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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왜 교훈을 얻지 못하나

[손수연의 오페라산책]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왜 교훈을 얻지 못하나

기사승인 2016. 11. 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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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 '맥베스', 비극은 진행형임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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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스’ 중 한 장면.
오페라 ‘맥베스’는 베르디의 초기작이자 셰익스피어 희곡을 소재로 한 오페라 가운데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리골레토’나 ‘라 트라비아타’보다 빨리 나온 이 작품이 뒤에 나온 오페라에 비해 완성도가 뒤지지 않는 것을 보면 원작인 셰익스피어 희곡에 대한 베르디의 이해가 얼마나 깊고 철저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 서울시오페라단이 연극 연출가 고선웅의 연출로 무대에 올린 ‘맥베스’는 권선징악의 개운함이 아니라 이 처참한 비극이 다시 반복될 것만 같은 찜찜한 감정을 안겨주며 막을 내렸다. 고선웅은 오페라 ‘맥베스’의 원형을 그다지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상징적인 소품과 장치를 통해 의도를 전달했다.

지난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맥베스’의 2막에 등장하는 둔카노왕은 연출에 따라 모습이 보이지 않기도 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인물들에게 하얀 꽃목걸이를 걸어 주는 등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여기서 왕좌를 의미하는 휠체어는 영광과 권위의 자리가 아니라 비틀린 욕망에 눈멀고 병든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앉는 자리임을 상징한다. 그는 죽은 직후에도 다시 등장해 파이프 담배연기를 뿜으며 맥베스에게 압박감을 줬으며 4막 피날레에서 승리의 함성 뒤편에 다시 모습을 보이며 서늘한 결말을 유도했다.

‘맥베스’는 극의 진행상 무대를 번잡스러울 정도로 자주 바꿔야하는 오페라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단순한 무대에 색깔과 배경영상, 몇 가지 소품만 바꿔가며 시공간의 변화를 영리하게 보여줬다. 특히 불안에 시달리던 맥베스 부부가 욕조 속에 앉아 안식을 얻는 2막에서 초점을 잃은 채 위태하게 비틀거리던 샹들리에의 그림자는 그들의 초조함을 가중시키는 효과적인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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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스’ 중 한 장면.
구자범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디 피니는 강한 개성이 돋보이는 매끄러운 연주로 젊은 베르디가 추구했던 ‘성악과 대등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반주부의 모습’을 구현했다. 특히 목관과 금관파트의 안정적인 기량이 인상적이었으며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되는 2막 피날레에서도 대규모 합창에 밀리지 않았다. 다만 사악하고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야할 마녀들의 합창이 벨칸토 오페라의 그것처럼 고운 라인을 형성한 것은 전주곡과 이어지는 이 부분에서 유독 느리게 진행된 오케스트라의 템포 탓도 있었을 것이다.

맥베스 역을 맡은 바리톤 양준모는 이날 독보적인 기량을 보여줬다. 1,2,3막에서도 야욕과 우유부단한 내면을 함께 가진 장군을 잘 표현하며 흔들림 없이 무대를 지킨 그는 4막의 아리아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를 강약과 완급을 탁월하게 조절해가며 가창과 기교, 표현력에서 흠잡을 데 없이 불러 큰 갈채를 받았다. 반면 맥베스부인 역의 소프라노 오미선은 화려한 고음과 역할에 녹아든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베르디가 요구한 간악한 욕망의 화신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때문에 이 작품의 백미인 맥베스부부의 이중창이 다소 맥 빠지게 들렸던 건 아쉬운 부분이다. 이밖에도 맥더프 역할의 테너 신동원, 방코우를 노래한 베이스바리톤 최영조 등 대부분의 출연진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모습으로 조화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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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맥베스’ 중 한 장면.
연출가 고선웅이 연극 ‘푸르른 날’에 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보여줬던 광기의 표출과 허무하게 남은 복수의 껍데기를 기억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비극은 언제나 진행형이지 완결이 되지는 못했다. 이번 ‘맥베스’도 마찬가지다. 맥베스를 멸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말콤왕자와 민중의 등 뒤에서 죽은 둔카노왕과 방코우, 마법의 여신 헤카테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대대손손 왕이 되리라던 방코우의 아들이 솟아오른다. 마녀들의 예언이 맞는다면 말콤왕자와 방코우의 아들은 훗날 왕좌를 두고 또 다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역사에서 우리는 왜 교훈을 얻지 못할까.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yonu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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