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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불타는 분홍색 봄 화전과 두견주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불타는 분홍색 봄 화전과 두견주

기사승인 2014. 03.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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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회사는 개인주택을 개조한 2층집입니다. 담도 있고, 마당도 있지요. 출근길에 보니 야트막한 담 너머 이웃집 정원에 빨갛게 진달래가 멍울져서 소담스러운 얼굴을 빼쭉히 내밀고 있습니다. 세상에, 봄입니다. 이제 진달래가 산에, 들에 지천으로 피겠지요. 사무실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담 너머 진달래를 들여다봅니다. 멀리 타지에 나갔다가, 아주 아주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변하지 않은 형님이나 누나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행입니다. 어쩌면 이리 딱 그렇게 보고싶었던 그대로일까요.


진달래는 두견화(杜鵑花)로도 부르는데, 두견새가 봄이 되면 밤낮으로 슬피우는데, 특히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우짖는다하고, 한 번 우짖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 해서 그리 부른답니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두견새가 한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가지씩 핀다 (一聲催得一枝開)"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시절, 봄이 되면 방과후에 학교 뒷 산에 올라 진달래를 따 먹고는 했습니다. 약간 시큼한, 수줍으면서 향기나는 맛. 조금은 쓰고 조금은 떫은 맛이었지요. 세월이 훌쩍 흐르고, 기숙사 앞 진달래 핀 공터에 앉아, 대학생인 저는 선배들과 무슨 이야기를 그리 많이 나누었던걸까요. 아니, 인문대 앞 잔디밭이었던가요. 잔디밭에 누워 올려본 파란 하늘, 흰 구름, 그때 피었던 진달래는 유난히 붉은 빛이었는데요.


우리 민족은 진달래와 함께 살아온 민족입니다. 옛날 이떄쯤이면 우리 조상들은 계곡에 솥을 걸고, 진달래를 따다가 꽃지짐, 화전(花煎)을 부쳐 먹었는데, 일년 내 고생하는 아녀자들을 위한 행사였답니다. 작년에 제가 한 번 화전을 해서 먹어보니,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닙니다만, 진달래의 고운 색깔과 찹쌀가루의 말간 색이 잘 어우러져서 음식에 꽃이 핀 것 같더군요. 봄 흥취에 아주 그만이고 그 풍류가 근사하고 멋있는 음식입니다.


옛 기록에 보면 보릿고개를 넘을 때 먹을 것 없는 서민들이 많이 따먹었다 합니다. 꽃을 먹을 수 있어서, 참꽃이라 불렀습니다. 진달래와 비슷하지만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이라 불렀지요. 진달래도 꽃술부분에 약간의 독성이 있어,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수도 있답니다. 진달래는 꽃이 먼저, 철쭉은 잎이 먼저 나니, 잘 기억하시면 헷갈리지 않습니다.


진달래꽃은 전국의 산이든 들이든 어디에서나 피니, 옛부터 진달래꽃을 따서 술을 담근 것이 진달래 술, 일명 두견주입니다. 이 두견주는 신분의 구별 없이 가장 널리 빚어 마셨던 가장 대표적인 ‘봄철 술’이었다고 합니다. 두견주는 진달래의 향기를 가지고 있어서, 미각뿐만 아니라 후각까지 만족시켜주는 술입니다. 술에 봄이 담긴 것이지요.


꽃이 가지고 있는 향기로움을 술에 불어넣어 그 향기도 즐기는 제조법이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술입니다. 특히 진달래술은 향기뿐만 아니라, 혈액순환과 혈압, 천식, 부인병 등에 약효가 있어 약용주로서의 역할도 겸하였으므로, 봄철이면 농가와 특히 가난한 선비집안의 아녀자들은 진달래술을 빚기 위해 꽃을 따느라 분주하였다고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런 훌륭한 전통이, 해방이후 금주법이 시행되면서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진달래라.. 진달래가 야산에 필 무렵이면, 다른 나무에 아직 초록색 잎이 본격적으로 나기 전이라서, 흑백사진 같은 야산에 핀 분홍빛 진달래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가녀린 듯 하지만 불타는 분홍빛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야산에 난 진달래는, 그래서 때로는 봄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혁명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요? 저 말간 분홍빛은 참 사람을 가슴 뛰게 합니다.


진달래                    - 백 우선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꽃만 피운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몸 살라 불 꽃/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내일 모레가 삼월 삼짇날입니다. 옛날부터 이 날에는 들로 산으로 나가 화전을 안주로 두견주를 마셨답니다. 저도 조만간 맘맞는 동료들과 산에 나가서, 옛 선비가 하시던 대로, 두견주도 마시고 진달래 향기에 흠뻑 젖어보려고요. 온 산 한 가득 진달래가 불나겠지요? 한 잔 마시고 산에 누우면,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가고, 코끝에는 맵싸한 봄 냄새가 나겠지요. 술에, 꽃에 취하면 멀미나듯, 취한 듯 봄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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