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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달라져야 한다 下] 졸업시험·취업 과정 불투명성 해소해야

[로스쿨 달라져야 한다 下] 졸업시험·취업 과정 불투명성 해소해야

기사승인 2016. 01. 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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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폐지를 둘러싸고 법조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찬성과 반대 양 측으로 나뉘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생들은 학사일정은 물론 정부가 시행하는 시험까지 거부하고 나섰고 고시생들은 삭발까지 감수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법무부의 ‘사시 폐지 4년 유예’ 방침 발표가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사시 폐지를 앞두고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불거질 문제였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는 각자가 속한 단체,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로스쿨을 유치하지 못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들이 ‘사시 존치’를, 이미 로스쿨을 운영 중인 대학의 교수들이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로스쿨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사시 폐지’를, 고시생들이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것 역시 각자의 입장에선 생계가 걸린 문제다.

이 같은 논란의 근저에는 지난 2005년 다소 성급하게 도입이 결정된 현행 로스쿨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건들이 전체 로스쿨의 실상을 반영한다 할 순 없겠지만, 로스쿨 입학과 졸업, 그리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취업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잡음은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마저 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지금의 갈등은 결국엔 국민의 뜻을 모아서 국회에서 정책적인 판단을 통해 풀어야할 문제다.

하지만 사시가 계속 존치되든 폐지되든, 그와는 상관없이 로스쿨은 달라져야 한다. 사시 존치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로스쿨은 국민적 합의를 거쳐 우리나라 법조인 양성의 기본 제도로 자리 잡았다. 사시가 몇 년 더 존치되거나 혹은 계속 병존한다 해도 그 기본 틀이 바뀌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더 고민하고 매진해야 할지 분명해진다. 바로 현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고쳐나가는 일이다.

고시생 로스쿨-02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시생 1137명이 제기한 신기남 의원 로스쿨 자녀들의 입학, 졸업 자료 정보공개청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이병화 기자 photolbh@
아시아투데이 정지희 기자 = 2005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될 당시 로스쿨이 있는 자들만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가 될 것이란 많은 이들의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초 취지와 달리 선발시험으로 변질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로스쿨에서 졸업시험 합격률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고위직 인사나 재력가가 개입해 성적을 조작할 가능성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출신 학교나 부모의 직업 및 재력 등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불투명한’ 취업 과정이 로스쿨 문제와 관련해 개선될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명확하지 않은 졸업시험 합격 기준, 부정적 요소 개입할 가능성 크다

로스쿨은 통상적으로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졸업시험을 치른다. 졸업시험의 응시 비용이나 출제 유형, 난이도 등은 각 로스쿨마다 다르다. 등록금에 전형료가 포함돼 있는 경우도 있고, 재시험에 한해 8만~10만원가량의 전형료를 따로 받는 곳도 있다. 새로 문제를 출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변호사시험 모의고사 점수를 활용하는 곳도 있다.

다만 졸업시험에 떨어지면 이듬해 1월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유급하게 되는 것은 어느 학교나 동일하다.

재수생이 그만큼 더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매년 변호사시험 응시자가 증가하는 만큼 시험 내용은 어려워지고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한 번 놓칠 때마다 여러모로 부담이 점점 커지는 셈이다.

때문에 많은 로스쿨 재학생들이 졸업시험을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처럼 여기고 있다. 문제는 이 졸업시험이 변호사시험과 마찬가지로 ‘자격시험’에서 ‘선발시험’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매년 입학하는 학생이 100~150명에 이르는 대형 로스쿨의 경우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입학정원이 40~60명에 불과한 중형 로스쿨의 경우 학교 홍보 및 유지 차원에서 졸업생들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중시하기 때문에, 변호사시험에 붙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재학생들을 졸업시험으로 미리 걸러내곤 한다는 것.

실제로 모든 로스쿨의 졸업시험이 절대평가로 이뤄지지만 커트라인이 사전에 공지되지 않아 명확한 합격 기준을 알 수 없는 곳이 많은 데다, 일부 로스쿨에선 응시자들에게 답안지조차 공개하지 않아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신기남 더불어민주당 의원(63)이 K대 로스쿨 졸업시험에서 떨어진 아들을 구제해 달라는 취지의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로스쿨 졸업시험의 불투명성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K대 로스쿨은 졸업시험으로 변호사시험 탈락 예상자를 미리 걸러내는 대표적인 로스쿨 중 한 곳이라고 모 변호사는 귀띔했다.

