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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극적 재구성] 폐지 줍는 암 투병 노인의 ‘황혼 로맨스’... 사기극이었나?

[기사의 극적 재구성] 폐지 줍는 암 투병 노인의 ‘황혼 로맨스’... 사기극이었나?

기사승인 2015. 05. 2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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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를 주워 생활하던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벌인 범죄자가 구속됐다. 노인과 1년 전 결혼한 아내는 종적을 감춰 경찰이 소재를 파악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할아버님 안녕하세요. 요새 자주 뵙네요?”


“응...저기 오늘은 뭐 좀 물어보려고 왔어”


“요새 할아버님 은행 출입이 많으시네요. 그것도 매번 돈만 뽑아서 가시고”


“쓸 곳이 있어서 그래... 저기 아가씨, 이거 등기부등본인데 이 정도 땅이면 얼마나 대출 받을 수 있어?”


“요새 통장에 있는 돈 다 빼 가시더니 담보대출까지요? 할아버님, 요새 집안에 무슨 일 있으세요?” 

/사진=픽사베이

삐걱삐걱 손수레가 움직인다.
손수레를 끄는 노인도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거친 숨소리를 내쉰다. 무심히 지나가는 차들이 노인과 손수레를 위협하지만 노인은 앞만 보고 걸었다. 


노인은 동네 이곳저곳을 돌며 폐지를 주웠다. 아무렇게나 내다버린 쓰레기들이 모여 파리가 꼬이고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쓰레기 더미가 노인의 작업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코를 가리고 멀찌감치 피해 돌아가는 곳에서 노인은 돈을 벌었다.


노인은 폐지와 병을 한가득 손수레에 실고 삐걱삐걱 다른 장소로 향했다. 인근 지하철역까지 손수레를 끌었다. 사람들이 출근하면서 지하철역 입구에 버린 신문들이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땅바닥만 보며 신문과 폐지를 줍고 있던 노인의 뒤에서 노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할아버지. 엄청 고생하시네. 제가 좀 도와줄게요”


노인의 뒤에 햇빛을 등지고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힘드시죠? 여기 시원한 음료수 있어요.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일면식도 없는 여자가 노인에게 말을 거니 노인은 당황했다. 여자는 노인 얼굴을 보며 생긋 웃으며 이 동네에서 자주봐 남 같지 않아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노인은 여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보다 어려 보였지만 예순은 되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환했다. 온종일 쓰레기더미를 뒤진 노인은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까 여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화창한 봄날 지하철역 앞에서 그렇게 노인과 여자는 눈을 마주쳤다.


노인은 화장실에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쳐다봤다. 목욕을 막 끝낸 터라 습기 찬 거울을 손으로 닦아내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머리를 단정하게 했다. 옷장을 휘저으며 옷을 골랐다. 구두까지 신고 집을 나서는 노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지하철역 앞에서 여자를 만난 이후 여자의 부탁으로 노인은 여자와 식사를 하러 집을 나섰다. 왠지 모를 설렘이 노인을 황망스럽게 했다. 약속장소로 가는 내내 노인을 비추는 유리창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시 만졌다. 이내 쑥스러워 헛기침을 했지만 노인은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와, 할아버지, 몰라보겠는데요? 진짜 내가 봤던 그 남자가 맞아요? 정말 잘생기셨어요”


/사진=픽사베이

여자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여자와의 식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여자의 밥 먹는 모양, 웃는 얼굴, 자신에게 했던 말만 기억났다.


“오빠, 나도 예순 넘었어. 이 나이 되니까 바라는 게 별로 없더라고. 그저 마음 맞는 사람 만나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 보내다 죽음 되는 거 아니겠어?”


노인의 하루가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30년을 함께한 손수레 대신 여자를 만나러 갔다. 공원을 거닐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시간에 쫒길 일도 없었다. 천천히 걷다 힘들면 쉬고 다시 걸었다. 여자의 손을 잡고 걷는 길은 손수레를 끌던 길이 아니었다. 여자와 함께 걷는 길은 노인이 바라보는 세상을 바꿔놓았다.


노인이 암 투병 중이라는 걸 말했을 때도 여자는 지긋이 노인의 손을 잡아줬다. 노인은 여자의 그런 모습에 더욱 믿음이 생겼고 여자를 알게 된지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찬 공기만 가득한 노인의 방이 따듯함으로 채워졌다. 노인의 옆엔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여자가 노인에게 말했다.


“여보. 나, 아는 사람이 부동산 개발업잔데 이 사람한테 투자하면 돈 좀 불릴 수 있어. 오래 봐온 사람이라 믿을만해”


노인은 30년 동안 폐지를 주워 번 돈이 있었다. 하루 종일 손수레를 끌고 돌아다녀야 몇 천원이 손에 쥐어졌지만 차곡차곡 모았다. 어렵게 살지만 출가한 자식들이 한 달에 보내주는 돈도 있었다. 노인은 여자의 말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 가져다줬다. 돈을 받은 여자는 쏜살같이 집을 나가 밤이 되면 돌아왔다.


