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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내난동, 술이 면죄부 될 수 없다

[칼럼] 기내난동, 술이 면죄부 될 수 없다

기사승인 2017. 03. 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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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작가' 지병림의 세상만사
작년 12월 대한항공에 탑승해 2시간여 동안 난동을 부린 임모씨는 승무원의 눈물겨운 제압 끝에 착륙 후 바로 경찰에 인도되었다. 임씨는 경찰에서 당시 만취상태라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러자 경찰은 그를 일단 귀가 조치시켜 버렸다. 여론은 거세졌고, 사건 발생 8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경찰은 뒤늦게 임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해당 항공사 역시 임씨를 탑승거부 조치시켰고 임씨에 대한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어 국토교통부는 관련법 개정을 발의해 기내난동 발생 시 징역 10년 및 1억원의 벌금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난동승객을 즉시 제압하는 수위를 놓고 아직도 이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늦게라도 국토부와 항공업계가 효율적 개선안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상냥한 여승무원들에게 욕설과 발길질을 해대며 수백 명의 승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현행범이 만취를 이유로 경찰에서 풀려났다.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2008년 '조두순 사건' 때도 술은 온정의 빌미로 작용했다. 1심에서 20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이유로 2심에서 12년형으로 감형됐다. 8살 난 여자아이가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폭행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한 그 끔찍한 사건 때도 술이 면죄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는 유독 술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너그럽고 자애롭다. 
 
이슬람에서는 술을 정신을 흐리는 액체로 규정하고 엄격히 금기한다. 사우디는 술 반입이 전면 금지되어 있고, 카타르는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술을 구입할 수 있다. 마셔봐야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술을 법으로 금하되 제한적 범위 안에서만 허락한 것이다. 중동에서 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며 외국인의 경우 강제추방까지 당한다. 기내에서 중동승객을 몰라보고 실수로라도 술을 권하면 정색을 한다. 그런가 하면 중동 입국을 앞둔 한국인 승객들은 유독 술을 많이 찾는다. 한동안 마시지 못하게 될 술이 못내 아쉽다는 사연까지 곁들인다. 자신의 경제력으로 도저히 술값을 감당할 수 없는 동남아 노동자들 역시 기내에서 주는 공짜 술에 목숨을 건다. 술을 달라고 어찌나 목청을 높이는지 안쓰러울 지경이다. 경제적 환경적 굴레에 갇힌 승객들은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노예로 전락한 사람은 가난과 범죄는 물론 애정 결핍의 상징으로까지 비춰진다. 
 
2016년 2월 세계적인 중동방송 알자지라는 대한민국의 폭력적 음주문화를 '한국인의 숙취'란 제목으로 자그마치 이틀에 걸쳐 방영했다. 당시 알자지라 방송은 한국엔 150만 명에 이르는 알코올 중독자가 존재하며, 이는 세계 평균치의 2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하는 직장문화가 고착되어 음주로 인한 말다툼, 욕설, 범죄 및 폭행 시비가 끊이지 않는데도 이를 규제하는 적절한 법규가 없다고도 매섭게 꼬집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임모씨도 1차 공판에서 '평소 알코올 의존도가 강한데다 수면장애까지 앓았다'며 존경하는 재판관님의 선처를 호소했다. 술을 마시는 일 자체를 탓할 마음은 없지만 무절제한 과음으로 전체 승객의 안전을 위협함은 물론 국제망신까지 자초한 이에게 과연 너그러울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기회에 기내난동 관련 법규를 강화함은 물론, 술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깨우쳐야 한다. 술만 마시면 죗값도 흥정할 수 있다는 착각만큼은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지병림 작가는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작가, 산업인력공단 K-MOVE 멘토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 '서른 살 승무원' '매혹의 카타르'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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