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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국민의힘에 남긴 ‘공천반성문’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국민의힘에 남긴 ‘공천반성문’

기사승인 2024. 01. 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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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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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과 김형오 전 국회의장(오른쪽)/이병화 기자
국민의힘의 전신 미래통합당은 4년 전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선거결과에 따른 정당별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63석, 더불어시민당 17석, 미래통합당 84석, 미래한국당 19석,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 무소속 5석이었죠.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을 합쳐서 103석,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입니다.

패장무언(敗將無言)이라지만, 김형오 당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책 한권을 남겼습니다. '총선 참패와 생각나는 사람들-공천고백기'라는 책인데요. 공관위원장으로서 21대 총선을 겪으며 느낀 바를 절절하게 적어내려갔더군요. 당에서 만든 '총선백서'와는 또 다른 결의 내용입니다.

책에 따르면 '김형오 공관위'는 2020년 1월23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3월25일 41차 회의를 끝으로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공관위가 18차 후보를 발표한 후인 3월13일 '사천 논란' 끝에 사퇴한 채 였다고 합니다. 책에는 공관위원장이 초유의 중도낙마를 할 정도로 당내 압력이 거셌고, 최고위가 공천을 6명이나 무효화한 갈등 상황이 묘사돼 있죠.

그의 '변명'은 차치하고 읽어볼만한 부분은 공관위 운영에 대한 부분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공관위원들이 자료부족, 지원조직 부재, 여의도연구원 역할 부재 속에서 공천 업무를 해야했다고 적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공천 심사 과정에서 자료 부족으로 허덕였다. 한마디로 있어야 할 자료는 거의 없었다. 당에서는 지나간 자료를 보관 정리하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선거용 자료를 생산하지도 않았다. 신청자들이 제출한 서류와 자기소개서 외에 선거구별로 한 페이지짜리의 역대 총선 결과표가 전부라 할 정도였다. 공천 업무를 다루는 공관위원들이 깜깜이 공천에 임해야 했다. 본의 아닌 오류나 판단 착오가 왜 없었겠는가."(19p)

"공관위는 공관위원들로만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전략기획단, 홍보지원단과 대변인, 그리고 검증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 없이 공관위만 설치되면 또 이번처럼 공관위가 독박을 쓰고 선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중략) 어떠한 경우든 공관위를 공관위 혼자 외롭게 남겨두면 안 된다. 지원조직 없는 공관위와 당(최고위)이 받쳐주지 않는 공관위는 성과도 결과도 낼 수 없다는 것이다."(212·214p)

"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의도연구원(여연)의 역할이 없었다.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못한 것이다. 예컨대 수도권 선거의 기본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경기도의 수원 성남 안양 고양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화성 갑·을·병은 인구분포나 직업 지형 교통 문화 교육 종교 연령대가 어떤지 등 기본 자료를 제공해줘야 한다. 이번에 우리 공관위원들은 당의 기본 전략에서부터 권역별, 당협별 특징이나 고려사항이 뭔지도 모른채 공천 업무에 매몰됐다. 충분한 정보도 충실한 자료도 없이 공관위원들은 각자의 경험과 감에 의존했다. 역대 공관위가 다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이래선 안 된다."(209p)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지역에 대한 자료도 없이 어떻게 공천을 했던걸까요? 이런 것조차 없이 공천을 했으니 참패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도 들더군요. 정당은 빅데이터 시대에서 한걸음 물러선 공간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고요.

김 전 위원장은 영입과 검증, 발표와 홍보, 소통과 조정을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하는 공관위의 막중한 업무량도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공관위원 10명과 당 사무처 기획조정국 소수 지원만으로는 '이기는 공천'이 불가능하다고요. 공관위에 전략기획단, 홍보지원단, 대변인, 검증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물러나는 현역들, 공천에서 탈락한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마음을 보듬지 못했던 점도 아쉬운 장면으로 떠올렸습니다. 현역들의 희생에 의미를 실어주고, 지난 4년 간 지역에서 민심의 밭을 갈아온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김 전 위원장과 공관위원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이번 공관위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 관계자는 "공관위는 매번 맨땅에 헤딩하듯 일했다"고 하더군요. 공천 관련 서류는 모두 파기하는 것이 그동안 원칙이었다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민의힘 공관위에 '경력자'인 유일준 변호사가 참여하는 겁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유일준 변호사는 민정수석 업무를 해봤고 공관위원도 한 번 해본 분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했습니다.

어쨋든 앞으로 3월 중순까지 '여의도 이슈'는 공관위가 주도하게 됩니다. 국민의힘이 '이기는, 설득력 있는, 공정한 공천'을 하려면 4년 전 실패를 용기있게 남겨둔 김 전 위원장의 기록을 참고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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