 한류 열풍

기사승인 2016. 12. 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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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작가' 지병림의 세상만사
2013년 3월 11일, 영화배우 송중기씨가 한국의료 홍보대사 자격으로 카타르를 방문했었다. 같은 날, 카타르 컨벤션센터에서 그의 영화 상영과 함께 팬 사인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늑대소년'의 포스터가 컨벤션센터 곳곳을 수놓은 현장에 검은 아바야로 온몸을 두른 카타르 여인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남녀가 내외하고, 가부장적인 가풍의 상남자 스타일에 길들여진 카타르 여인들이 동양배우에게 열렬히 환호했다.
 

실로 예상치 못한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 같은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던 주최 측도 480석 규모의 강당에 1000명 넘는 팬들이 밀려드는 상황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짐승 울음소리를 내는 송중기씨가 영화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여인들은 거침없이 "오빠! 사랑해!"를 외치며 그간 익혀온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이 적잖은 숫자의 카타르 여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떤 경로로 한국 영화와 언어를 습득한 걸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부모님과 함께 카타르항공을 타고 여행할 때 마다 수시로 한국 영화를 봐 왔어요. 다음 방학 때는 부모님을 졸라서 꼭 한국여행을 갈 거예요."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답했다.
 

2013년 당시 기내영화시스템에 실제로 '늑대소년'을 비롯한 유수의 한국영화가 수록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카타르항공 기내영화음악 시스템은 정기적으로 갱신되어 최신 한국 영화·음악들을 선보이고 있다. '송중기씨의 카타르 방문' 이후로 나는 기내에서 승객들이 어떤 영화를 관람하는 지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을 얻었다.
 

신기하게도 비단 한국인이 아닌 꽤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이 한국영화를 선택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의상을 마음껏 감상하며 역사까지 배울 수 있는 사극부터 알콩달콩 젊은 남녀 간의 연애사까지 한국 영화는 장르를 막론하고 전 세계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한국영화를 감상하는 승객들에겐 꼭 짬을 내 소감을 청하곤 하는데, 대부분 잘 짜인 플롯(plot)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었다고 평한다.
 

한국영화를 감상한 승객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다. 자료 조사를 마치고 이미 그 소망을 궤도 안에 올려놓은 승객들은 보통 도하발 인천행 비행기에서 대거 만날 수 있다. 한국인 승무원을 알아본 승객들은 주저 없이 가 볼만한 명소와 의류 및 화장품 쇼핑매장,  저명한 의료기관을 메모해 달라는 청을 해온다. 세계적 규모의 외항사에 적을 둔 한국인으로서 참 많은 순간 보람을 느끼지만 외화획득과 국위선양은 물론 한국관광홍보 역할까지 겸할 때만큼 뿌듯한 순간은 없다.
 

10년 전 만해도, 우리나라를 동남아시아의 경제개발국과 혼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과의 차이조차 잘 모르는 승객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주 선진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매우 미흡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항공사 규모가 커지고 노선이 150여개로 확대되는 역사 속에서 상하이나 오사카를 경유하던 인천비행이 직항으로 바뀌었다. 늘어나는 한국승객의 다음 여행을 기약하기 위해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도 한국어 자막, 영화, 음악, TV쇼 등의 한류문화 콘텐츠가 대거 투입되었다. 카타르항공은 전 세계 150여개 도시로 9300여명의 다국적 승무원들이 매일 쉼 없이 운항한다. 이제 어떤 비행에서든 한두 명의 한국인 승무원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노력으로 일군 세월에 힘입어 오늘날과 같은 차이를 내기까지 누구보다 우리 청년 승무원들의 숨은 공이 컸음은 누구도 감히 부인할 수 없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 우리 청년 승무원들이 추천한 한국 영화를 통해서 기내흥행이 성사되고, 여기서 비롯된 관심이 한국 음식·제품·문화 및 관광에까지 거침없이 파급된다면 이보다 더 막강한 한류시장은 없을 것이다.
 

3년째 2%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조한 성장률은 내년에도 마찬가지란 전망이다. 2016년 '한국 관광의 해'를 기점으로 정부적 차원의 노력이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UAE 및 카타르 등 중동 일대에 입성한 청년승무원들을 국가발전의 성장동력으로 인지하는 노력이 급선무다. 청년을 비롯한 국민 개개인을 함께 힘을 합쳐 경제위기를 극복할 조력자로 이해한다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나 다름없다.


지병림 작가는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작가, 산업인력공단 K-MOVE 멘토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 '서른 살 승무원' '매혹의 카타르'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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