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아 옛날이여, 톈안먼 사태 주역들 뒷방 노인 신세

아 옛날이여, 톈안먼 사태 주역들 뒷방 노인 신세

기사승인 2024. 02. 19. 19:4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35년 전 톈안먼 사태는 반중 인사들에게는 기념비적 사건
시위 주도자들은 거의 영웅, 하지만 현재 상황은 비참
우얼카이시도 50대 중반 나이에 쓰러지는 횡액 직면
왕단과 우얼카이시
톈안먼 사태 당시 제1호, 2호 수배자였던 왕단(왼쪽)과 우얼카이시. 현재 처해진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 주변인들의 기억에서도 점차 지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중국어 매체 보쉰(博訊).
35년 전인 1989년 6월 4일 발생한 이른바 톈안먼(天安門) 유혈 사태의 주역들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만큼 지금은 완전 뒷방 노인들처럼 잊혀져가고 있다.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를 외쳐야 할 지경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톈안먼 사태는 지금의 웬만한 중국의 30대 이하 젊은이들에게는 완전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나 사실 세계적으로도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내외의 반체제 인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해야 한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중국 민주화 운동이 이전이나 이후에 없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진짜 이렇게 단언해도 좋다.

당연히 당시 시위 주도자들은 거의 영웅이 되다시피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로 망명한 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이들 중 일부는 현재 여전히 반중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망명객들은 상황이 그다지 좋다고 하기 어렵다.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 어떻게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근황을 살펴보면 이 단정이 괜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사태가 진입된 후 학생 지도부 21명 중에서 최초의 수배자가 됐던 베이징대 학생 왕단(王丹·55)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반혁명 선동죄 등으로 두 차례에 거쳐 7년 동안 복역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까지는 아주 좋았다. 2009년부터 대만과 미국을 왕래하면서 대학에서 교편을 잡거나 중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촉구하는 집회 및 모임을 주도해온 것 역시 높이 평가해줄 만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초 그에게는 완전 악몽 같은 일이 발생한다. 리위안쥔(李援軍)이라는 여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9년을 참아온 끝에 왕단의 성폭행 미수 행위를 고발하기로 했다. 2014년 미국에 머물렀을 때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그를 고발하는 '미투(나도 당했다)' 주장을 편 것이다. 졸지에 인생이 망가질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해도 좋았다. 실제로도 이후에는 당시 충격 때문인 듯 활동이 상당히 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왕과 함께 시위를 주도한 제2호 수배자인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출신의 우얼카이시(吾爾開希·56)는 더욱 비참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한 다음 대만에 완전 정착해 그럭저럭 괜찮게 생활했으나 1개월여 전 졸도하면서 크게 다치는 횡액을 당했다. 결국 1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 강도 높은 치료를 받아야 했다. 향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것이 대만 내 중국 커뮤니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clip20240219190845
1989년 시위 당시의 차이링(왼쪽). 현재 중년의 차이링은 상당히 많이 망가졌다고 해도 좋다./보쉰.
이외에 여학생 지도자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차이링(柴玲·56)도 요즘 썩 유쾌한 생활을 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으로 탈출해 하버드대 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한때 금융회사에서 일하면서 나름 망명객 생활을 잘 하는 듯했으나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라는 횡액을 겪었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이혼과 중국인 목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인해 완전히 인생이 망가졌다고 할 수 있다. 투사인 그녀를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이제는 별로 많지 않다.

사태 당시 맨 몸으로 탱크를 막아서서 항쟁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왕웨이린(王維林·54), 청화(淸華)대 물리학과 출신 저우펑샤오(周鋒銷·57), 베이징사범대 심리학과 학생 량징툰(梁敬暾·55)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만 알려지고 있다. 또 중앙민족대학 출신인 왕정윈(王正雲·56)과 왕즈신(王治新·56), 장즈칭(張志淸·60) 등 3명은 행방불명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학생은 아니었으나 사태에 깊숙하게 개입했던 반체제 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 당국의 강경 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의 비서 바오퉁, 사태 희생자 유가족들로 구성된 '톈안먼 어머니회' 창설자 딩쯔린(丁子霖) 등은 모두 타계, 역사 속 주인공들이 됐다. 중국에서는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확실히 톈안먼 사태의 주역들에게도 세월이 무심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