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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밀레니얼이 미래다] ‘가치 중립’과 ‘결벽’ 사이 “당신은 PC 한가?”

[아시아 밀레니얼이 미래다] ‘가치 중립’과 ‘결벽’ 사이 “당신은 PC 한가?”

기사승인 2017. 01. 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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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밀레니얼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은 화두 중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표현은 소셜미디어 상에서 일명 ‘PC하다’는 축약형으로 흔히 쓰인다. 네티즌들은 여러 가지 현안에 관해 이 문제가 PC한지, PC하지 않은지(국내에서는 ‘언(un-)PC하다’고 표현하기도 함) 논쟁하곤 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란 성·인종·약자 등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를 자제하고 가치 중립적인 용어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진보적 사회운동이다. 최근에는 단순한 용어 사용 문제를 넘어서 ‘가치 중립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그 자체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널리 퍼진 요즘, PC하지 않은 것에는 대중의 비난이 쏟아진다.

지난해 9월 중국 국영 항공사 중 하나인 에어차이나는 기내 잡지 ‘윙스 오브 차이나(Wings of China)’에 인종차별적 기사를 실었다가 크게 홍역을 치렀다. 영문으로 된 이 기사는 “런던은 대부분 여행하기 안전하지만 인도인·파키스탄인·흑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여행할 때는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며 “관광객들은 밤에 혼자 외출을 삼가고 특히 여성은 외출 시 다른 사람을 동반하라”고 썼다가 네티즌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에어차이나는 결국 ‘편집상의 실수’가 있었다며 문제가 된 잡지를 모두 회수했으며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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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적인 기사 내용으로 문제가 된 에어차이나의 기내 잡지 ‘윙스 오브 차이나’. 사진출처=/헤이즈 팬 트위터(@hazeology)-CNBC
중국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로 논란이 된 사건이 몇차례 더 있었다. 지난해 5월에는 흑인 남성을 세탁기에 넣어 하얀 피부의 동양인으로 만든다는 내용의 '차오비'의 세제 광고가 온라인상에 퍼져나가면서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해당 업체는 광고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고 온라인 상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결국 중국 외교부까지 나서 문제의 광고는 중국 정부의 입장과 전혀 다르다며 정부는 모든 국적과 인종의 평등을 존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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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하얀 피부의 동양인이 나온다는 내용의 인종차별적 광고로 논란을 빚은 중국 기업 차오비의 세제 광고. 사진출처=/유튜브 캡쳐
대만이 원산지로 이른바 ‘국민치약’이라고 불리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널리 판매 중인 ‘달리’의 ‘헤이런 치약(黑人牙膏)’도 치약의 미백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흑인 치약’(흑인의 치아가 유난히 희게 보이는 것을 의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어 인종차별적 네이밍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브랜드는 초기에는 ‘달키(Darkie·검둥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브랜드 이름에서 K를 L로 바꿔 ‘달리(Darlie)’가 됐다. 브랜드 이미지도 명백한 흑인의 이미지에서 상대적으로 인종이 모호한 이미지로 바꿨으나 여전히 ‘흑인치약’이라는 상품명은 버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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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브랜드의 흑인치약. 초기에는 브랜드 이름이 ‘달키(Darkie·검둥이)’였으나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브랜드 이름에서 K를 L로 바꿔 ‘달리(Darlie)’가 됐다. 브랜드 이미지도 명백한 흑인의 이미지에서 상대적으로 인종이 모호한 이미지로 바꿨으나 여전히 ‘흑인치약’이라는 상품명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출처=/플리커


호주 빅토리아 주정부는 작년 12월 ‘남편’(husband)과 ‘아내’(wife)라는 ‘이성애 중심의’(heteronormative) 용어 대신 남녀 구분이 없는 대명사인 “지”(zie)나 “히어”(hir)를 쓰도록 산하 모든 공무원에게 공식 지침을 내렸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것이 중요하다”며 타인의 성·성적 지향·관계 상태를 모를 경우 ‘아내’나 ‘남편’보다는 ‘파트너’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마틴 폴리 빅토리아주 평등부 장관은 성 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며 “이번 지침은 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에 대한 혐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은 ‘인종차별’·‘성차별’ 등 가치 구분이 명확한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예컨대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정치적으로 올바른가?’라는 이슈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명문 공립학교인 리세시 고등학교는 지난해 말 독일어과 교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교실에서 크리스마스 전통과 공휴일에 관련한 내용을 전달하거나 관련 노래를 부르지 말 것”을 지시해 논란이 됐다.

일부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기독교적인 표현 대신 가치중립적인 “행복한 공휴일(Happy Holiday)”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holy(신성한)’라는 표현이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공휴일(holiday)’이라는 표현 대신 ‘연말(end of the year)’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일상 속의 미세한 표현에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 '결벽증'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것도 ‘PC함’에 지긋지긋함을 느낀 이들의 반격이라는 해석이 많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작년 초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자들의 반란(Revolt of the Politically Incorrect)’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트럼프는 맞는 말을 한다”며 그를 지지한 데 대해 “트럼프의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최근 수년간 ‘정치적 올바름’의 트렌드 속에서 그들이 소리 없이 질식당하고 있다고 느껴왔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자신도 트위터에 “이 나라에는 ‘정치적 올바름’에 매달리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며 “우리 모두는 이러한 넌센스(정치적 올바름)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해야 할 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PC함이 일종의 ‘검열’이며 심할 경우 인민재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의 필자인 데이브 쉴링은 “밀레니얼들이 사회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은 트위터다. 그러나 트위터를 ‘검열’의 온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뉴욕매거진의 필자 조나단 체이트는 ‘톤 다듬기’(tone policing)를 강조하는 것이 자유 발언의 권리를 해친다며 “야유하는 비평가들이 즉각적으로 떼지어 나타나는 소셜미디어는 역설적으로 소외의 감정을 생산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익명의 대중들이 ‘마녀사냥’식 비판을 쏟아내는 탓에 다른 주장을 가진 소수자들은, 설사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침묵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프로불편러’(전문가를 의미하는 접두사 ‘pro-’와 ‘불편함’, 사람을 의미하는 ‘-er’가 합성된 인터넷 유행어)가 세상을 바꾼다며 앞으로 더욱 불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국회의원인 스티븐 심 치 컹은 지난해 5월 현지 매체 말레이시아키니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자신의 생일날 본 스탠드 코미디 공연에서 코미디언이 체구가 큰 여성에게 계속해서 “뚱뚱하다”며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 관람 중인 자신이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우리에게는 ‘관용(tolerance)’이 아니라 ‘참지 않는 것(intolerance)’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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