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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억만장자가 꿈인데 아빠가 돈을 못 벌어요”

[칼럼] “억만장자가 꿈인데 아빠가 돈을 못 벌어요”

기사승인 2016. 01. 1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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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환 대기자 칼럼
남성환대기자새사진1

 한 젊은이에게 질문을 했다.
 "젊은이, 장래 희망이 뭔가?"
 "억만장자요." 
 "그래? 꿈이 대단하네." 
 "그런데 큰 걱정이 있어요." 
 "큰 걱정이 뭔데?" 
 "아빠가 돈을 못 벌어 제 꿈이 이뤄질지 모르겠어요."  
 
요즘 젊은 세대의 부에 대한 생각을 잘 나타낸 우스운 얘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그냥 웃어넘길 얘기가 아니다. 큰 부자는 되고 싶은데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겠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 부자되겠다'는 게 아니라 부모의 손을 빌려 재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약간 씁쓸하다. 


마침 블룸버그가 세계 400대 부호에 대한 자료를 내놨다. 400대 부호 가운데 65%인 259명이 자수성가 부호였다. 한국은 400대 부호에 5명이 들어갔는데 모두 상속부호로 나타났다. 미국은 125명 중 89명, 중국은 29명 중 28명이 창업부호였다. 러시아 18명, 일본 5명 모두 자수성가 부호였다.


1위부터 10위까지 대부분 창업부호였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자라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텔맥스텔레콤의 카를로스 슬림, 코크인더스트리의 데이비드 코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의 래리 페이지,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 바로 그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이건희 삼성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400위 안에 들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상속부자로 분류됐다. 한국에 상속부자가 많다는 것은 다 아는 일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세계 400대 부호가 발표된 날 언론은'우리나라에는 왜 창업부호가 없느냐'는 식으로 기사를 많이 썼다. 상속부호를 은근히 낮추고, 창업부호가 격이 더 높고 존경심이 더하다는 투의 논조였다.    


상속부자를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상속부자는 부모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고 자녀가 재산을 물려받아 잘 유지 보존할 때만 가능하다. 부모가 넘겨준 재산을 자식이 까먹지 않고 보존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창업으로 부호가 되는 것도 능력이지만 부모의 재산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큰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흔히 '한국은 새로운 부호가 탄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기업이 모든 분야를 다 하고 있어 웬만한 기술이나 자본력으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룹 계열사 혹은 관련 기업끼리 서로 밀어주기 때문에 제3자에게 문이 좁은 것은 사실이다.


A그룹에서 대형 토목공사를 한다고 하자. 우선 그룹 산하 건설사를 주축으로 철강, 기름,  시멘트, 건자재, 택배 등 거의 모든 걸 A그룹과 관련된 회사가 하는 경우가 많다. A그룹과 관계없는 기업이 들어가 일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A그룹은 힘 들이지 않고 부호의 길로 접어들지만 창업자에게는 절벽일 뿐이다.


자금 부족은 창업자에게는 가장 큰 악재다. 창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금융지원이다. 하지만 기술과 패기만 가지고 창업에 뛰어든 사람에게 매출실적과 담보를 가져오라고 한다. 이제 창업한 사람에게 무슨 실적을 요구하고, 담보를 요구한단 말인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기술 역시 문제다. 창업자는 독특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확보한 기술이 대기업의 수중에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과의 제휴를 원해 기술설명을 하면 사업 제휴는 거부당하고, 기술만 도용당하거나 빼앗긴다고 푸념을 많이 한다. 

조급증은 더 큰 장애물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자금을 투입해 상업화까지 하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돈을 대주면서 당장 수익을 올리길 바라고 있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로 낙인을 찍는다. 번갯불에 콩을 튀겨 먹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자가 부호의 대열에 합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국내 창업 부호는 네이버, 카카오, 한미약품 등 몇몇에 불과하다. 우리의 기업풍토에서 몇 개라도 자수성가한 부호가 나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창업이든 상속이든 부호는 모두가 수고와 땀을 통해 이룬 결과다. 상속부호는 부를 확대 재생산해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창업부호는 맨땅에 머리를 박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에 모두가 훌륭하다. 세습부호, 창업부호 따지지 말고 400대 부호에 10명, 20명, 30명 그 이상 한국인의 이름이 올라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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