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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빈민들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베트남 전쟁’

베트남 빈민들에겐 ‘아직 끝나지 않은 베트남 전쟁’

기사승인 2019. 06. 0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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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전된 이후 4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베트남 꽝찌성(省)의 빈민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과 베트남 공산군이 가장 치열하게 싸운 지역 가운데 한 곳인 꽝찌성에서는 지금도 불발 상태로 남아있는 전쟁잔여폭발물(ERW·explosive remnants of war)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고철을 주워다 파는 가난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9일 보도에 따르면 꽝찌성 깜로 지역에 사는 응우옌 쑤언 동(74) 씨는 매일 아침 6시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마을 밖으로 향한다. 집에서 직접 만든 금속탐지기를 자전거에 싣고 20km를 달려 숲이 우거진 지역으로 간 그는 베트남 전쟁이 남긴 고철을 찾기 시작한다. 그는 맨손으로 땅 밑에 묻힌 박격포탄부터 탄피, 대형폭탄에서 떨어져 나온 금속조각 등을 찾아낸다. 오후 2시가 돼서야 동씨는 10kg 가량의 고철을 등에 지고 고철상에게로 향한다.

동씨는 2008년 폭발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는 “그래도 나는 하루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게 됐으니 운이 좋았다”면서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 며느리, 손주 등 10명을 부양하고 있다. 가끔은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아들과 고철을 주으러 함께 가기도 한다.

고철 줍기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risk low returns·고위험 저수익)’이다. 고철 10kg을 모아가도 4만동(약 2000원) 밖에 받지 못한다. 쌀 15kg(약 2500원)도 사기 어려운 금액. 하지만 감수해야 하는 위험도는 높다. 지역 시민단체인 꽝찌지뢰행동센터(Quang Tri Mine Action Centre)에 따르면 베트남전 종전 이후 현재까지 꽝찌 지방에서 전쟁잔여폭발물이 폭발하면서 사망한 사람의 수는 8500여명. 이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고철을 모으던 중 줍거나 밟은 폭발물이 터지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에 위치한 폭탄지뢰제거기술센터에 따르면 꽝찌성은 베트남전의 참화가 가장 참혹하게 할퀴고 간 지역 중 하나다. 이 지역 47만4600ha 중 80% 이상이 전쟁잔여폭발물로 오염돼 있다고 센터는 설명했다. 전쟁잔여폭발물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40만개가 넘는 불발탄들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베트남 정부 지원 지뢰제거기관인 프로젝트 리뉴는 밝혔다.

고철을 모으는 빈민들이 폭발물 사고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잦은 이유는 이들이 사용하는 금속탐지기가 열악하기 때문. 프로젝트 리뉴의 폭발물처리반이 호주나 독일에서 수입한 고품질의 금속탐지기를 사용하는 반면 고철을 줍는 가난한 이들은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수입산 금속탐지기는 엄두도 못내고 집에서 엉터리로 만든 금속탐지기를 사용한다. 프로젝트 리뉴는 “그들의 금속탐지기는 우리가 쓰는 것 만큼 성능이 좋거나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탐지를 제대로 하지 못해 폭발물을 밟는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철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위험하다는 점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꽝찌성의 공식적인 빈곤율은 2016년 9.1%로 베트남 전체 평균에 비해 3.3%포인트 높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웃들이 고철 수집을 하다 죽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동씨가 사는 마을 250가구 중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상당수가 전쟁잔여폭발물을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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