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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달의 명절 추석 송편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달의 명절 추석 송편

기사승인 2014. 09. 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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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민족의 명절 추석입니다. 가을걷이를 다 끝내고 한 해 동안 땀흘려 열심히 수확한 농산물로 조상님들께 차례를 올려 풍년을 주신 음덕에 감사하고, 정성껏 장만한 음식물을 가족, 친지들과 나누는 참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햇쌀 ,햇곡식, 햇과일. 추석엔 온갖 맛난 것이 넘쳐납니다,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시기이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던 것 같습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한국의 가을날씨는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있답니다. 날씨도 좋고, 풍년도 들었고. 얼마나 마음이 풍성할까요.


양손에 바리바리 부모친지들께 드릴 선물 싸들고, 차로, 기차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겠지요.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가시나요. 저는 고향이 대전이라서, 늘 가족과 함께 내려갑니다. 차가 막혀서 고생이 되지만, 고향에 가는 마음은 늘 즐겁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뵐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갑니다.

어릴 적, 추석 전 날이 되면 집 뒷산에 올랐습니다. 어머니가 송편을 빗는데 쓰일 소나무 잎을 따오라 하셨기 때문이지요. 큰 형, 작은 형과 오른 가을산에는 단풍이 참 예쁩니다. 가을산은 참으로 풍성합니다. 여기저기 밤나무도 지천이고, 도토리랑 각종 열매가 온 산에 그득했답니다. 낄낄거리며 밤나무 가지를 막대기로 쳐서 밤송이를 따고 밤 가시에 찔리며 알밤을 발라내던 기억. 떨어지는 밤송이에 맞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매우 아프답니다.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요. 그 때 생각만 하면 빙긋이 웃음이 납니다.


실컷 놀다 깨끗하게 잘 빠진 파란 솔잎을 바구니 그득하게 따서 집에 오면, 어머니는 보송보송 하얗게 고운 쌀가루반죽을 해 놓으시고 자 이제 송편을 빚자 하셨지요. 하얀 쌀가루가 마치 고운 달빛 가루 같더라고요. 마루에 온 식구 둘러앉아 한가위 둥근 달을 보며 달처럼 생긴 송편을 빚습니다.


송편은 솔잎과 함께 떡을 찌기 때문에 송병(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시루에 솔잎을 켜켜이 놓고 쪄낸 송편에서는 그윽하고 기분좋은 소나무 향기가 나면서 떡에 솔잎 자국이 남습니다. 말할 수 없이 청량한 가을 산의 향기 말이지요. 송편의 ‘송’자에 소나무 송(松)을 쓰는 이유입니다. 저희 집에서는 콩, 밤, 깨를 소로 넣어 송편을 만들었는데, 어떻게든 달콤한 깨로 만든 송편만 먹으려고 이 송편 저 송편 배를 갈라보다 혼나기도 했지요. 쫄깃쫄깃한 하얀 보름달을 먹는 기분 다 아시지요? 요새는 이런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동네 떡집에서 사다 먹는 집이 많아졌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송편은 쌀로 만들기 때문에, 씹으면 아주 쫄깃합니다. 솔향기가 은근히 풍기는, 달처럼 잘생긴 송편을 하나 입에 넣으면 씹을수록 입안에서 달콤해지지요. 쌀이 주는 식감이 묵직합니다. 송편은 소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납니다. 팥, 깨, 콩, 밤. 한 해 나온 햇곡식을 다 소로 해서 먹을 수 있지요. 충청도에서는 호박송편도 해 먹는답니다.


송편은 절대 혼자 먹으면 안됩나다. 여럿이 시끌시끌 다같이 송편을 빚어서,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뭐랄까. 달빛을 먹는 기분. 고향을 먹는 기분. 두어개 먹어도 금방 배가 불러옵니다. 워낙 다른 먹을 게 많아서, 요사이는 많이 해서 먹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송편은 맛으로 먹는게 아니고, 정으로 사랑으로 먹는 낭만적인 음식인 것 같습니다. 여기가 고향이구나. 집에 왔구나 하는 표시같은 느낌.


만월 – 작은 추석날                  원 무현

(전략)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지 않겠나/
둥글둘글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둥글둥글 빚은 송편을/둥그런 쟁반에 담는 동안/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던 넷째를 기다리던 당숙께서/
밭은 기침을 담 너머로 던지면/
먼산 능선위로 보고픈 얼굴처럼 솟은 달이/
궁글 궁글 굴러와서는/느릅나무 울타리도 탱자나무 울타리도/
와락 와락 껴안아/ 길이란 길엔 온통 달빛이 출렁
보시는가/가시돋친 말이 사라진/
이 둥글고 환한 세상


오래 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추석 때 왜 그리 고향생각이 나던지, 추석 날 밤 뉴욕에서 한가위 달 보려니 마음이 처량해지더군요. 달은 일년내내 떠 있겠지만, 특별히 추석 때 타향에서 보는 달은 느낌이 남다르더라고요. 고향에 가지 못하는 분들은 달을 보며 고향생각하시겠지요. 오랜만에 고향가신 분들은, 일가친척 다 모여서 한가위 달을 보며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추석은 달의 명절입니다. 하늘에 둥실 떠 있는 한가위 달이, 고향 동네를 휘엉청 비춰주지요. 올해 추석에는 엄청 큰 달이 뜬다지요. 미당 서정주 시인은 <추석 전 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라는 시에서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라고 노래했습니다. 달은 원래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거랍니다. 온세상을 밝게 비추는 달. 어디서든 보이고, 누구나 보면서 그리워하는 달. 흠. 당신은 누구의 달인가요. 행복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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