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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 앤’의 섬, 사과꽃 향기 가득한 그곳으로 가자

‘빨간머리 앤’의 섬, 사과꽃 향기 가득한 그곳으로 가자

기사승인 2014. 10. 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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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하며 토킹하며] 세계여행 -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편 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지금은 점심시간일까요? 아니면 퇴근길? 아니면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잠시 숨을 돌리고 계신가요?

‘빨간 머리 앤’을 알고 있는 독자들은 아마도 여성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자전적 소설인 ‘빨간 머리 앤’을 느끼려 몽고메리의 고향인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는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정작 가보면 너무나 ‘팬시’해진 모습에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프린스에드워드 섬으로 떠나려고 하는데요. 조금이나마 색다른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잘 따라오세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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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소설 속에 나온 곳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크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출처 =/ 캐나다관광청
△‘빨간 머리, 주근깨투성이, 말괄량이’ 앤, 에이번리로

에이번리 마을은 세이트 로렌스만에서 돌출되어있는 삼각형의 작은 반도로 양편이 다 물로 둘러싸여있다.

이날 햇빛은 창을 통해 찬란하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언덕 밑 과수원에는 엷은 분홍 꽃이 가득 피어 있었고, 많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고 있었다.

매튜 커스버트는 농장 사이에 있는 깨끗한 길을 통과해 때로는 느릅나무 숲 사이를 달리고 아지랑이처럼 피어있는 살구꽃 사이를 지나면서 마차를 몰았다.

공기는 사과꽃 향기가 무르녹아 달콤했고, 비스듬히 경사진 길은 아득히 진주빛과 보라빛으로 번진 지평선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매튜는 이날 농장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마중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역에 도착한 그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투성이의 앤 셜리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매튜와 마릴라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된 줄로만 알고 있는 앤은 매튜와 함께 초록지붕의 집으로 향한다. 길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날씬한 백양목이 줄 맞춰 늘어서 있어 앤은 한껏 들떴다.

“참 아름답지요? 저기 언덕에 삐져나와 있는 하얀 레이스 같은 나무를 보고 아저씨는 무엇을 상상하세요? 물론 새색시예요. 보세요.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흰옷을 입고 멋진 안개 같은 면사포를 쓴 새색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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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붕의 집으로 도착하기 직전 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진 제공 =/ 김은정
△<환희의 하얀 길>과 <빛나는 호수>

한참을 조잘 대던 앤은 “어머나 아저씨! 어머나 아저씨! 어머나 아저씨!” 연거푸 소리를 지르곤 이내 잠잠해졌다. 눈앞에 아름다운 가로수길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큰 사과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뻗치면서 양쪽에 쭉 늘어서 머리 위에는 향기롭고 구름 같은 사과 꽃이 지붕처럼 한참 계속됐다.

“‘아름답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고...아아 정말 굉장히 멋있는 곳이었어요. 상상의 힘이 아무리 날개를 펴도 소용이 없었어요.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에요. 이 가슴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이상하게 털썩 내려앉는 듯한 아픔이지만 기분 나쁜 아픔은 아니예요. 그런 아픔을 느낀 일이 있으세요?”

앤은 이 길을 <환희의 하얀 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마차는 이 사과나무 길을 지나 언덕을 넘었다. 언덕 밑으로는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긴 강처럼 보이는 연못이 있었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다리가 걸려 있고, 연못가에는 푸르스름한 모래언덕이 지면과 경계에 늘어서 있어 마치 긴 허리띠처럼 보였다. 연못 위쪽에 있는 늪에서는 애수를 머금은 듯 맑고 청아한 개구리의 합창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빛나는 호수>였다.

그러나 앤의 아름다운 꿈은 초록지붕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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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소설에 나오는 그린 게이블즈는 불로 소실 됐다고 한다. 현재의 초록 지붕의 집은 재건된 것이다. 출처 =/ 캐나다관광청
△‘그린 게이블즈’에서의 첫 아침, <눈의 여왕>과 만나다

앤은 절망이 가득한 밤을 보냈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다음날 아침 절망을 극복하고 초록지붕의 동쪽 방에서 눈을 떴다.

창문 밖에는 흰 구름이 둥둥 떠 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바로 곁에 서있는 벚나무 가지는 벽에 거의 닿을 것처럼 가깝고, 하얀 꽃이 만발해 있었다. 마치 <눈의 여왕> 같았다.

집 양쪽에는 과수원이 있고, 한쪽은 사과나무가 한쪽은 벚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꽃나무 밑에는 노란 민들레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보라빛 라일락의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찔러 마음은 마냥 설랬다. 마당 아래에는 푸른 클로버가 빌로드 천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 밑으로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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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하늘에 있고 세상은 모두 평안하도다” 앤은 이 창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출처 =/ 캐나다관광청
△‘그린 게이블즈’의 딸이 된 앤, 공주님을 상상하다

마릴라는 앤이 어린나이에 부모를 병으로 잃고, 이집 저집을 떠돌며 아이들의 보모로 지내온 것을 알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커스버트 남매는 결국 수다스럽고 빼빼마른 앤을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그날 밤 앤은 두 손가락으로 <눈의 여왕>에게 키스를 보내면서 자신을 키 크고, 기품이 있으며, 철철 끌리는 긴 옷을 입고 있는 코딜리어 공주님이라고 상상하며 황홀한 공상의 세계에 빠졌다. 공주님은 자신과 정반대로 가슴에 십자가를 걸고, 머리에는 찬란한 진주장식이 달려 있으며 머리카락은 칠처럼 검고, 피부는 희고 창백했다.

앤은 케이크를 만들 때 진통제를 넣고, 공상에 빠져 있다가 다리에서 떨어질 뻔도 하고, 머리 염색을 잘못해 얼룩덜룩한 초록색 머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고의 사건은 이 다음에 일어났다. 빨간 머리에 대한 말만 들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앤은 생전 처음 간 학교에서 길버트 블라이스가 홍당무라고 놀리자 그의 머리를 석판으로 내리친 것.

앤을 제외한 모든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길버트는 앤과 화해하고자 시도했지만 거절당한 후 둘은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해 공부에서 성과를 얻게 된다. 길버트와 함께 일등으로 교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앤은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가기로 하지만, 돈을 맡긴 은행이 파산해 충격으로 매튜가 돌아가시게 되자 마릴라와 함께 집에 남기로 결심한다.

길버트는 자신이 부임하기로 한 에이번리 학교의 교사직을 기꺼이 앤에게 양보하고 둘은 화해한다. 길에 서서 길버트와 한참을 얘기했던 이날 저녁은 산들바람이 불고, 꽃향기가 은은했다. 느릅나무 위로 별은 반짝이고 있었다.

“신은 하늘에 있고 세상은 모두 평안하도다”
길은 언제나 구불구불할 것이다. 앤은 혼자서 조용히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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