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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의 문화路] 땅에 쓴 한편의 시...‘조경대모’의 아름다운 정원

[전혜원의 문화路] 땅에 쓴 한편의 시...‘조경대모’의 아름다운 정원

기사승인 2024. 04. 0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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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선: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展
예술의 전당·코엑스 등 작업 50년
국립현대미술관서 선별해 전시
설계 프로젝트 사진·영상 배치
이번 전시 위해 직접 정원 조성
정영선 전시 전경2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뒷마당인 종친부마당에 조성된 정원. 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토개발기술사인 정영선(83)이 자신의 작업 5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를 위해 직접 이곳 정원을 조성했다./사진=전혜원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종친부마당과 전시마당에 소담한 정원이 마련됐다. 보물 제2151호인 종친부의 경근당과 옥첩당 앞마당이자 미술관의 뒷마당인 종친부마당에서는 결코 자신을 뽐내지 않고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자그마한 꽃과 나무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양치식물과 야생화 등 우리 고유의 자생식물이 심어진 전시마당도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인왕산 풍경은 덤이다.

전시마당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내 조성된 '전시마당 정원'./국립현대미술관
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토개발기술사인 정영선(83)이 자신의 작업 5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를 위해 직접 이곳 정원을 조성했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시골 들길 풍경의 한 자락을 뚝 따와서 앉혔다"고 말했다.

"특별히 디자인을 예쁘게 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그저 우리 산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갈수록 꽃이 피고 경치가 좋아질 겁니다. 한국의 산천은 하느님이 만드신 정원이라 천국이 따로 없어요. 마음대로 난개발을 하고 있는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정영선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사진=전혜원 기자
정영선은 우리에게 익숙한 큰 건축물들의 조경을 도맡아 해 왔다. 1980년대부터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와 아시아 공원, 서울 예술의전당,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대전 엑스포 박람회장,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한국종합무역센터(현 코엑스)의 조경을 설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서울식물원, 선유도공원은 물론 양재천과 석파정 복원, 탑골공원 재조성(2001년)과 광화문광장 설계(2007년)도 맡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정영선의 작업세계를 총망라한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전을 마련했다. 지난 5일 개막한 전시는 정영선의 작업 300여개 가운데 대표성이 있는 60여 개를 선별해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투명한 바닥 아래 조경 설계 프로젝트 자료가 배치돼 관람객이 자유롭게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벽면에는 조경이 완성된 모습을 찍은 사진이 걸렸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조경 모습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정영선 전시 전경 내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 전경./사진=전혜원 기자
호암미술관 희원을 시작으로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과 한국 자생종 식물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는 정영선은 한국 전통식 조경이 가진 매력에 관해 설파했다.

"유홍준 선생의 글을 보면 많이 나오는 말인데, 백제시대부터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가 우리나라 정원을 만드는 태도입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 정원은 주변 경관을 내 것으로 끌어들이는 지혜를 갖고 있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어요. 특히 정자는 좋은 경치를 살며시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굉장히 섬세하고 세련된 문화죠. 아무리 얘기해도 끝이 없어요."

호암미술관 희원 전경, 2002년. 사진 양해남.
호암미술관 희원 전경./국립현대미술관
정영선은 1961년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농과대학에 입학했고 197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이 생기자 1회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뒤이어 1980년 국내에서 여성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여성 기업인이 드물던 1987년 조경설계업체 서안을 설립해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라고 말하는 정영선은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왔으며 조경 설계를 할 때도 시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그는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어준 이로 시인 박목월을 꼽았다.

"박목월 선생은 제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저를 어린 시절부터 이끌어 주셨어요. 대구 개성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계시면서 제 시를 봐주시기도 하고, 서울대 농대 입학을 반대한 부모님을 설득시켜 주기도 하셨죠. 제가 주부생활 기자로 일할 때에도 시인들이 즐겨 찾는 다방에 불러 제 근황을 물어보곤 하셨어요.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신 일등공신이십니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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