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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경험 인도서 한국근대문학 국제학술대회 열려

식민지 경험 인도서 한국근대문학 국제학술대회 열려

기사승인 2016. 02. 2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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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대 한국어학과, 한국·인도·베트남·중국 학자 초청, 식민지 시대 한국 근대문학 논의 국제학술대회 개최...인도 한국학 가능성 보여줘
인도 한국학 국제심포
비자연티 라가반(Vyjayanti Raghavan) 네루대학교(JNU) 한국어학과 교수(왼쪽)가 19일 네루대 컨벤션센터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 ‘식민지 시대의 한국 근대문학’ 개회식에서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단상에 있는 라비케쉬 (Ravikesh) 네루대 한국어학과장(왼쪽 2번째부터) 조현 주인도 한국대사, M. 자가데쉬 쿠마르(Jagadesh Kumar) 네루대 총장(3번째), 레카 라잔(Rekha Rajan) 언어·문학·문화학부 학장(4번째), 윤여탁 서울대 교수(한국교육학)가 이를 경청하고 있다./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식민지 경험을 가진 인도에서 ‘식민지 시대 한국 근대문학’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인도 네루대학교(JNU) 한국어학과는 18~19일 양일간 네루대 컨벤션센터와 강의실에서 ‘식민지 한국 근대문학의 궤적들-학제적 시각에서’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인도에서 문학연구 중심의 한국학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한국·인도·중국·일본의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들을 내걸고 식민지 역사를 공유한 한국·인도·베트남·중국 학자들이 식민지 시대 한국문학을 본격적으로 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 자리에서는 18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인도에서는 특히 루파 싱(Rupa Singh), 락슈미(M.V. Lakshmi), 자나슈르티 챤드라(Janashruti Chandra) 네루대 교수 등 일본학 연구자 3명이 참가, 한국인이 등장하는 근대 일본작가들의 작품, 재일교포문학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 대회를 한층 풍성하게 했다.

또한 중국학 및 남·동아시아학 센터의 중국학자 헤만트 아들라카(Hemant Adlakha) 네루대 교수는 현대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을 들어 한·중·일 3국의 근대성 담론문제를 제기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인문학계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동아시아 근대’의 이해와 학술적 성과가 개성적이면서 ‘또 하나의 거대한 아시아’ 인도와 만날 가능성을 열어준 발표였다.

18일 개최된 개회식에는 조현 주인도 한국대사, M. 자가데쉬 쿠마르(Jagadesh Kumar) 총장, 레카 라잔(Rekha Rajan) 언어·문학·문화학부 학장과 연구자, 학생들 1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쿠마르 총장은 인도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학내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참석, 한국어학과와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높은 기대를 표시했다. 라잔 학장은 한국어학과가 12개 학과 중 가장 활발하게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한다며 “특히 대사관·문화원 등 한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많은 학생들이 재학 중이나 졸업 후 장학금을 받고 한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해 다른 학과들이 부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네루대 한국어
윤여탁 서울대 교수(국어교육학)가 19일 이틀 일정으로 네루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 ‘식민지 시대의 한국 근대문학’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조현 대사는 “언어와 문학은 교류의 다리이자 창”이라고 전제한 뒤 세익스피어의 작품 맥베스의 마지막 독백을 인용, ‘소리와 분노가 가득찬 (full of sound and fury)’ 대학에서 일제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기에 한국인들이 위안과 희망을 얻었던 한국 근대문학을 재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고 했다.

라비케쉬(Ravikesh) 한국어학과장은 이 자리에서 학술지 ‘무궁화’ 창간 계획을 밝히면서 표지 디자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측 기조연설자 윤여탁 서울대 교수(국어교육학)는 ‘비교문학의 새로운 지평 - 타고르와 한국문학’에서 식민지 조선을 ‘동방의 등불’로 노래한 타고르에게 희망을 보고, 부유한 귀족출신인 타고르가 노벨상 수상 후 귀빈으로 여러 열강을 방문하는 모습에 절망한 인식의 변화를 소개하면서 한용운의 이 같은 일련의 모색을 ‘식민지 문학의 주체화 과정’이라는 ‘탈식민주의적’ 시각에서 조망했다.

인도 측 기조연설자 김도영 델리대 교수(동아시아학)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염상섭의 ‘만세전’과 인도 작가 R.K. 나라얀(Narayan)의 ‘스와미와 친구들(Swami and Friends)’에 등장한 주인공의 식민주의 체험과 민족주의 자각과정을 비교분석했다.

