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어떤 인질극
2018. 11. 18 (일)
  1. 춘천
  2. 강릉
  3. 서울
  4. 인천
  5. 충주
  6. 대전
  7. 대구
  8. 전주
  9. 울산
  10. 광주
  11. 부산
  12. 제주

뉴델리 26.2℃

도쿄 15.9℃

베이징 11.3℃

자카르타 32.2℃

[칼럼] 어떤 인질극

기사승인 2018. 11. 08. 17:49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플러스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라인 공유하기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황석교수이황석교수이황석교수이황석교수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인질극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비밀은 반드시 아이러니와 딜레마적 상황을 연출한다는 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종종 공공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공리주의적 선택의 문제와 아무리 공공선을 위해서라도 소수의 희생은 부당하다는 인권의 문제가 대두된다. 정의에 대한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서로 부딪히게 되며 그 균열의 틈에서 관객들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빈 부분을 스스로 채우게 된다.

다른 한편, 인질극은 인질과 인질범의 관계에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사도마조히즘에 입각한 가학과 피학의 구조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서스펜스로 옥좨 극장의 아이러니라는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실제상황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인질과 인질범 사이에 묘한 감정적 교류가 발생하는 상황이 종종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인질극에서 벌어진 인질들의 특이한 행동 양식에 대해 범죄 심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범들이 인질을 잡고 공권력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인질들이 인질범과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는 인질범이 자신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는 심리적 기저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나아가 그들은 인질범이 붙잡혀 법정에 선 상황에서조차 피고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이 피해자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때 자주 발생한다. 이 때 피해자는 가해자의 마음 상태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인질범들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폭력성을 합리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이 있었다.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유명한 ‘지강헌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탈옥 후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된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마지막 외침도 전 국민에 회자되었지만, 경찰과의 대치상황에서 격렬하게 저항하는 지강헌을 온몸으로 막아선 인질 가족들의 행동은 매우 인상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총과 흉기를 들고 자해를 하는 흉악범을 잡고 “아저씨 이러지 말고 자수하세요.” 라며 말리는 그 가족들의 모습은 용감함을 넘어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질범 일당은 인질 가족들에게 해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었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는 증언으로 볼 때 다른 스톡홀름 신드롬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당시 국민들에겐 뉴스로 생중계된 인질범을 말리던 그 가족의 모습은 단순히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행동 양식이라기보다는 분명하게 어떤 ‘공감과 연민의 정서’를 품은 행동으로 읽혔다.

사건이 있은 후, 뉴스 보도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미결수였던 범인들은 사회보호법이라는 미명하에 ‘보호감호’라는 제도로 범죄에 사실에 대해 7년이라는 죄과를 치른 후에도 예방범죄 차원에서 10년 이상을 추가로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죄과에 비해 그 범죄가 단순 절도(560만원 상당) 등과 같은 비교적 경미한 범죄였음에도 말이다. 5공화국의 권력자였던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 수십억 원을 횡령한 사건에선 당시 사법부가 피고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지만, 실제 2년 정도 실형을 살다 풀려난 것과 비교된다.

지강헌의 인질극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홀리데이’다. 그룹 비지스(Bee Gees)의 명곡 ‘홀리데이’와 같은 제목을 단 것은 실제 사건에서 지강헌이 죽기 직전에 듣던 음악이 홀리데이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그 울림을 더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 전체적으로 신파조의 연기와 선악 구도로 인해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필자는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에 대해 논하기보다 실제 사건을 전하기 위해 이 영화를 소개했는데 적어도 영화에 재현된 인질 가족들의 모습은 사건 당시 매스컴에 생중계된 사실과 근접해 보였다. 영화 홀리데이의 감독도 영화적 재현을 위해 뉴스 기록 영상으로 남겨진 지강헌의 마지막과 인질 가족들의 모습을 여러 번 본 듯하다.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그 가족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리얼리티가 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2018년 현재,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인질극을 접하고 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보육교사들이 재단의 비리로 인해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국정감사에 나온 비리 유치원 재단 관계자들의 궤변은 우리를 분노케 한다. 지난 시절 우리는 오랫동안 유치원에서 대정부 행동을 할 때마다 한유총의 논리에 손들어 주었다. 아이들이 인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야만 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사립유치원들이 집단행동이라도 하면 당장 생업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진위와 상관없이 무조건 유치원의 논리에 힘을 실어 주었고, 그로 인해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도를 넘어 버렸다. 그간 유치원의 비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유치원의 뜻에 발맞춰준 원아들의 부모들은 공감과 연대의 정서로 유치원을 옹호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야만 생계가 보장되는 생존의 프레임에서 사립 유치원재단과 동일시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것 같다. 공정성에 각성된 젊은 부모들은 이제 뿔이 났다. 유치원의 폐원 결정으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못해 생업에 지장이 있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폐원 운운하며 아이들을 인질로 협박하는 불공정한 집단의 요구를 더 이상 방관할 기세가 아닌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는 ‘맹목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볼모로 겪고 있는 차원이 다른 인질극에선 맹목적인 인질과 인질범의 관계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


댓글
기사 의견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