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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입춘과 봄나물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입춘과 봄나물

기사승인 2014. 02. 0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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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엊그제, 2월 4일이 입춘(立春)이었습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왜 이리 추운지 모르겠습니다. 입춘날 영하 10도라니요. 입춘이면, 절기상 봄이 시작된다는 것인데, 아직 산에 눈이 그득하고, 강에는 얼음이 단단합니다. 뭐 아무리 추워도, 결국엔 봄이 기어이 오겠지요.

이번 설에 고향에 내려간 김에, 아버님에게 봄을 알리는 입춘첩(立春帖), 즉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잘 써 주십사 부탁드려서, 서울로 가져와 입춘날 입춘시에 집 문에 붙였습니다. “봄이 되니 좋은 일이 많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다”는 축원의 뜻입니다. 봄의 생기가 한지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름지기 입춘첩이란 몇십칸 대갓집 대문앞에 떡하니 붙여야 폼이 나는것인데, 아파트 문에 달랑 붙여놓으니 모양이 아주 덜합니다만, '입춘첩 하나가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속설처럼 정성스럽게 붙여놓고 나니, 나름대로 큰 일 한 것 같아 마음이 좋더군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대궐에는 춘첩자(春帖子)를 붙이고, 사대부와 서민의 집 그리고 시장에는 춘련(春聯)을 붙여서 봄이 온 것을 기리고 신에게 비는 것을 춘축(春祝)이라고 한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대문 앞에 ‘입춘대길’을 붙이는 것은 민간뿐아니라 궁중에서도 행하여진 풍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입춘날에는 궁중에서 입춘오신반(立春五辛盤)을 왕께 진상하고 민가에서도 서로 선물로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오신반이란 움파와 산갓, 당귀싹, 미나리싹, 무싹등 자극성이 강하고 시고 매운 다섯 가지 나물로 만든 생채 요리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 먹지 못하던 신선한 봄나물을 먹으면서, 겨우내 움추려 있는 몸과 마음을 풀리게 하고 건강한 봄을 나도록 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사실, 이때까지는 겨우내내 김장김치와 무시래기가 채소의 전부이었던 거지요.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연중 나물을 재배하니 봄나물이란 말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 매우 아쉽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봄나물 캐고 칡도 캔다고 집 앞산에 갔었는데, 산 길에서 아직 겨울잠에서 덜 깬 뱀을 만나서, 너무 놀란 일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과 그런 추억이 없습니다. 드라마 만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보니, 그런 추억을 만들 시간이 없더라고요.

봄 나 물                                  이 양우

눈이 녹는다/녹는 눈을 헤치고/파릇한 향기가 스친다
솜털 깃 치마/아지랑이 이슬의 웃음/수줍은 봄나물의 아양이려니
나를 만져봐요/나를 맡아봐요
나는 앙증맞은 봄의 향기니까요
 
봄철이 가까워 오면 입맛을 돋구워 줄 새롭고 산뜻한 음식을 찾게 마련입니다. 봄 향기 가득한 냉이와 달래를 넣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보시지요. 그 달달하면서, 맛있는 된장찌개 끓는 소리. 수저로 한 입 떠 먹어보면, 조금 아리기도 하고 쌉싸름한 냉이와 달래의 맛. 구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지만 봄바람 든 흙의 맛이 느껴집니다.

꽁꽁 언 눈을 뚫고 올라온 새싹의 힘, 그 에너지와, 추운 바람속에서도 겨울 햇살 하나하나 주워모아 피어낸 봄나물의 힘이 느껴집니다. 그다지 강하지도 않고 조금 수줍은 맛이지만, 또렷하고 분명한, 풋것의 맛이지요. 밥 말아서 한 수저 떠 먹으면, 몸 전체로 퍼져가는 행복한 느낌이 몸을 감쌉니다. 파릇파릇한 야채로 입안 가득 쌈을 싸먹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 맛은 사계절이 없는 나라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근사한 맛입니다. 주말 저녁 밥상에 산뜻한 봄나물로 겨우내 몸과 마음이 찌든 가족들에게 봄기운을 가득 안겨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냉이의 꽃말                                김 승해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더 떠서 밀어 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후략)

봄색시,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냉이의 꽃말입니다. 참 근사하지요? 어서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직 춥고, 앞으로도 꽃샘추위가 두어번 더 오겠지만, 그래도 기어이 봄이 오겠지요. 저 남녘 어디쯤 봄이 오고 있을까요. 천천히, 머뭇거리며 올까요.

봄이 오면 저도,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양지바른 야산에 올라, 봄 나물도 찾아보고 칡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볼 요량입니다. 운이 좋으면 냉이 몇 뿌리, 달래 몇 뿌리 캘 수 있겠지요? 된장 넣고 보글보글 끓여서 온 식구 모여앉아 나누어 먹으면서, 옛날 할아버지와 산에서 뱀 만난 이야기도 해 주려구요. 봄이 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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