김정우 이화여대 교수는 ‘슬픔과 저항 - 윤동주 시의 탈식민성’에서 ‘분노’와 달리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극복해가는 ‘슬픔’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소개하며 윤동주 시 세계의 키워드를 전폭적으로 재해석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줬다. ‘슬픔’이 긍정적·전향적 감정기제로서 피식민지 역사적 기억을 공유하는 나라들에게 하나의 공감대로 기능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윤대석 서울대 교수의 ‘식민지 조선의 문학어’는 근대국가와 문학의 관계, 국민(Nation) 및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균질한 ‘상상의 공동체’를 창출하는 도구로서의 소설, 그리고 소설의 직접적 매개인 근대어로서의 한국어가 어떻게 이에 걸맞은 문체를 구축해 갔는지를 개화기 신소설 이래 몇몇 작가의 경우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폈다.

특히 ‘조선문학은 조선어로’라는 본인의 천명과 달리 이중언어 작가였던 김사량의 고뇌와 그가 결과적으로 달성한 효과에 주목했다. 대사나 지문에 등장하는 ‘조선어’ 및 ‘조선어 고유명사’를 가나로 표기함으로써 일본제국의 균질화된 ‘국어=일어’를 혼종 언어로 만들어버린 ‘일본어 죽이기’였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년 한국 인문학계의 탈근대적 연구성과를 가장 잘 보여준 논문이었다. 아울러 ‘단일 국어’가 없는 다언어국가 인도가 향후 국어와 국민국가 창출이라는 동아시아적 경험을 어떻게 참조, 혹은 넘어설 것인지 흥미로운 테마를 환기시켰다는 평가다.

전형적인 비교연구로는 인도 여류작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God of Small Things)’과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다룬 김영순 박사의 ‘식민지 시대의 영향’, 현진건의 ‘사립정신병원장’과 베트남 문학사의 주요작품 남까오(Nam Cao)의 ‘찌패오(Chi Pheo)’를 비교 분석한 황쯔짱(Hoang Thitrang) 국립 베트남대 교수의 ‘한국과 베트남 식민지시대 리얼리즘 소설 비교연구’를 꼽을 수 있다.

니르자 사마지다르(Neerja Samajdar) 네루대 교수는 윤동주의 ‘서시(序詩)’와 타고르의 ‘인사(Salutation)’를 매개로 ‘한(恨)과 인도 특유의 미학개념 라자(Rasa)’에 대한 비교논의의 여지를 보여줬다.

네루대 국제심포
19일 인도 네루대 컨벤션센터에서 이틀 일정으로 열린 국제 학술대회 ‘식민지 시대의 한국 근대문학’ 개회식에 참석한 조현 주인도 한국대사(뒷줄 오른쪽에서 4번째), M. 자가데쉬 쿠마르(Jagadesh Kumar) 총장(3번째)과 연구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김창원 경인교대 교수의 ‘현대시와 현대시 교육의 성립 - 식민지 시기의 현대시와 교육’과 라비케쉬(Ravikesh) 학과장의 ‘정지용과 김영랑 시에 나타난 식민지 경험의 기억과 표상’은 한국학 교재로서 시의 유용성을 환기시켜 주목을 받았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디빅 라메쉬(Divik Ramesh) 델리대 교수는 ‘식민지 시대 한국문학에 끼친 타고르의 영향’에서 한·인도 양국이 접점을 찾을 때 가장 유효한 매개가 타고르임을 재확인시켰다.

판카지 모한(Pankaj N. Mohan) 날란다(Nalanda) 대학 교수는 ‘한국과 인도의 불교 민족주의, 식민주의와 문학’에서 한용운과 인도의 승려 작가이자 독립운동가 산크리트야얀을 비교·분석했다. 모한 교수는 한국 고대사 등에 관한 저작 활동으로 한국학을 세계에 알린 공헌을 인정받아 2010년 명예서울시민이 된 원로 한국학자다.

쿠마르 란쟌(Kumar Ranjan) 네루대 교수는 ‘식민지 시대의 한·인도의 직접 교류에 관한 연구’에서 식민지 시대 한국 언론에 등장한 인도 관련 주요기사를 소개하면서 그 배경과 문맥을 추적했다.

사티안슈 스리바스타바(Satyanshu Srivastava) 네루대 교수는 채만식의 ‘태평천화’를 중심으로 ‘식민지 시대 한국의 가족구조 변화’를 분석했고, 이명이 네루대 교수는 식민지 시대 단편소설 속의 지식인상을 통해 억눌린 자아와 이것의 뒤틀린 발산의 흔적을 조명했다.

샤시 미슈라(Shashi Mishra) 자르칸트(Jharkhand) 중앙대 교수는 식민지 시대 뛰어난 리얼리즘 작가 강경애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중국학·일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던 인도 한국학의 가능성을 보여준 행사였다는 평가다. 인도 한국학 연구자들은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하지만 실제 게재 논문과 발표 때는 다수가 영어를 사용했다. 이에 한국학의 본질적 정체성의 기초를 말과 글,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한글에서 찾는 경향에 비춰 한국어를 권장하고 고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인도 한국학 연구자들의 역할이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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