배승희 변호사(법무법인 태일)는 “졸업시험 채점 과정이 공개가 안 되고 객관적 기준도 없다 보니 고위직 인사가 시험 성적까지 좌지우지하려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며 “이 같은 사례에 대한 제보를 꾸준히 받으며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원광대학교 로스쿨 재학생 일부는 졸업시험의 문제점과 관련해 지난해 학교 측을 상대로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졸업 여부가 졸업시험으로 좌우되는 것에 대한 부당함, 졸업시험 비용 부과 문제, 답안지 비공개 문제 등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나 이희성 원광대학교 로스쿨 원장은 “‘걸러내기’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안 해도 기본적인 실력이 없어 졸업시험에 떨어지는 학생은 어차피 변호사시험에도 떨어지게 돼 있다”며 “입학 당시 동의했던 졸업시험을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로스쿨 교수 또한 “졸업시험과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것 같은 학생을 학교에 두고 관리해준다는 측면으로 보는 게 옳다”며 “졸업시험과 관련해 학부모로부터 연락이 많이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압박을 받아서 시험 결과를 바꾸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 같은 로스쿨 관계자들의 주장은 당장의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 답변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로스쿨 졸업시험에 부정한 요소가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로스쿨 졸업 후 취업, 통계와는 다른 실상

고된 노력 끝에 로스쿨 졸업시험에 통과하고 변호사시험에도 합격해 정식으로 변호사가 될 자격을 얻었다. 이제 그토록 꿈꾸던 법조인으로서의 장밋빛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걸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취업 과정에서는 학벌·집안·재력 등이 졸업시험 때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증권가 소식지를 통해 ‘고위층 자녀 로스쿨 취업 명단’이 공개돼 법조계를 들썩이게 했다. 이 명단에 따르면 전 대법관 후보나 고등법원장, 지방법원장, 지검장, 재판관, 사법연수원장, 변호사회 회장 등 법조계 인사들의 자녀들 상당수는 로스쿨 졸업 후 대형 로펌에 취업했다.

교육감, 로스쿨 교수, 전 국회의원, 대기업 계열사 고위인사 등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재계 인사의 자녀는 부모의 회사나 같은 계열사로 입사한 경우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고위직 인사가 실제로 취업 청탁을 한 정황도 여럿 드러났다. 로스쿨이 부의 세습을 넘어 권력마저 대물림되게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소재 대형 로펌에서 근무 중인 변호사 A씨는 “저희 로펌에서 일하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이른바 ‘좋은 집안’ 자제들이다. 출신 로스쿨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가 절대적”이라며 “그래야 법원이나 검찰에 동기들이 많아 업무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대부분 사정은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로펌에는 특별한 사회생활 경험도 없는 30대 후반 로스쿨 변호사가 신입으로 들어갔다고 들었다. 원칙적인 채용 조건에 부적합하지만, 모 대기업 사장 아들이라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 B씨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취업이 어렵다 보니, 커리어를 쌓아주기 위해 친분이 있는 지인의 자제를 몇 달만 채용했다가 다른 회사의 사내 변호사로 취업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변호사법 21조의2, 같은 법 31조의2에는 로스쿨 변호사들이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 이상의 실무수습을 마쳐야 단독으로 법률사무소를 개설해 사건을 수임하거나 법무법인의 담당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법원, 검찰 등에서 5~6개월 정도의 시보(試補) 과정을 거치는 사법연수원 출신과 달리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실무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 같은 제한을 둔 것이다.

때문에 로스쿨 변호사들은 6개월 간 법무부가 지정한 로펌과 변호사사무소 등에서 실무수습교육을 받거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실시하는 실무연수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돈도 없고 집안 환경도 평범하며 SKY 출신도 아닌 수습 변호사들은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 6개월을 보내게 된다. 실무수습교육을 택할 경우,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적은 돈을 받으며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로펌에서 실무수습교육을 받고 있는 로스쿨 변호사 C씨는 “힘들게 시험을 통과하고 드디어 변호사가 되나 했는데, 이렇게 교육을 받고도 재계약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판 음서제’란 말이 맞다. 로스쿨 졸업 전에 이미 취업이 내정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나는 그런 ‘금수저’가 아닌 걸 어쩌겠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로스쿨협의회가 공개한 2012~2014년 로스쿨 취업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각 로스쿨별 취업률은 최저 71~100%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C씨와 같이 법률사무종사기관 등에서 실무수습교육을 받는 변호사까지 취업자로 포함돼 있어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로스쿨이 취업 과정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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