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철부지 ‘위민크로스 DMZ’, 날조된 ‘김일성항일투쟁사’ 그대로 믿어

철부지 ‘위민크로스 DMZ’, 날조된 ‘김일성항일투쟁사’ 그대로 믿어

기사승인 2015. 06. 10. 06: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광복 70년,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종북의 뿌리 ‘김일성 바로 알기’ 11편

지난 5월 21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이 평양의 ‘만경대(김일성 생가)’를 방문한 소식을 전하면서 “대표단 단원 메어리드 매과이어와 재미동포 안은희(크리스틴 안) 등이 김일성의 혁명적 생애에 대해 알게 됐으며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특히 노동신문은 실질적으로 이 행사를 이끈 재미동포 안은희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재미동포 안은희는 여러 번에 걸쳐 만경대를 방문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수한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어 한평생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었다. 그이께서 겨레와 인류를 위해 쌓으신 수많은 업적 중의 특기할 업적은 일제를 때려 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신 것이다” ’

안씨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 일제를 때려 부시고 조국을 해방한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본지가 ‘종북의 뿌리 김일성 바로알기’ 연재에서 계속 밝히듯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 덩어리다. 이 방대한 거짓말들은 일일이 거론하기에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이 거짓말 시리즈의 핵심은 대략 4가지다. 즉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고 동남 만주에서 10만여회 전투를 백전 백승하여 1945년 8·15에 조국을 해방시켰다. △10만여회 전투의 대표적 승리가 ‘보천보 전투’다. △김일성은 조국광복회를 조직하여 수십만 회원이 조국 광복의 첨병이 되도록 했다. △김일성은 영생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안하여 그 기치 밑에 자주 자력의 혁명노선을 영도해 왔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1일자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를 실질적으로 이끈 재미동포 안씨는 이 거짓말 시리즈의 첫 번째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이 이끌었다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하는 조선인 공산주의 무장부대는 그 조직자와 인솔자가 누구든 간에 1930년대와 1940년대 만주의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1930년대에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국제 코민테른의 ‘일국(一國) 일당(一黨)’ 원칙에 따라 모두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각급 조직에 통합되어 있었다. 한인들의 독자적인 조직은 어느 곳에도 있을 수가 없었다. 있었다면 그것은 국제공산당의 원칙을 위반하는 무리로서 국제공산당과 중국 공산당이 가만두지 않았다.

한인공산주의자들이 무장활동을 하자면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의 무장조직인 동북인민혁명군에 가입해야 했다. 사실 많은 한인들이 여기에 가입했다.

1931년 9.18 사변 이후 만주 지역이 일제의 강점 아래 들어가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는 무력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남만주의 이통현(伊通縣) 영성자(營城子)에서 1932년 5월에 한국과 중국인 70명으로 동북의용군이 조직되었는데 대장은 한인 안기창(安基昌)이었다.

이 동북의용군이 1932년 10월에는 병력이 70명에서 230명으로 늘어나고 중국공산당 본부로부터 파견된 이홍광(李紅光)이 반석현(盤石縣)에서 이 부대를 남만유격대(南滿遊擊隊)로 개편했다. 이홍광은 한인 여성으로 만주의 중국공산당 유격대 역사에서 특이한 존재였다.

1933년 1월에 중국 공산당은 만주성위에 항일유격투쟁을 지시했다. 그래서 조직된 것이 동북인민혁명군이다. 동북인민혁명군의 첫 번째 부대는 이홍광의 남만유격대를 중심으로 반석현에서 1933년 9월 18일에 결성된 동북인민혁명군 제 1군 제 1사다.

동북인민혁명군의 제 1군장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이고 제 1사장은 이홍광, 병력은 720명이었다. 제 1군에 제 2사가 생긴 것은 1934년 11월이다. 제 1군의 제1사와 2사는 역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남만특위의 정치적 지휘 아래 있었다.

동북인민혁명군 제 2군은 동만주에서 발족했다. 동만주는 1930년 ‘5·3 간도폭동사건’으로 공산당 조직이 괴멸상태에 빠졌는데 1931년 9.18 만주사변 후에 차츰 조직이 되살아나서 각지에서 유격대 조직이 진행됐다.

1933년 12월에 동만 유격대의 총 숫자가 565명에 이르렀을 때, 이 중 중국인이 단 16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한인이었다. 따라서 유격대 총대장도 한인인 주진(朱鎭)이었다.

이 유격대를 기초로 1934년 3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 2군 제 1사가 연길현(延吉縣)에서 결성됐다. 제 2군장은 중국인 왕덕태(王德泰), 제 1사장은 한인인 주진이었다. 이 해 5월 30일에는 제 2군에 제 2사가 생겼다. 제 2군의 제 1사와 2사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동만특위의 정치적 지휘 아래 있었다.

S28BW-415031817380
중국 하얼빈의 흑룡강성 박물관에서 1930년대 만주지역의 한인 항일무장투쟁을 설명한 전시물. 당시 만주지역의 공산주의 항일 무장투쟁은 모두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고 있었으나 중국 공산당의 기록에는 김일성 주석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1930년대의 만주지역의 한인 공산주의 항일무장투쟁사다.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을 이끈 재미동포 안씨가 만경대에서 본 ‘1932년 4월 25일에 김일성 주석이 최초의 항일 유격대를 안도현(安圖縣)에서 결성했다’는 이야기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1932년 5월 한인 안기창이 동북의용군이란 항일유격대를 결성한 일은 있었다. 또 동만주에서는 주진이라는 한인 항일유격대 대장이 있었다. 북한에서는 1934년 3월에 김일성 주석이 항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족시켰다고 하나 그런 일은 없었다. 남만주의 항일유격대는 이홍광이 1933년 9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 1군 제 1사로 만들었다.

동만주의 항일 유격대는 주진에 의해 1934년 3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 2군 제 1사로 된 사실이 있을 뿐이다.

북한은 동북인민혁명군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바꾸어 놓고 안기창·이홍광·주진 등이 한 일을 도용해서 김일성 주석의 경력으로 갖다 붙여 놓고 있다. 지난 5월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이 북한의 만경대에서 본 역사는 모두 이런 ‘거짓의 역사’였다.

당시 한인으로서 1930년대에 만주에서 공산유격대에 가담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이 동북인민혁명군에 가담했어야 하지 딴 도리가 없었다. 사실은 김일성 주석도 이 동북인민혁명군에 가담했던 사람이다. 물론 그는 대장이 아니라 일개 대원 수준 이었다.

1945년 8·15 직후에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 나타났을 때 그는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단 그 때도 동북인민혁명군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는 거짓말은 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1952년 공식 발표 때부터는 엉뚱하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 대표단은 내년에는 한국으로 와서 남에서 북으로 DMZ를 종단하겠다고 천명했다. 이것이 성사된다면 내년에도 이들은 북한의 만경대를 방문할 것이다.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 대표단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씨와 미국의 여성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저명한 국제 인권운동가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이 내년에도 만경대를 방문한다면 그 때까지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사가 모두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학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들은 국제적인 놀림거리를 면할 수 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