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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어머니’ 평택 해군 2함대 앞에 식당 낸 사연은?

‘천안함 어머니’ 평택 해군 2함대 앞에 식당 낸 사연은?

기사승인 2015. 03. 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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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5주기] 천안함 전사자 '문규석 원사' 모친 유의자씨, 정든 부산 떠나 아들 부대 앞에서 '군인들에게 따뜻한 밥 지어주는' 석정식당 5년째, "아들 소원, 한이라도 풀어주고 싶다"
천안함 문 원사 유의자 여사 1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지켜 주기 위해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 앞에 식당을 차려 군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해 주고 있는 천안함 전사자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씨가 아들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다시는 천안함 같은 비극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 사진=해군 제공
“험한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46명 장병들의 죽음을 마치 말장난하듯 떠드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건으로 하나 밖에 없는 군인 아들을 잃은 문규석 원사(추서 계급·당시 나이 36살)의 어머니 유의자 씨(66·사진)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아들과 아버지, 남편들의 명예를 더 이상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안함 사건 5주기를 이틀 앞둔 23일 유 씨는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지킨 해군 아들이 정말로 자랑스럽다”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되며 병사가 됐든 간부가 됐든 간에 군인은 건강하게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문 원사는 부산 반송초·중교와 금정고를 나와 1994년 해군 부사관 152기 전자하사로 임관했다. 울산함과 안양함·원산함·양양함을 거쳐 2010년 2월 1일 천안함에 부임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전자선임하사로 근무 중에 전사해 26번째 시신으로 돌아왔다. 문 원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초등학생 두 딸을 남겨 두고 떠났다.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유 씨는 전남 구례가 고향인 남편 문창호 씨(66·부산 거주)를 만나 장남인 문 원사와 딸인 해정(출가)을 낳아 기르면서 부산에서 30년 넘게 살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가정 주부로서 남부럽지 않은 단란한 가정을 이뤘던 유 씨의 가족은 천안함 사건으로 모든 일상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로 전입한 문 원사가 천안함 사건이 난 백령도로 해상경계 작전을 나가면서 “‘어머니 평택으로 와서 군인들에게 따뜻한 밥도 많이 줄 수 있는 식당을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떡겠냐’고 말해 아들이 백령도에서 돌아오는 3월 말 식당 자리를 보러 올라가기로 했다”면서 “이 놈이 집밥 먹고 싶어서 그러구나 했지만 진심이 느껴져서 천안함이 백령도를 갔다 오면 식당 자리를 같이 알아보자고 했는데 그게 유언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유 씨는 천안함 사건 이후 1~2년 동안 매일 같이 2함대사령부와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 마음이 아플 때, 속상할 때, 아들이 보고 싶을 때는 2함대사령부 정문 위병소까지 걷는 게 일과였다. 그럴 때마다 유 씨의 손에는 경계근무를 서는 장병들을 위한 음식이 들려 있었다.

유 씨는 아들의 유언이자 마지막 바람이었던 군인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 줄 수 있는 식당을 열기 위해 30년 넘게 살던 부산을 떠나 연고도 없는 2함대사령부 앞에 ‘석정’이라는 식당을 2011년 3월 차렸다. 식당 이름도 아들 ‘규석’과 딸 ‘해정’에서 한 자씩 따서 지었다. 2함대사령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포승읍 원정리에 한식당을 열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자 전사자 가족들은 하나 둘씩 몸서리쳐지는 ‘해군 도시’ 평택을 떠났다. 하지만 유 씨는 군인 아들인 문 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아무 연고도 없는 2함대사령부 인근에 식당을 차렸다.

아들이 살아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다는 달걀 프라이와 돼지고기 제육볶음을 해군 장병과 군인들에게는 특별히 ‘곱빼기’로 차려 주고 있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과 함께 문 원사의 임관 동기들, 해군 장병들이 문 원사를 대신해 살가운 군인 아들이 돼 주고 있다.

문 상사 어머니 유의자 여사
천안함 전사자 고 문규석 원사의 어머니 유의자씨는 “험한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46명 장병들의 죽음을 마치 말장난하듯 떠드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 유 씨는 “건강하게 군 생활 잘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 사진=해군 제공
유 씨는 머리 스타일이 짧은 손님이 들어오면 군인이냐고 묻는 것이 이제는 버롯이 됐다. 유 씨는 “손님들에게 달걀 프라이를 1개씩 드리는데 군인에게는 2개씩 준다”면서 “군인에게는 공기밥 추가도 돈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 원사가 달걀 프라이를 너무나 좋아해 군인들에게는 서비스로 꼭 달걀 프라이를 하나씩 더 주고, 제육볶음도 ‘중자’를 주문하면 ‘대자’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유 씨는 문 원사가 좋아했다는 달걀 프라이, 문어, 삼겹살은 입에 잘 대지 않는다.

유 씨는 “3월 만 다가 오면 가슴이 미어 터진다. 세월이 갈수록 아들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이고 마음이 답답해 미칠 것 같다. 46명 전사자의 부모나 아내, 가족들은 다 똑같을 것”이라면서 “막상 이런 일을 닥치고 보고 앞이 깜깜하고 살아 있다고 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군인 사고 소식만 뉴스에 나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앞으로 절대 천안함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되뇌였다.

화목했던 유 씨의 가족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이후 중학생이 된 손녀 딸들은 물론 며느리와도 왕래가 끊이고 그야말로 온 가족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졌다.

유 씨는 “아직도 평택 길조차 모르는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아들 규석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외롭고 힘들게 눈물로 세상을 살고 있다”면서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군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해 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버텨내고 있다. 하루에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아들 소원이라도, 한(恨)이라도 이렇게 풀어 주기 위해 천날 만날 눈물로 버텨 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씨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우리 규석이 생각이 자꾸 나 가슴이 찢어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지만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군 장병과 군인들을 위해 식당을 해 나갈 것”이라면서 “우리 아들이 엄마를 놔두고 갔기 때문에 ‘나쁜 놈’이지만 먼저 좋은 데 가 있다 보면 엄마도 따라 가서 만나야 한다”고 울먹였다.

유 씨는 ‘석정’ 식당이 쉬는 날에도 남편이 있는 부산에 가기보다는 2함대사령부를 자주 찾는다. 사령부 안에 있는 문 원사의 마지막 흔적인 군복과 모자를 보면 위안이 된다. 유 씨는 올해도 오는 26일부터 사나흘간 식당 문을 닫고 46명 전사자 가족들과 함께 아들이 묻힌 국립대전현충원과 백령도 천안함위령탑을 찾아간다.

유 씨는 “지금이라도 규석이와 내가 바꿀 수만 있다면 바꿨으면 좋겠다. 내가 그냥 물에 빠지면 규석이가 살아 나온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빠질 자신이 있다. 아들만 살아 온다면 내가 죽을려고 한다”면서 “27일 백령도 천안함위령탑에 있는 우리 아들 규석이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천안함 46명의 전사자 중에 아직도 6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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