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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이미 열린 판도라 상자를 닫을 수 있는 방법

[기자의눈] 이미 열린 판도라 상자를 닫을 수 있는 방법

기사승인 2018. 12. 0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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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니콜 감독이 1997년 내놓은 공상과학(SF) 영화 ‘가타카’에서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나는 세상에 산다. 부모가 유전자를 조작해 뛰어난 지능과 외모를 갖춘 ‘맞춤형 아기’를 낳는 것. 자연 임신으로 우성과 열성 DNA가 섞인 인간은 우주비행사 같은 선망의 직업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1932년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선 인공 수정된 태아를 지능·신체 능력에 따라 최상위 알파 계급부터 최하위 엡실론 계급 순으로 나눈다. 엡실론은 약물 투여를 통해 지성이 제거된다. 청소·하수처리 등 단순 노동만 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들이 처한 상황에 반감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미래가 중국에서 현실이 됐다. 인간 배아 속 유전자를 조작한 뒤 자궁에 착상시켜 키운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중국인 과학자 허젠쿠이가 ‘에이즈 아빠-건강한 엄마’ 부부 8쌍을 대상으로 에이즈 유발 유전자를 잘라내 출산을 시도하는 실험을 했고, 이 중 한 부부에게서 쌍둥이 여자아이 2명이 태어났다.

맞춤형 아기 출산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긴 하지만 언젠가 있을 일이기도 하다. 출산만 안 될 뿐 인간 배아 실험은 허용되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이 2015년 미국 유전자 편집 국제회의에서 그렇게 정했다. 허젠쿠이의 변은 이렇다. 치명적인 유전자를 가진 부모와 병에 걸릴 가능성을 안고 태어나는 아기를 도울 방법이 있는데, 왜 안 쓰냐는 것이다. 40년 전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각계의 우려는 존재했다. 이번 ‘맞춤형 아기’ 출산도 당장은 비난받을 일이지만 인류에 도움될 일인지는 추후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다. 사회적 합의보다 과학이 한 발 앞서가면 위험이 따른다. 인간 배아 연구는 질병 해방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한 인간의 생애에 영향을 끼칠 출생에 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중국 과학자 122명은 성명을 내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며 “너무 늦기 전에 그것을 닫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이미 열린 판도라 상자를 다시 닫을 수 있는 방법, 바로 사회적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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