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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하루의 시작과 끝 해장국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하루의 시작과 끝 해장국

기사승인 2013. 12.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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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연말입니다. 매일 매일 송년회다 망년회다 달력이 온갖 약속으로 빼꼼합니다. 사실 이런 연말에는 피하기 어려운 술자리가 많습니다. 굳이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한국사회는 여럿이 술을 함께 마시며 이 사회 테두리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공감대를 강요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적으로 “우정과 신뢰를 확인하겠다”는 무언의 자리인셈이지요.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 없듯이, 직장 또한 노동의 공간만은 아니라서, 그곳은 어려운 시간을 함께 하고 함께 견뎌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술 먹고 친해지고, 술 깨며 노동하기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는 연말이니까요.

‘술’은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되지만, 과하게 먹으면 독이 됩니다. 과음을 하고 나면 늘 그 댓가를 치르게 됩니다. 이른바 ‘술병’이 나는 겁니다. 다 아시고 계시지요? 술을 과하게 마신 다음날의 그 전형적인 증상들.  갈증 나지요,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지요, 속은 뒤틀리지요, 정신이 없습니다.  이 ‘숙취’는 몸에 수분과 전해질(電解質)이 부족하여 생기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 때문이랍니다.

술을 마시는 속도를 미처 간이 해독하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면 ‘아세트알데히드’가 점점 몸에 쌓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얼굴이 빨개지고, 구토를 하고,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진답니다. 이 숙취를 풀어주는 게 해장국인데, 해장은 해정(解酲)에서 온 말로,  ‘숙취를 풂’이라는 뜻입니다. 서울식 해장국은 소뼈를 푹 고아 우거지, 콩나물, 무를 넣고 끓인 국입니다. 이밖에도 콩나물국, 북엇국을 비롯해 복국, 대구탕, 계란탕, 올갱이국, 재첩국, 그리고 칼국수와 매운 짬뽕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국과 탕이 해장국으로 쓰입니다.

어제 많이 술로 달렸습니다. 오늘 아침, 속이 아파서 온갖 인상을 쓰고있는 저에게 김치콩나물국을 끓여주는 아내가 잔소리를 합니다. “뭐하려고 그렇게 많이 마셨느냐”는. 어렸을 적, 얼큰하게 취해서 들어오신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하셨던 똑 같은 잔소리를 말이지요. 누가 그러더군요.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들은 폭탄주로 취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은 해장국을 끓인다”고요.

대학시절, 무엇 때문에 그리도 소주를 들이 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전날의 숙취에 고생하는 하숙생들에게 하숙집 아주머니가 끓여주는 김치콩나물국은 아픈 속을 단번에 풀어주었답니다. 그 아주머니는 다른 음식솜씨는 별로였습니다만, 참 이상하게도 해장국하나는 기가 막혔지요. 그걸로 그 하숙집은 인기만점이었습니다. 하숙집 딸이 예쁘지 않아도 말이지요.

김치콩나물국. 참 간단한 레시피. 다진 김치, 콩나물 넣고 청양고추도 잘라넣고 고춧가루 뿌리고 펄펄 끓입니다. 뜨거운 김이 나는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가락 떠 먹습니다.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국물은 식도를 지나 뱃속까지 짜르르르하게 울립니다. 캬~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어찌나 자극적인지 몸이 부르르 떨리지요. 뜨겁고 얼큰한 국물은, 위장에 자극을 주어서 마취를 시키는 건지, 통증을 조금씩 사라지게 합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숙취로 고생한 뱃속은 처음에는 건더기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한 모금 국물을 넘기고 나면, 쓰리던 속이 편안해집니다. 해장을 빨리 하려면, 국물과 함께 밥을 한덩이 말아 먹어야 합니다. 이 얼얼하고 묵직한 자극. 콧등에 땀이 송송 납니다. 뜨거우면서 시원하고 무언가 풀리는 기분. 사각거리는 김치와 콩나물의 이 감각적인 맛. 뜨거운 해장국의 이 뻐근하고 강렬한 맛. 한국사람에게 해장국은 “맛”을 넘어선 하나의 의식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훈 선생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밥벌이의 지겨움       <밥벌이의 지겨움>   김 훈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60~70년대 산업화시절, 하루 하루 힘들게 노동을 해서 밥을 벌던, 모두가  먹고 살기 바빴던 시절이었다지요.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낯선 서울에서 돈을 벌던 그 많은 사람들. 저녁엔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술에 취하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새벽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속을 풀어주고 힘을 주는 음식, 다시 말해서 “어제의 노동의 끝과 오늘의 노동의 시작”, 그 사이에 해장국이 있었던 겁니다. 해장국에는 해도 뜨기 전, 가족이 먹을 밥을 벌기위해 새벽을 나서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바야흐로 매일 술로 취하고 매일 해장국으로 속을 푸는 '시즌'입니다. 학창시절 전날의 숙취를 풀어주던 하숙집의 김치콩나물국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제 속을 풀어 줍니다. 옛날 어렸을 적 아버님이 새벽에 드시던 그 해장국이지요. 오늘 저녁이면 또 술마시고 취할텐데 해장을 해서 무엇하느냐구요? 하하하. 내일 또 김치콩나물국으로 해장할겁니다. 저도 한국사람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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