노인은 가져간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집에 돌아오면 반겨줄 아내가 생겼다는 것과 더 이상 외롭게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행복했다. 여자는 투자금 명목으로 노인에게 돈을 받아갔고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노인이 그간 저축한 돈이 사라졌다.


“당신, 나 못 믿어? 내가 아는 사람이라잖아. 투자한 돈이 한 달, 두 달 만에 돌아오면 세상 사람들이 다 떼돈 벌었게?”


노인이 걱정스레 물어보면 여자는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이내 풀어져 다시 싹싹하게 굴었다.


“여보,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 우리 둘이 남은 인생 풍족하게 살면 좋잖아. 지금까지 가져간 돈, 돌려받아도 얼마 안 돼. 우리 크게 한번 투자하자. 응? 여보”


여자가 아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정부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 2억을 투자하면 30억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노인에게는 2억도 30억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자와 소박하게 보내는 하루가 필요했다.


/사진=픽사베이

여자는 밤이나 낮이나 2억이 필요하다며 노래를 불렀다. 때론 화난 모습으로, 때론 침울한 표정으로 노인을 대했다. 그런 모습의 여자가 노인은 안쓰러웠다. 노인의 묵묵부답에 토라져 여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노인이 장롱 구석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구겨진 종이봉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노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노인의 부모가 묻혔고, 나중에 자신과 여자가 묻혀야할 선산이었다. 평생 풍족하게 살진 않았지만 죽어서 묻힐 땅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온 노인이었다. 은행에 들어선 노인은 선산을 담보로 2억의 돈을 빌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발걸음은 어두웠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노인의 부모와 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노인은 여자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2억원을 여자의 손에 쥐어준 날, 여자는 노인을 안으며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30억을 갖고 오겠다며집을 나섰다.


그날 밤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여자의 모습은 노인의 집에서 볼 수 없었다. 노인은 ‘큰 돈을 들고나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며 여자를 걱정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노인 곁에 존재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암 투병을 하며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바랐던 삶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손수레를 끌어 몇 천원을 주머니에넣고 집으로 돌아오면 소박한 밥상을 함께할 사람이었다. 노인의 빈 공간을 여자와의 작은 일상으로 채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노인의 그 작은 바람은 노인이 평생 모은 돈과 조상이 묻힌 선산마저 가져간 채 허망하게 사라졌다. 유난히 화창한 날, 여자가 사라진 노인의 적막한 집에서 노인은 쓸쓸하게 낡은 손수레만 쳐다봤다.



/사진=픽사베이

<기사 원문>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이어온 노인의 전 재산을 노린 사기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6일 사기혐의로 이모(61)씨를 구속하고 사라진 B(64,여)씨의 소재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A(69,남)씨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반지하에 살면서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와 병을 주워 생활을 이어갔다.


A씨가 폐지와 병을 판 돈은 하루에 몇 천원이 고작이었지만, 젊은 시절 모아둔 목돈과 자녀가 보내주는 용돈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암 투병 중에도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줍던 A씨가 B씨를 만난 것은 지하철 역 앞이었다. B씨는 폐지를 줍던 A씨에게 접근해 밥을 사는 등 호감을 보였고, 급격하게 친해진 두 사람은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일흔에 결혼식을 올린 A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B씨는 부동산 개발업자 이씨에게 돈을 투자한다며 A씨에게 돈을 요구했고 그동안 모아둔 은행 예금을 가져갔다.


B씨는 “이씨가 정부의 휴면예금을 끌어 모으는 일을 하는데 2억원을 투자하면 30억을 벌 수 있다”며 A씨를 안심시켰고, A씨는 선산을 담보로 2억2천만원을 대출받아 이씨에게 넘겼다.


돈을 넘겨받은 이씨는 바로 종적을 감췄고, B씨도 사라졌다.


A씨의 신고로 경찰은 잠복 끝에 이씨를 경기도 성남에서 붙잡았다.


경찰조사에서 이씨는 사기혐의는 인정했지만 B씨와 무관한 단독범행이라 주장했고, 가로챈 돈은 생활비와 사업경비로썼다고 진술했다.


한편, 경찰은 B씨가 사기를 목적으로 A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고 B씨의 소재가 파악되는 대로 불러 공범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기사의 극적 재구성] 실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한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구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투톡톡] 아시아투데이 모바일 버전에서는 '기사의 극적 재구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m.asiatoday.co.kr/kn/atootalk.html#2015.05.26


아시아투데이 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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