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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사퇴 요구한 대통령실, 총선 80일 앞두고 여권 격랑 속으로

한동훈 사퇴 요구한 대통령실, 총선 80일 앞두고 여권 격랑 속으로

기사승인 2024. 01. 2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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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ㅇㅇ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와 대화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21일 서울 모처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식에 일요일 오후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총선을 딱 80일 앞두고 국민의힘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걸까요?

◇국민의힘, 8~21일 무슨 일이 있었나
사건의 발단은 지난 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SBS 라디오에서 '김건희 리스크' 해소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날이죠. 김 비대위원은 당내 공감대도 충분히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합니다.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를 언급한 것은 사실상 처음으로 꼽힙니다.

다음날(9일) 윤재옥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중진연석회의를 열었습니다. 야당이 강행 처리한 쌍특검법안(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재표결 등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중진들도 김 여사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논의를 했다고 합니다.

한 위원장은 10~11일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와 부산시당 당원과 만남, 현장 비대위회의 등 1박2일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때 현장 비대위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관위원에 친윤 핵심으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이 포함되면서 윤심 공천 지적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당을 이끄는 건 접니다"라고 답합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 인선 마무리 후 첫 회의는 16일에 열렸습니다. 3시간 40분에 걸친 첫 회의 끝에 4·10 총선 후보를 가릴 '공천 룰'이 발표되죠.

17일 서울시당 신년인사회는 환호와 논란을 동시에 남겼습니다. 한 위원장은 대전-대구(2일), 광주-청주(4일), 수원(5일), 원주(8일), 창원-부산(10~11일), 예산(14일), 인천(16일)을 거쳐 서울시당 행사로 전국순회 일정을 마무리했는데요. 서울시당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선언이었죠. 하지만 마포을 지역구에서 활동해 온 김성동 전 당협위원장 측과 미리 조율되지 않았던 터라 반발도 터져나왔습니다.

서울시당 신년인사회를 마친 후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습니다. 18일에는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관계에 금이 갔다는 내용이 담긴 출처를 알 수 없는 '받은 글'이 SNS에 유포됐습니다. 이 글에는 '윤 대통령은 시스템 공천을 강조해왔는데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손을 들어준 장면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이날 한 위원장은 총선 1호 공약인 '저출생 정책'을 발표하는 행사 후 '김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에 대해 질문을 받고 "기본적으로 함정몰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게 맞다"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만한 부분도 있다고 저도 생각한다"고 답합니다.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에 대한 검토 문제를 전향적으로 말씀드렸었다"고도 했고요.

제16차 고위당·정 협의회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제16차 고위당·정 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송의주 기자
또 18일을 기점으로 대통령실이나 김 여사가 직접 나서서 국민께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영입인재, 당내 중진의 목소리가 분출됩니다.

이튿날인 19일 오전 한 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비공개 면담을 갖습니다. 오후 이어진 AI 현장간담회를 마치고 한 위원장은 '김 여사 디올백 수수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답변합니다. 대통령실과 갈등설이 불거진 상황에 대해서는 "갈등이라고 할만한 게 없다"고 했죠.

이 시기부터 '대통령실 관계자' 혹은 '여권 핵심 관계자'라는 익명의 누군가가 등장하는 기사가 하나 둘 올라옵니다.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과 조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식의 불편함이 배어나오는 워딩으로요.

20일, 드디어 '친윤' 의원이 등장합니다. 윤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했던 이용 의원이 현역들이 모여있는 단체 대화방에 "문재인과 이재명 모두 배우자 (의혹)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고 선거를 망치지도 않는데 왜 FL(퍼스트레이디)에게 사과를 요구하나. 사과를 하는 순간 민주당은 들개처럼 물어뜯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겁니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도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국민의힘 영입 인재나 비대위원들이나 의원들이 언론 질문에 낚여 (김 여사 문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 재점화시키고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했다. 김여사는 사기 몰카 취재에 당한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과하라는 것이냐"고 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21일 오전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과 한 위원장의 비공개 회동이 진행됩니다. 오후에는 한 온라인매체가 '尹대통령, 한 비대위원장 줄세우기 공천 행태에 기대·지지 철회'라는 기사를 송고했고요. 이용 의원은 이 기사를 의원들이 모여있는 단체 대화방에 공유하기까지 합니다. 사실상 현역 의원이 한 위원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입니다. 동조하는 의원들은 저녁까지도 거의 없었다고 하지만요.

이후 종합편성방송 채널에이가 '대통령실과 친윤계, 한동훈 위원장 사퇴요구'라는 제목으로 보도하자, 1시간만에 한 위원장이 "국민보고 나선 길, 할 일을 하겠다"는 입장을 기자단에 배포하죠.

대통령실은 "비대위원장 거취 문제는 용산이 관여할 일 아니다"라고 한걸음 물러선 입장을 냈습니다. "'기대와 신뢰를 철회한다'는 논란은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면서요.

국힘 의총-17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이병화 기자
◇"윤석열-한동훈 흔들기 시작" 추측도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에 당내 분위기도 뒤숭숭합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6일 수락연설 후 당 안팎을 살펴왔는데요. 한 위원장 취임 후 당직자들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거든요. 전국 어딜가든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한 위원장의 효과가 당내에도 영향을 미쳤달까요.

한 당직자는 "총선에 이길 마음이 없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군요. 또 다른 당직자는 "공천 시즌이 시작되긴 한 것 같다. 이렇게 심하게 뒤흔드는 걸 보면"이라며 "일단 내일 한 위원장이 참석할 비대위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했던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의 생각도 들어봤습니다. 대통령실 출신 한 인사는 "지난주부터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를 이간질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았다"며 "지금 현역의원들 중에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를 뛰어넘을 이는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한 위원장 체제에서 기존의 '핵관' 인사들이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고요.

또 다른 대통령실 출신 인사는 "마포을이나 계양을이나 그 지역에서 갈고닦아 온 분들을 배려하지 않은 건 아쉬운 부분이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험지 아닌가? 다들 강남·서초 찾을 때 김경율 비대위원처럼 알려진 사람이 마포을에 간다는 걸 당에서 거부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더군요.

의원들도 당혹스러운 분위기입니다. 한 현역 의원은 "용산 일부의 뜻인지 진짜 대통령의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공천에 대해 정말 우려만 표했는지, 진짜 사퇴를 요구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도 "만약 김여사 문제를 이유로 한 위원장을 쫓아낸다면 보수, 중도, 진보를 넘어 국민들 전체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당정관계가 변화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 위원장이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즉각 거부한 만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자신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한 위원장이 22일 비대위 회의에서 내놓을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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