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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밀레니얼이 미래다]“프레임 씌우지 마”① ‘여자력’에 반발하는 일본 여성

[아시아 밀레니얼이 미래다]“프레임 씌우지 마”① ‘여자력’에 반발하는 일본 여성

기사승인 2017. 02. 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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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최근 흔히 쓰이는 ‘여자력’에 대해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된장녀(명품 소비 등을 선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가 여성 혐오 단어로서 비판받게 됐다. 한국과 일본에서 여성에 대해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해 여성들이 들고 일어서고 있다.

일본에서는 여자력을 둘러싼 거북함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고있다. 2009년 유행어대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여자력은 왜 여성들에게 불편함을 가져다 주었을까.

△‘여자력’은 뭐길래 불편할까

“연구실에서 일하는 ‘여자력(女子力) 제로(0)’ 이과계 여자 3명이 유행하는 메이크업과 패션·미용 등 아름다움의 특별한 연구를 시작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

‘사람은 외모가 100%’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4월 일본 후지TV에서 방영될 드라마로 인기 여배우 키리타니 미레이 등이 출연하는 등 캐스팅 과정부터 이미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드라마나 예능 방송, 언론과 광고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여자력은 무슨 뜻이길래 흔히 쓰이고 있는 것일까. 아사히 신문이 지난해 12월26일부터 올해 1월 24일까지 162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여자력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미지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요리나 청소 등 집안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566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소한 배려가 가능한 것’이라는 대답이 455개로 2위를 차지했고 ‘항상 몸차림이 단정한 것’, ‘참견하거나 나서지 않고 남성을 띄워주는 것’이 각각 235개·115개로 3·4위였다.

즉, 일본 사회에서 여자력은 요리 등 집안일을 잘하고 배려를 잘하며 몸차림이 깨끗한 여성을 규정하는 말이다.

여자력은 일본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매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반영한 표현을 심사해 선정하는 ‘유캔 신어·유행어 대상’의 2009년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단어다.

이에 언론과 광고 등에서는 여자력이 오르는 상품이라면서 홍보를 하거나, ‘여자력을 높이는 5가지 방법’ 등의 팁을 전하기도 한다. 마치 여성에게 여자력은 필수적인 요소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서는 여자력이 없으면 여성으로서 매력이 없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없으면 이 상품을 구매함으로서 혹은 방송에 나오는 팁을 전수받아 여자력을 높이라는 식으로 들리기도 한다.

작가 기타하라 미노리는 주간아사히에 연재하는 ‘닛폰슷폰폰NEO’ 코너의 지난해 11월28일 호의 제목을 ‘여자력이여 사어(死語)가 되어라’라고 올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응하는 힘=여자력”이라면서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여성을 희롱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사용률이 높은 것이 실제 사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불편하다는 목소리는 영향력을 가진다

이처럼 최근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 이런 광고 등에 지적과 비판을 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여성에 대한 잣대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그러자 심각성을 감지한 일부 기업이나 단체는 광고 등을 중단하거나 인터넷에서 삭제하는 등의 대응에 나섰다. 지적은 논란으로 발전하고 논란은 광고 등을 내리게 하는 영향력으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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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위터 캡처
일본에서 지난해 11월 NGO 조이세프(JOICFP)가 제작한 ‘신·여자력테스트’ 라는 동영상이 유튜브 사이트에 올라왔다가 비공개로 전환됐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 상에서 비난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조이세프는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활동을 해온 국제협력 NGO로서 삭제된 동영상은 여러 여성들이 등장해 인터뷰에 답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처음에는 “핑크색이 좋다?” “멋에 신경쓰고 있는가” “걸스토크(여성끼리 하는 잡담)는 연애이야기인가” 등 이른바 여성스러운지에 대한 질문을 가볍게 묻는다.

그러고는 “여자력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라고 영상을 보는 이를 향해 묻는다.

