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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빨갛게 익어가는 가을바다 대하구이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빨갛게 익어가는 가을바다 대하구이

기사승인 2013. 11. 0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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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갑니다. 남자의 계절 가을. 마음이 왠지 허전한 일요일. 제 아들녀석은 제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일요일에 외출이 된다해서, 보고 싶기도 하고, 홍성으로 내려갑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촌동생을 불러내 셋이서, 홍성 서부면에 있는 궁리항이라는 작은 항구로 차를 몰았답니다.

최근 대하축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남당리가 바로 이웃이지요. 횟집 대여섯개와 작은 어선 몇척만이 떠 있는 아주 작고 고즈넉한 포구입니다만, 경치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횟집앞 수조에는 펄펄 뛰는 대하가 가득차 있습니다. 아시나요? 지금, 서해안은 대하가 절정이랍니다.

흠. 대하라. 대하(大蝦)는 보리새우과의 새우로 1년 삽니다. 봄에 태어나 9월이 되면 10센티미터 정도가 되고, 슬슬 맛이 들지요. 대하는 계속 자라 10월말이 되면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지고 힘도 쎄지는데, 그 맛도 절정이 됩니다. 필수 아미노산인 글리신 함유량이 최대에 이르러 특유의 감칠맛도 절정에 오르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이때의 대하는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도 매우 맛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하는 가을대하, 그것도 10월말 대하가 최고입니다.

대하를 먹는 방법은 우선 생으로 먹는겁니다. 싱싱하게 펄떡거리는 몸통을 잡고, 머리를 뚝 떼어내고 껍질을 벗기는 겁니다. 꼬리를 잡고 몸통을 한 입 가득 입에 넣으면, 첫 맛은 여리고 달콤하고 수줍은 맛입니다. 차분히 씹으면, 고소하고 감칠맛나는 생새우살이 한가득 입에 차게 됩니다. 풍성하고, 달착지근한, 착한 식감의 생새우살은, 고소하고 감칠맛나는 가을바다의 맛을 그대로 전해줍니다. 생대하의 매력은 쫄깃한 새우 살을 한 입에 단번에 먹을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새우내장은 쓴 맛이 나므로, 이쑤시개를 이용해 등쪽의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 것이 훨씬 고소합니다. 자연산은 잡히자마자 죽기 때문에, 살아있는 새우를 먹는 생새우 맛은 대부분 양식대하의 맛인데, 현지에서 재수 좋으면 자연산 대하 산 것을 생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수염의 길이를 확인하는 것인데, 자연산은 자기몸통보다 더 긴 수염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식대하의 수염은 가늘고 짧지요. 그런기회가 오면 절대 망설이지 마시고, 과감히 가을바다 맛에 도전하시길. 최고의 맛이랍니다.

다른 방법 하나는 구워먹는 겁니다. 냄비에 굵은 소금을 깔고 불을 켜 구우면, 대하 껍질이 터지는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듣기에 참 좋습니다. 대하가 발그스름해질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고, 굽는다기보다는 찌듯이 익히는 게 좋은데, 너무 많이 구워지면 대하 살의 수분이 달아나서 질기고 단맛도 덜하기 때문입니다. 알맞게 구워진 대하는 분홍빛으로, 보기에도 참 에쁘고 먹음직스럽습니다. 막 구운 대하살은 생새우보다 더욱 풍성해진 향이 납니다. 맛이 활성화된 것이지요. 

따뜻한 살의 부드러운 식감은, 달콤하고 쫄깃거리는 맛과 함께 기분도 좋게 해 줍니다. 구운 새우는 식으면 맛이 덜하니 뜨거울 때 먹는 것이 좋습니다. 머리와 꼬리는 따로 뒀다가 강한 불에 덖거나, 기름을 두르고 볶으면 아삭하고 고소한 풍미가 또다른 별미입니다. 소금을 까는 까닭은 단지 짠맛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표면의 단백질을 빨리 응고시켜 껍질 안의 영양분과 맛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해서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라 합니다. 굽거나 찐 새우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소비됩니다. 일본이 세계최고의 소비국이구요. 비행기 기내식으로 찐 새우를 드셔보신적 있으시지요? 
 
새우와의 만남  -  문 정 희
 
(전략)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 기내식 속에 /그는 분홍 반달로 누워 있었다
땅에서 나고 자란 내가 /바다에서 나고 자란 그대와
하늘 한가운데 3만 5000피트 /짙푸른 은하수 안에서 만난 것은
구름 같은 인연의 실들을 풀고 풀어서/ 드디어 이렇게 만난 것이다 (중략)
나는 끝내 칼과 삼지창을 대지 못하고/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부드럽고 뜨거운
나의 입술을/ 그대의 알몸에 갖다 대었다/ 내사랑 견우여
 
다시 궁리포구. 요즈음은 유통기술이 발달해서 서울에서도 살아있는 새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뭐니뭐니 해도 제철음식은 현지에서 먹어야 맛있습니다. 특히, 자기 몸통보다도 훨씬 긴 수염을 자랑하는 싱싱한 자연산 대하는 현지 아니면 쉽사리 먹을 수 없지요. 갈매기 몇 마리 날고 반짝반짝거리는 바다위로 장엄하게 떨어지는 서해안의 일몰은 왠지, 가을분위기가 납니다. 손님없어서 조용하고 한적한 충청도의 한 횟집, 다 큰 아들녀석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하를 먹는 것도 참 좋군요.

이녀석은 생대하를 먹는 것은 약간 징그러워 하네요. 꿈틀거리는게 좀 먹기 이상하다나요. 저는 참 맛있는데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대하구이는 맛있다며 엄청나게 먹는군요. 서해안의 일몰에 바다가 빨갛게 달아오르고, 냄비에서는 절정의 맛이 오른 대하가 또 빨갛게 익어가고, 우리 얼굴도 소주에 조금씩 빨갛게 취해갑니다. 조용한 바닷가의 조그만 포구. 파도소리 들으며 생새우 고추장에 찍어먹고, 잘 익은 대하소금구이에 소주한 잔. 역시 제철에는 하늘도 바다도 사람도 음식도 맛있습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근사한 가을, 기분좋은 시월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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