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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아버지와 짜장면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아버지와 짜장면

기사승인 2014. 05.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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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때 일행과 어울려 중국집에 갔습니다. 메뉴에 “옛날 짜장”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금 짜장이 아니고 옛날 짜장. 메뉴에 “옛날”이라고 따로 써 있는 메뉴는 짜장면 밖에 없을겁니다. 언제가 옛날일까요? 오랜만에 한 번 시켜 먹어보기로 합니다. 한 그릇 떡 나온 낯익은 짜장면. 양파, 양배추, 감자 등을 굵직하게 썰어 볶아 만든, 우리가 아는 그 짜장면입니다. 간짜장, 삼선짜장 등 다른 재료가 들어간 레시피가 아닌, 원래의 레시피로 만든 짜장면이라는 뜻입니다.  


한때 짜장면은 표준말이 아니고, 자장면이 표준말인 때가 있었습니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작품 《짜장면》에서 “짜장면을 먹자고 해야지, 자장면을 먹자고 하면 영 입맛이 당기지 않을 게 뻔하다. ‘짜'라는 된소리로 인해 우리 기억 속에 배어 있는 그 냄새가 훨씬 그윽하게, 더욱 자극적으로 코를 자극한다. 그렇다면 짬뽕은 왜 잠봉이 아닌가 의문이 들게 만든다”면서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비판하는 견해도 많아서, 2011년 8월 짜장면도 표준어가 되었습니다. 저도, 짜장면이라 해야 군침도 돌고, 우리가 아는 그 음식의 이름이란 생각이 듭니다.


짜장면은 모름지기 나무젓가락 쩍 소리 나게 갈라 면과 짜장을 폼나게 휘휘 잘 비비고, 젓가락으로 면을 양껏 잡아 올려서, 후루룩 요란하게 가열찬 소리를 내면서, 입가에 소스를 묻히며 입 안 가득 넣은 다음, 우물우물 씹어 먹어야 합니다. 그 풍성한 먹는 모습은 다른 음식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그 구수하고 달달하며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짜장면의 맛! 잘 먹는 사람은 서너번의 젓가락질이면 금방 식사를 마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짜장면은 곱빼기로 먹어야 합니다. 다른 음식에서는 보기 어려운 진정한 곱빼기의 양입니다. 먹다가 추가를 할 수 없고, 처음 시킬 때부터 곱빼기로 시켜야 합니다. 짜장면 곱빼기를 먹고 난 후의 포만감이란!


짜장면(중국어 간체: 炸酱面, 정체: 炸醬麵, 병음: zhájiàngmiàn)은 1905년 인천의 공화춘(共和春)에서 최초로 짜장면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이 값도 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야채와 고기를 넣고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짜장면을 개발한 거지요.


1950년대 중반, 춘장에 캐러멜을 첨가하면서 달달한 지금의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하고, 1960~70년대에는 정부가 펼친 분식장려운동과 조리 시간이 짧은 점이 개발산업화시대와 맞아 떨어지면서 짜장면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외식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인 1980년대 이전에는, 서민들이 외식할 때 최고의 음식으로 각광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집(중국식당)이 2만 4천개가 넘고, 대략 하루에 600만 그릇의 짜장면이 소비된답니다. 물가지수에 김밥, 칼국수는 없어도 짜장면은 포함되어 있을 만큼 국민음식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신만의 최고의 짜장면이 있지요. 초등학교 시절 어느 봄날, 아버지는 무슨 과목 우수상인지 짜잘한 상장 하나를 받아 와 자랑해대는 막내인 저를 바라보시다가, 칭찬을 해 주실 요량이었는지 대전 역전앞에 있는 중국집에 데리고 가셨지요.


그 때 그 중국집에는 구슬로 된 발이 문앞에 쳐져 있었지요. 촤르륵 소리를 내며 손으로 그 발을 호기롭게 치우며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 들어간 허름한 중국집. 한 쪽 주방에서는, 때 묻어 반질반질한 흰 가운을 입은 머리 좀 벗어진 뚱뚱한 중국 아저씨가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때려 늘이며 중국어로 무어라 큰 소리로, 앳된 여자아이를 심부름 시키고 있었습니다.


나무젓가락을 가지런히 놓고 기다리니 윤기 자르르한 짜장면이 떡 하니 제 앞에 나타났지요. 반찬은 소위 단무지 뿐이었지만 그때 아버지와 단 둘이 먹던 짜장면은 제 인생 최고의 짜장면이었답니다. 그 달달하고 고소하고 감미롭기까지한 짜장면의 첫 경험. 다음날 친구들에게 짜장면 먹은 자랑을 엄청 했답니다. 얼마나 많은 꼬마들이 얼마나 많은 짜장면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요.
 
  짜장면을   비비며                                   -  정건우
 
(전략) 비비면 비빌수록 더욱 끈적거리는 소리
굽은 면발을 휘감으며/어우러진 객체들이 몸을 섞는 소리

젓가락을 들다 말고 나는 아득하게 달뜬다/
사는 게 애초부터 끈적끈적 하였겠나니/
세상 먹고 사는 소리 중에 그 어느 소리가/ 이보다 관능적이더냐


짜장면을 먹을때 나는 후루룩 하는 소리, 정겹지 않습니까? 참 맛있는 소리입니다. “세상먹고 사는 소리”라. 끈적끈적한 세상사는 소리. 학창 시절 하숙집 이사할 때 짐 알라준 친구들과 먹던 짜장면. 비 오는 날 친구와 깡소주 안주해서 궁상떨며 먹던 짜장면. 연애할 때 입가에 묻히지 않으려 조심히 먹던 짜장면. 아들녀석도 군대에서 휴가 나와 제일 먼저 짜장면을 사달라고 하더군요. 짜장면에는 수많은 추억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내일은 오랫만에 옛 친구들 불러서, “옛날짜장 곱빼기” 시켜서 맛있게 먹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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