본격적으로 영상 속 여성들에게 이어지는 질문으로는 ‘직접 콘돔을 산적이 있는가’ ‘올바를 피임법을 3개 답하시오’ ‘파트너에게 피임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등을 물어 제대로 답하지 못한 여성들에게 흰색 가루를 위에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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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위터 캡처
트위터에서는 ‘설마 또 아저씨가 만들었어? 남성이 본 적당히 좋은 여자=여자력 높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네’ ‘피임은 여성만의 일인가’ ‘왜 파트너에게 피임하자고 말하지 못하는 여자가 흰 가루를 맞아야 하는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아사히 신문은 여자력이 라는 단어 자체가 거북함을 품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실제 쇄도했던 비판들 가운데는 ‘여자력, 여자력 시끄럽다’ ‘신뢰하고 있던 단체가 이런 가벼운 말을 쓰다니’라는 지적도 있었다.

조이세프 측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여자력이라는 단어로 시선을 끌어 일본에서는 생소한 ‘성과 생식에 관한 건강과 권리(reproductive health rights)’를 전파하고 싶었다고 밝혔으나 결국 영상은 삭제됐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일본 유명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도 지난해 자사의 화장품 브랜드 인테그레이트의 방송 광고가 ‘여성 차별’ ‘성희롱’이라는 비판을 받아 논란이 되면서 방송 광고를 중단했다.

광고에는 25세 생일을 맞은 한 여성의 생일파티에서 다른 두 여성 친구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편 “오늘부터 너는 더이상 아가씨(女の子)가 아니야” “더 이상 치켜세워주지도 칭찬해주지도 않는다” “귀여움이라는 무기는 손에 없다” “귀여움을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여자가 되느냐 아니면 이대로 머물던지, 라는 얘기지” 등의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한다.

어린 여성만이 귀여움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25세라는 나이가 넘으면 더 이상 여성의 매력을 잃는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광고에서 여성성을 멋대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세이도는 이 광고의 2탄을 인터넷에 공개하는데, 일본에서 사회 문제로 번진 광고회사 덴쓰(電通)의 신입사원 자살 문제와 맞물리면서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 이 여성 신입사원은 2015년 자살 당시 24세로 트위터에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적곤 했다. 이 신입사원은 “남자 상사에게서 ‘여자력’이 없네 뭐네 소리 듣는 거, 웃기려고 하는 장난이라 해도 한계가 있다”, “부장이 ‘회의중에 졸린 얼굴을 하는 것은 관리가 안된 것’ ‘머리카락 부수수하고 눈은 충혈되서 출근하지마’ 나는 눈도 충혈되면 안돼?”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안타까움을 샀다.

특히 부장이 신입사원에게 지적했다는 말에서는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 여성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디어매체 메시는 신입사원의 이 트위터 글을 두고 ‘여자력 하라스멘트’(Harassment·괴롭힘)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덴쓰 측은 이 신입사원 여성에게 ‘파와하라(Power Harassment·상사의 권한 등으로 부하에게 가하는 괴롭힘 등 폭력)’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시세이도가 인터넷에 공개한 광고 2탄에는 공교롭게도 피곤한 모습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 직원에게 남자 상사가 “(열심히 해서 피곤한 모습이)얼굴에 드러나 있는 동안은 프로가 아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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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된 시세이도의 화장품 브랜드 인테그레이트 온라인 광고 영상. 여성 직원이 회사에서 남성 상사에게 “(열심히 해서 피곤한 모습이)얼굴에 드러나 있는 동안은 프로가 아니다”고 지적당하고 있는 모습. 사진=/유튜브 캡처
인터넷에서는 즉각 “여성을 위협하는 성희롱 광고” “여자는 일을 잘해도 피곤한 얼굴을 하면 안되는가”하는 비난이 잇따랐다. 시세이도는 이 광고도 공개 후 일주일만에 비공개로 전환됐다.

여자력에 대한 논문을 집필한 나고야시립대학 인문사회학부 기쿠치 나쓰노 교수는 19일 아사히 신문에 “현재 일본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여성이 노력하는 형태인 ‘여자력’으로 여성에게 전가하고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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