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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남해 봄 바다 도다리 쑥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남해 봄 바다 도다리 쑥국

기사승인 2013. 03. 0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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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이 지났습니다. 요사이 날씨는 많이 따뜻해져서, 바야흐로 이제 봄이 오나 싶습니다. 천하의 모든 것들이 겨우내 모진 추위와 칼바람에 움츠리고, 마치 천년만년 누릴 것처럼 위세를 떨더니만, 어느샌가 ‘봄이 온다더라’는 수런거림에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맙니다.  이제 하늘에도, 땅에도, 바다에도, 소문만 무성하던 봄이 넘실거리겠지요. 지난 주말, <이순신 외전>이라는 드라마의 준비를 위해서 가야할 일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너무나 봄이 보고 싶어서 경남 남해를 다녀 왔습니다.

봄의 생동감은 이내 식탁으로 옮겨집니다. 저같이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지요.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도다리 쑥국>을 잘하는 집을 수소문해서 달려갑니다. 시장통 허름한 음식점 나이드신 할머니가 방금 끓여내는 도다리쑥국을 한 입 먹어봅니다.  아아, 봄입니다!!  제일 먼저 입안 가득 차오는 애쑥의 향기가 봄을 알립니다. 뜨거운 국물에는, 달달한 도다리의 향기가 가득합니다. 혀끝에서 녹는 연한 도다리살은 감미롭기까지 합니다. 뭐랄까, 수줍은 봄 맛입니다. 봄바다가 녹아있는, 봄 들판이 살아있는 맛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봄이라는 듯, 도다리와 쑥이 너무 강하거나 혼자 나서지 않고, 서로 수줍게 어울리는 담백한 맛입니다. 쑥이 향기를 더해도 도다리와 된장의 맛을 압도하지는 않고, 마늘과 소금으로만 하는 소박한 간이 오히려 맛을 깊게 해줍니다. 하얀 도다리 살에 쑥향이 배고, 향기로운 쑥에 도다리 맛이 스몄습니다. 맛은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저 담백하고 소박합니다. 

조리법은 너무 간단합니다. 약간의 된장을 푼 쌀뜨물에 도다리를 넣고 끓이다가 고기가 익을 무렵 다진 마늘과 어슷 썬 풋고추를 넣습니다. 그런 다음 해쑥 한 움큼을 넣고 불을 꺼버리면 됩니다.  그저 살이 잘 오른 도다리, 그리고 된장과 따뜻한 봄날 향기를 품은 해쑥. 이 세가지가 겨우내 달아났던 입맛을 되돌려줍니다. 봄들판 지천으로 새싹을 밀어올리는 쑥의 향취가, 제철 봄도다리의 감미로운 맛과 어우러져 봄철 맛세상의 한 격조를 만들어냅니다. 겨우내 저장성 음식만 먹느라 까칠해진 입안에 쑥의 쌉쌀한 향기와 도다리의 감미가 밴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넘기면 한 순간, ‘아, 봄이 또 이렇게도 다가왔구나’ 라고 느끼실 겁니다. 생각해보면, 바다 밑 모래밭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낸 도다리란 놈과,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막 나온 애쑥으로 끓인 국이니, 온통 봄천지일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 통영여객선터미널 앞 식당골목/다닥다닥 붙은 상점들 사이/
우리처럼 알음알음 찾아온 객이/열 개 남짓한 식탁을 다 차지한/
자그마한 밥집 분소식당에서 뜨거운 김 솟는/
국물이 끝내준다는 도다리쑥국을 먹는다
…(중략)
탕탕 잘라 넣은 도다리가/살큼 익은 쑥의 향을 따라 혀끝에서 녹는/
통영의 봄 맛….’

배한봉 <통영의 봄은 맛있다> 중

흔히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하듯이 제 철 도다리는 기름이 쪽 빠져 담백한 저지방 고단백 생선입니다. 동의보감에도 “도다리는 쇠한 기운을 돋운다”고 했습니다. 가자밋과에 속하는 도다리는 넙치(광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양식을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산인거지요. 도다리는 2월경 산란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살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때이니까, 살이 보드랍기 그지 없습니다. 좀 지나면 뼈도 억세지지요. 그 도다리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쑥은 또 어떻습니까. 쑥을 캔다는 건 우리 민족에게는 일종의 봄맞이 세례 같은 일입니다. 어린시절 이때쯤이면 어머니는 쑥을 캐러 가셨지요. 어쩌다 바구니를 들고 졸졸 따라나가면, 논두렁 밭두렁에 언 잡초사이로 소담스레 숨어있던 그 조그만 애 쑥들을 기억합니다. 어쩌면 꽝꽝 언 땅을 뚫고 그렇게 여린 싹이 올라올수 있을까요? 심지어는 잔설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여린 싹들! 그 쑥으로 버무린 쑥떡이며 쑥국 많이 드셔보셨지요? 우리 민족에게는 봄의 전령사같은 것입니다. 한방에서 쑥은 혈액 순환을 촉진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약초여서 몸이 냉한 여자들에게는 돈 안 들이고 섭생할 수 있는 보약으로 꼽힙니다. 생각해보면 그 도다리와 쑥을 우려 맛을 낸 국이니, 맛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게 군더더기이겠지요.

봄 음식이 어디 도다리쑥국 뿐이겠습니까. 너무 춥고 거칠고,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던 겨울이 물러난 자리에, 이제 산과 들에 봄 바람타고 쑥이며 냉이, 씀바귀 같은 생명들이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내밀 때입니다. 매일 계속되는 일상, 실내에서만 계시면서 정제 비타민만 찾지 말고 이번 주말에는 한적한 야외로 산책 한번 나가보는 건 어떨까요. 가능하시다면 물론 남도여행을 강추합니다.  당연히, 남해나 통영같은 남도바다라면 더 좋겠지요. 겨우내 움츠리고 삶에 지친 몸에게도, 만물이 다시 생동하는 봄을 느끼게 해 주세요.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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