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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儒商] “세상밖으로”… 유학서 움튼 호암의 도전정신

[한국의 儒商] “세상밖으로”… 유학서 움튼 호암의 도전정신

기사승인 2016. 03. 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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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 (4)
부친 '반대의 벽'에도 용기 발휘
중교리서 진주·서울·일본으로
다양한 경험 체득하며 안목 넓혀
'글로벌 기업 경영'의 초석 마련

이병철 회장의 고향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는 의령읍에서 약 8㎞ 정도 떨어진 두메산골로 당시 외부와는 거의 단절되어 있었던 지역이었다. 그는 11살이 되었을 때 서당을 그만 두고 누님 댁이 있는 진주의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중교리의 '우물 안 개구리'가 진주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坎井之蛙]'는 중국 전국시대의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 '외부세계를 접하지 못하여 자기가 보고 들은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견문이 좁고 편견에 얽매인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여름방학 때 고향에 돌아와서는 도회지의 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겼다. 진주와 비교하면 고향인 중교리가 너무 좁고 답답한 곳으로 느꼈다.


중교리의 생활을 그는 이렇게 비유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서는 노나라가 작다고 했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했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맹자』권13 「진심」상》.


그는 제종형의 서울생활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곳을 동경하여 유학을 꿈꿨다. 그래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허락을 얻은 후 서울의 수송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의 보통학교의 성적은 50명 중 35등에서 40등이었다. 여기서도 그는 보통학교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아버지에게 또다시 "이제 보통학교에서 배울 것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보통학교의 과정을 단기간에 마무리 짓는 속성과가 있는 중학에 옮기고 싶습니다"고 하여 중동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세 때인 중동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또다시 일본유학을 결심한다.


그의 부친은 이번에는 "사물은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은 끝과 시작이 있다"(物有本末, 事有始終,《『大學』「綱領」》)며 크게 꾸중했다. 선후를 구분하고 질서 있게 하라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마침내 부친을 설득하여 일본유학을 허락받았다. 이듬해인 1930년 4월 일본 도쿄에 있는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공부에 몰두했고, 강의에도 빠짐없이 나갔다. 또한 마르크스나 앵겔스의 책도 독파했다. 2학년 말에 각기병에 걸려 그해 가을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진주의 지수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수송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다시 중동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의 와세다대학을 다녔으나 또다시 중퇴했다. 그에게는 졸업증서가 한 장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공자가 동산과 태산에서 세상을 본 바대로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러 차례 부친을 설득하고 진주로, 서울로, 일본 도쿄로 유학을 하였다.


맹자는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여간한 물은 물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에게는 여간한 말은 말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故觀於海者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孟』권13 「盡心上」》)고 했다. 큰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시냇물이나 호수를 이야기하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에게는 좋은 말이 먹히기 어렵다는 뜻이다. 즉 서울과 도쿄를 본 사람에게 진주를 도시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서울과 도쿄에서 유학하면서 깊은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체득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크게 넓혔으며, 이로써 인생의 큰 지혜를 쌓아갈 수 있었다. 그는 13살 어린 나이에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유학을 갔고, 19세에 도쿄로 유학을 가는 등 끝까지 자기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 때 이미 백규가 말하는 '결단할 때 결단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정치가 핍립 체스터필드는 『아들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써서 자기 아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예절, 인간관계의 비결, 독서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 등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지혜를 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두메산골인 의령 중교리에서 자란 이병철 회장은 그의 말대로 서당이나 학교시절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친을 설득하고 자기의 뜻에 따라 서울과 도쿄로 유학하고 돌아와 세계적인 기업가가 되었는데 여기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본 것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자녀들에게 학교 성적만 강조해서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는커녕 '우물 안의 개구리'로 키우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 자녀들이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여 안목과 견문, 지혜와 용기를 얻게 하는 게 좋은 학교성적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그들이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길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이제홍 태성회계법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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