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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도의 ‘스터디 코리아’

[칼럼] 인도의 ‘스터디 코리아’

기사승인 2016. 02.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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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모디 정부의 근대화 정책, 그리고 한국
모디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3일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 뭄바이(Mumbai) 반드라 쿠를라(Bandra Kurla) 콤플렉스(Complex)에서 개최된 ‘메이크 인 인디아’ 주간 전시회에서 한국관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조현 주인도 한국대사,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유하 시펠리 핀란드 총리, 모디 총리, 이강덕 포항시장, 최동석 코트라 서남아시아 본부장./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내 이름으로 나의 출신 카스트를 맞춰 보라.” 24일 스미리티 이라니(Smriti Irani) 인도 인적자원부 장관이 국회에서 야당을 향해 던진 말이다. 인도인들의 이름에는 출신 카스트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인도 중남부 텔랑가나(Telangana)주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중앙대학 박사과정 재학생 로히드 베물라(Rohith Vemula) 연구원의 자살사건 배경을 두고 ‘달리트(Dalit,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대우 때문이었다’는 비판을 반박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펀자브(Punjab)와 벵갈(Bengal) 가정에서 태어나 페르시아계와 결혼한 자신의 경우를 들어 자살의 본질을 카스트 제도와 연결짓지 말라는 주장이다. 이라니 장관은 베물라 연구원이 유서에서 “아무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 없다”고 적은 구절을 들며 개인적 불행을 야당이 정치적으로 몰고 가려 한다고 꼬집었다.

사건 발생 이후 인도 정부와 여당은 줄곧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달리트와 非달리트 간 이슈’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실제 그 후 베물라 연구원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인도 사회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중대한 요소임을 반증한다.

카스트의 속박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어 현저히 약화돼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최상위 브라만 계급 출신이 오토릭샤(Auto-Rickshaw·力車의 일본식 발음) 운전사 릭샤왈라나 가정부로 일하는 등 과거엔 상상할 수 없는 허드렛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졌다.

하지만 이달 중순 10일 이상 계속된 북부 하리야나(Haryana)주 자트(Jat) 카스트 주민들이 일으킨 시위로 19명이 사망한 사태는 2000년 넘게 지속된 카스트 제도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집요한지 말해준다.

네루대학
인도 뉴델리 네루대학교(JNU) 학생들이 ‘반인도(Anti India)’ 선동 혐의로 카나이야 쿠마르(Kanhaiya Kumar) 학생동맹 회장이 구속된 데 대한 항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8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자트 주민들이 공무원 채용과 대학 입학에서 기타후진계급(Other Backward Classes·OBC)을 위한 할당 혜택을 자신들에게도 적용해달라고 주장하면서 벌인 시위 도중 다른 카스트에 대한 살인과 방화가 뒤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헌법이 달리트, 지정 카스트(SC), 지정 부족(ST), OBC 등에 대해 할당 혜택을 주도록 규정한 것 자체가 인도의 해묵은 사회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듯하다. 지난해 8월 15일 델리시 레드포드(Red Fort)성 광장에서 진행된 인도 독립기념식 연설에서 ‘팀 인디아(Team India)’을 35차례나 언급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카스트뿐 아니라 종교 인종 문화 지역 등으로 다양화된 인도 사회가 하나 인도 국민으로 단결해야 빈곤타파,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나의 국민’이란 한 전통적 정치공동체가 국민국가(Nation State)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개념이다.

모디 총리는 아예 ‘국가(국민) 만들기(Nation Buildin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전 세계 선진 산업국가들이 18세기 중·후반 이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겪었고 우리도 1970년대 본격적으로 경험한 ‘조국 근대화’ 담론과 실천이 떠오른다. 국기에 대한 맹세 암송과 경례, 국민교육헌장, 국어사랑 나라사랑, 새마을운동을 통한 근대적 국민의식 및 생활양식으로의 전환 등은 후발주자 대한민국이 뒤늦게 압축적으로 경험한 인류사의 근대체험이었다. 인도정부의 많은 구호와 시도에 어디서 본 듯한 강렬한 기시감(旣視感)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모디 총리가 전개하고 있는 ‘메이크(Make) 인 인디아’ ‘스킬(Skill) 인디아’ ‘클린(Clean) 인디아’ 등은 우리나라 1970년대의 ‘잘살아보세’ ‘과학입국’ 등의 슬로건이나 ‘동네 청소 및 교실 환경미화’가 초중등 교육에서 중요한 생활덕목으로 자리매김했던 시절의 기억을 연상시킨다. 근대적 생활양식을 보급하는 노력의 일환, ‘국민양성’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 전시회장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 뭄바이(Mumbai) 반드라 쿠를라(Bandra Kurla) 콤플렉스(Complex)에서 개최된 ‘메이크 인 인디아’ 주간 전시회장./사진=하만주 뉴델리(인도) 특파원
모디 총리를 ‘인도의 박정희’로 보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제기된 시각이다. 다만 현재로선 양자의 노선에 어슴푸레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될 뿐, 그 철저함을 비교해서 논하기엔 인도와 한국은 기본판이 워낙 다르다. 박정희식 근대화모델을 참조한다 해도 한반도의 반쪽 대한민국과 인도는 규모와 복잡성의 차원에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이 인도의 고민, 모디 정부의 고충이다. 그 핵심에 ‘국어의 부재’가 있다.

인도는 서유럽 주요국가,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 등의 경우와 달리 ‘단일언어=표준어’ 정착을 거치지 않았다. 국어가 형성되고 성숙하는 과정 속에 집단의 과거사가 ‘국사’로 재구성되고, 운명공동체·문화공동체로서의 동질감을 높이는 문학적 유산이 정리, 보급되는 길을 걸어오지 않은 것이다.

서유럽 근대화와 그것의 동아시아 버전인 일본 중국 한국 가운데 인도가 참조의 대상으로 한국을 주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동시에 그것이 인도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 변용되고 취사선택될 것인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인도는 과연 인류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근대화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어떤 변주(變奏)를 더할 것인가.

인도 사회 특유의 복잡성 특수성 때문인지 최근 모디 정부에게 초조함도 발견된다. 네루대 학생들이 카슈미르(Kashmir) 분리주의자 모하메드 아프잘 구루(Mohammad Afzal Guru)의 추도식을 개최한 것을 ‘안티 인디아(Anti India)’로 규정하고 학생회장을 구속한 것에 대해 학생 야당뿐 아니라 지식인들의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비정부적 내지 반정부적 입장을 반국가 반인도로 몰아간 감이 있고, ‘경제 올인’을 위한 강력한 행정력과 권위가 절실한 모디 정부의 오버액션이었다는 느낌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 등 모디 총리의 경제정책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출범 3주년을 맞이하는 모디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의 예를 좀 더 깊이 있게 통찰하면 분명 효과적으로 참고할 여지가 발견되리라는 기대를 버릴 수 없다. ‘스터디 코리아(Study Korea·한국을 연구하라)’, 인도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무조건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출신의 작은 나라가 산업화 민주화를 향해 걸어온 반세기의 피눈물, 영광과 좌절의 명암을 진지하게 살펴보라는 뜻이다. 인도가 우수한 한국학자를 키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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