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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재판!] 대법 “범죄 이용 목적 계좌 개설…금융기관 업무방해는 아냐”

[오늘, 이 재판!] 대법 “범죄 이용 목적 계좌 개설…금융기관 업무방해는 아냐”

기사승인 2023. 09.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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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범죄 이용될 것 알면서도 계좌개설해 타인 대여
업무방해·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1심서 징역형
法 "계좌개설 불충분한 심사가 원인" 업무방해 무죄
대법원4
대법원 전경/박성일 기자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금융계좌를 개설해 타인에게 제공했더라도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방해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금융기관 담당자가 신청자가 작성한 허위 정보를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확인조치가 있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20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업무방해 및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업무방해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하는 한편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부분에 관해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성명불상자 B씨로부터 "A 명의로 은행 계좌를 개설해 주면 매월 일정한 금액을 챙겨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2개의 유령 법인을 만든 다음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가장해 2020년 8월경 총 4회에 걸쳐 금융기관의 계좌 개설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A씨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대가를 약속받고' 체크카드와 OTP기기(이하 접근매체)를 빌려주는 행위를 한 만큼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 모두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대가를 약속받고' 접근매체를 대여·보관한 것은 유죄로 판단했지만 금융기관에 대한 업무방해 및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매체를 대여·보관한 행위는 무죄로 판단해 징역 1년으로 감형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허위의 답변을 기재하고 관련 서류를 제출해 이를 믿은 담당직원들이 계좌를 개설해 주었더라고 이 같은 행위로 금융기관들의 계좌 개설업무가 방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공소사실에는 A씨가 인식한 '범죄'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실제 범죄에 직접 사용되거나 범죄의 수행에 실질적으로 기여함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전자금융거래법위반도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의 업무방해 부분은 받아들였으나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우선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이용할 목적으로 한 계좌개설 행위에 대해 "(계좌개설) 업무담당자가 신청인이 제출한 허위 신청사유나 허위 소명자료를 가볍게 믿고 수용했다면 이는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서 위계에 위한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판결했다.

이어 대법원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에 대해 "접근매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이용될 것을 인식했다면 충분하고 범죄의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되고, 거래 상대방이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또는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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